새벽 2시에 갑자기 시작된 복통이 왼쪽도 아래쪽도 아니고 정중앙 아랫배라서 am 3시경 가게를 접고 잠을 청했어요. 염병 밤새 배앓이를 했네요. 호성이가 땅을 샀나? 왜 내 배가 아프지. 똥도 굵고 오줌 컬러도 정상이니 배탈이 나 장염은 아닌 것 같고 김밥-라면-육회 쫄면-피자-양봉이 목구멍에 넘긴 것의 전부인데 뭐가 잘못됐을까. 셀프로 하는 '엄마 손은 약손'이 먹히는 것 같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 밀어내기 두 번 하고 검색해 봤더니 엄마 손은 그냥 플라시보(Placebo) 효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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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다친 맘/낫는 약이 없을까/고단한 마음을/감출 길이 없구나/어릴 적 어미품/배를 어루만지시던/약보다 따뜻한/그 손길이 생각난다/나아라 나아라/울아가 울지마라/나아라 나아라/세상에 지지마라/엄마손은 약손/울 아가배는 똥배/엄마손은 약손/울 아가배는 똥배/나아라 나아라/울아가 울지마라/나아라 나아라/세상에 지지마라/나아라 나아라/울아가 울지마라/나아라 나아라/세상에 지지마라/엄마손은 약손/울 아가배는 똥배/엄마손은 약손/울 아가배는 똥배/울 아가배는 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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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 (막내 생일)-5일이 (석가모니 생일)-8일이 (어버이날)-11(SUN)이 (내 귓빠진 날)입니다. 패밀리들은 다들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나도 아직 살아있다고 전해라!" 실향민의 마음으로 구리 왕숙천 길을 슬리퍼 신고 천천히 걸어갔어요. 철쭉 길이 근사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리 어렵지가 않아? 3년 째 붙들고 있는 마르크스(자본론)을 꺼내 들었어요. '변화'는 니체나 라캉만 말한 게 아니고 마르크스 역시 '변화(진보)'를 사상의 핵심 축으로 말해요. 구리엔 사찰이 없어 형형색색 꽃등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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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제철의 임금 협상이 결렬돼 직장 폐쇄를 했어요.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 같아요. 누가 더 잘못한 걸까요? 우리가 벌어준 돈으로 돈을 벌었으니 마진을 나누자는 얘긴데 사 측은 남으면 왜 폐쇄하겠냐? 노조 측은 개소리 말고 월급을 현대자동차 수준으로 줘라는 겁니다. 내가 볼 땐 설마 폐쇄 하겠냐며 지른 건데 진짜로 폐쇄 해버렸어요. 만약 르노 삼성도 같은 수순을 밟는다면 소잃고 외양간 고칠 것입니다. 추워도 할 수 없어요. 각자 내가 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이 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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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를 '맑스'로 표기한 시절이 있었어요. 마르크스라는 걸 최근에 안 나는 깡촌 시골뜨기 일까요? 무식한 꼰대일까요? 지금 우리는 과잉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줄도 몰라요. 끝날 줄 모르는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전쟁과 테러,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의 자연재해와 생태위기, 질병과 혐오의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노동 개악’, ‘사회보장성 악화’ 등 각종의 희생을 강요받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다 못해 곤두박질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현 '기득권 노조'가 아닌 비 노조의 노동계 현실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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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됐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인류가 만든 엄청난 생산력이 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보다 큰 착취와 폭력, 무한 경쟁과 대량 살상의 수단으로 귀결되는지, 어째서 한쪽에 과잉자본이 축적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 빈곤이 양산되는지 말입니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먹고 살 길을 찾지 못해 고통받는 반면에 다른 누군가는 노동강도에 못 이겨 지게차에 앉은 채로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 역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택시 같은 영세 중소기업으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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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문제라 지적하니 무기 계약직을 대안으로 내놓는 현실은 모순입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은 착취에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마르크스(자본론) 타령이냐며 고리타분한 이야기라 혀부터 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포기하는 걸 세기 어려워 ‘N 포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가 보인다.” 라거나 “정규직이 이기심을 버려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라는 말은 맞고도 틀린 말입니다.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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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한 해 수 조원을 주식배당금으로 갈취하는 자들을 지켜보는 노동자에게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폭로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핵심은 다름 아닌 ‘착취’에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소수의 자본가와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임금노동관계를 맺게 되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그들이 지출한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져가는데,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의 착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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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택시회사에 재직했을 때 600(24-17=600)을 벌어주고 260을 실수령했어요. 내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노동착취는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17만*25=425를 제외한 수당은 오롯이 제게 돌아와야 된다고 봅니다. 600-425=175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착취가 일어납니다. 140만 원만 제 것이 되고 나머지 35만 원은 회사가 50%를 또 뜯어 갑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대안이 하루 7시간 근무-일일 24만 원 입금(사납금 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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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내 고정 급여는 260-280입니다. 노동조합비 5.000원 인상 건을 보았어요, 노조가 자치를 운영하기만 한다면 2만 원을 올려줘도 괜찮지만 현 체제는 사 측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어용 노조는 문제투성입니다. 물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합니다. 이전의 화폐 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가는 그림을 살펴봅시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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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상적으로 마치 자본가가 투하한 총 자본의 대가처럼 전도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일하는 노동자가 없는 이상 기계는 홀로 돌아가지 않아요. 노동력과 결합하지 않는 생산수단은 그저 죽은 노동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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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물신성으로 인해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계급사회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은폐되고 자본가는 물론이거니와 노동자들에게조차 현상이 왜곡되는 겁니다. 과거 노예제에서는 노예가, 그리고 봉건제에서는 농노가 착취의 대상이었다면 임금노동관계에서의 임금노동자는 자본의 착취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자본가는 오직 노동자를 착취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에만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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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착취 당하지 않고선 안 되는 사회이며, 반대로 자본가에게는 착취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는 한심한 사회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를 우리는 다른 말로 계급사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또한 그것의 사회적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자본’이 아닌 그것의 세포 형태인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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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이란 ‘사회가 필요한 노동자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존재하는 상태’ 즉 자본의 필요보다 과잉된 노동인구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 과잉인구는 생산력에 비한 과잉인구를 의미했기에 곧 죽음과 진배없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큼 물질적 생산력이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과잉된 상태로, 쉽게 말해 남아돌고 있어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바로 ‘자본에 대한’ 과잉, 더 자세히는 ‘자본의 필요에 대한’ 과잉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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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은 우리에게 낮은 임금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계약직이라 할지라도, 자본에게 일자리를 구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업의 압박이 단지 실업자들만이 아니라 이미 취업해있는 노동자들을 압박하는지 알려줍니다. 동시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언론과 교육이 한사코 노동자들의 불만을 파업이나, 투쟁이라는 수단으로 표출되지 못하게 하는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불경 시 하는지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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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노동 환경의 악화, 노동 강도의 강화, 노동 시간의 연장과 같은 자본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태생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이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자본론'서문에서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가는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학문의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말했어요. “남이야 뭐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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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45회 차입니다. 낚싯대를 놓고 지혜를 낚는 주유와 쌈꾼 여몽의 모습이 퍽 목가적입니다. 주유는 여몽에게 동오 지원 군량 3천 섬을 유비에게 보내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몽이 군 도독에게 묻기를 “왜 유비에게 군량을 줍닙까? “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을 연다면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단다." 무시기? 지나 나나 개진 도진이면서 무관이 문자를 쓰니 무슨 뜻인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부지리'는 성질 급한 놈이 지는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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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처럼 여몽은 쌈꾼(장수)입니다. 공명은 주유를 잉어로 보고, 주유도 공명을 잉어로 본다니까 누가 누구를 낚을지 지켜봅시다. 공명은 장비에게 사다리 10개를 만들라고 합니다. 그때, 여몽이 식량 3천 섬이 왔다는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공명은 사다리를 감추라고 해요. 유비는 여몽에게 영릉을 치러 출병한다고 넌지시 흘립니다. 그때 유기가 피를 토했는데 의원도 별수 없다고 하고 병마를 끌고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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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은 본 그대로 주유에게 보고를 하자 주유는 유기가 유비에게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다고 해요. 유기는 5만 병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질 급한 주유가 유기를 만나러 왔습니다. 몸 져 누운 유기가 선친 복수를 해야 하는데 병이 깊어졌다고 한탄합니다. 주유가 유기와 유비가 같이 있는 것을 목격했고 공명은 주유에게 적벽대전에서 지친 군사로 남군을 치다 만약에 지면 어쩌려고 하냐고 묻습니다. 그깟 남군은 한 달 안으로 점령하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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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달 안에 남군을 못 빼앗으면 그때는 유비가 형주를 가져도 좋다는 약속을 했으니 공명은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작전에 성공을 한 셈입니다. 주유가 남군 성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남군은 조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첫 전투는 주유가 패했고 주유는 성 공략은 어렵다고 보고 남군 병력을 성 밖으로 유인해서 두 번째 전투를 승리합니다. 조인은 성을 버릴 작정을 하고 야반도주를 합니다. 도망간 놈을 있으면 쫓으러 가는 놈도 있습니다. 주유는 보고받고 야반도주하는 조인을 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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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은 손 권 휘하에 있는 장수입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습니까? “ 란 말은 여몽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관우’가 여몽에게 잡혀 손 권에게 참수형을 당할 것입니다.
2025.5.6.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