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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의 창조 해석
(창조와 진화 2-2)
시간 측정은 인간의 본성이다. 시간은 무엇일까? 하루 시간의 시작은 언제 정해졌을까? 태음력일까? 태양력일까? 고대 애굽의 하루 시작은 태양의 본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각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유대나 이슬람은 반대로 일몰을 시작으로 삼는다.
알렉산드리아 프톨레미의 시대(2기)에는 정오를 청문학적 하루의 기점으로 삼았다. 자정을 하루의 기점으로 삼은 건 1925년 국제 협정의 채택 이후이다. 최초 문명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이전 8명의 왕이 무려 24만 1,200년 동안 다스렸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1. 창조 연대 해석
1) 교회역사를 통해 여러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창세기 1:1-2:3이 기술하는 창조의 날의 길이와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해왔다.
2) 전통적인 유대주의에 따르면 약 3,760년, 17세기 영국의 어셔(Ussher) 감독은 창세기 계보들은 엄정한 수치이며, 창조의 ‘시작’은 창조기사(창 1:1-2:3)에 계산된 한 주간의 첫 날이라는 잘못된 가정들에 기초하여 창조는 주전 4004년에 일어났다고 이해한다.
3) 초대교회는 창조의 날들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가졌으니, 성 어거스틴을 실례로 상징적 내지 알레고리적인 견해를 지지하여, 창조는 순간적이었을 것이며 “우리 시간의 7일은 비록 명칭과 숫자 매김에 있어서 창조의 7일처럼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시간의 경계를 긋고 있지만, 그 첫 6일들은 우리에게 낯선 형태로 발생했다”고 이해한다. 즉 어거스틴은 우주가 시간 속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더불어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4) 중세의 많은 주석가들은 어거스틴에 동의하지만,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그 날들은 일상적인 24시간 길이라는 신념을 향한 전환이 더욱 흔하게 되었다. 루터, 칼빈, 그리고 수많은 개혁자들이 바로 24시간의 ‘날’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복음주의 학자들의 창조 연대 해석
1) 일상적인 하루의 날(Ordinary Calendar Day) 이론
(1) 하나님께서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신 바, 창조사역은 창세기 1:1-2:3에 진술된 순서를 따라 24시간으로 구성된 하루의 6일로써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2)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개혁신학과 장로교의 대표적 교리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의 저자들과 현금의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들이 지지하고 있다.
(3) 근본주의, 창조과학
2) 날 세대(Day Age) 이론
(1) 창조사건의 시간의 연속성을 인정하면서도 각 날의 기간은 긴 기간임을 고수한다.
(2) 이 견해는 우주의 연령에 대한 현대 과학적 이론들과 성경 자료들 간의 일치를 요구하여, 만일 과학적 자료가 우주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결론짓는다면 성경 자료 역시 하루란 긴 시간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3) 피어선 설립자 아더 피어선
3) 문예적 틀(Literary Framework) 이론
(1) 여러 가지 접근들이 있는바 혹자는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역사적 기술임을 인정한다면 다른 혹자는 다소 자유주의적 진화론적 기술임을 받아들인다.
(2) 역사적 기술임을 인정하는 자들은 ‘저녁과 아침’이란 정상적인 24시간 하루를 하나님의 신적 활동주간의 전체적인 문예적 상징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믿는다.
(3)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7일 한 주간이란 문예적 틀로 묘사되며, 그 날들은 시간적 순서라기보다는 논제적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믿는다. 진화론적 기술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창조 내러티브를 벗어나는 것이다.
(4) 유신론적 진화론
4) 유비적 날(Analogical Days) 이론
(1) 하나님의 6일 창조 주간과 하루 안식일의 휴식과 인간 6일 노동 주간과 하루의 휴식 사이에는 일치하는 유비가 있음을 강조한다.
(2) 따라서 하나님 사역의 각 날 후에는 우리 인간의 노동일에서 휴식하고 회복하는 기간에 대한 패턴을 설정하는 ‘저녁과 아침’이 있다. 이 날들은 대체적으로 연속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날들의 부분들은 겹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허용한다.
5) 미확정된 기간의 날(Indeterminate Period of Days) 이론
(1) 창세기 1:1-5의 원문주석은 성경이 배열한 창조의 날의 순서를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각 날의 길이는 E. J. Young이 자신의 Studies of Genesis One에서 “이 날들의 길이는 진술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미확정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2) 여기서 우리는 창조의 날들은 별개의 사건들이나 성경적 창조의 가능한 설명으로서 ‘거대 진화’(macro-evolution)는 거부하는 입장을 지지한다.
(3) 에드워드 영, 김진섭, 조덕영
※ 미확정된 기간의 날(Indeterminate Period of Days) 해석
창조기사(창 1:1-2:3)의 원문분석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왕들 중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왕국의 중심부인 왕궁/신전으로서의 우주를 ‘지적 설계’를 따라서 6일 창조를 진행하신 설계사-건축가-감리이시다.
우주 건축의 날과 기간의 질문에 관해 “미확정된 기간”의 견해를 지지하는 14개의 근거들이 있다.
(1) "태초에"("베레쉬트", “왕국의 시작에 있어서”): 공식 등극 때까지의 미확정된 기간의 왕적 동치
(2) "그가 창조하셨다"("바라", “잘라서 모양을 내다”): ‘완성적’(telic) 동사로서,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을 가리킨다.
(3) 고대근동문헌의 문체적 특징으로 창 1:1은 전 우우창조의 개요와 요약이다.
(4) 창세기 1:2-2:3은 주로 지구에 초점을 맞추어 우주창조를 보다 자세하게 묘사한 ‘반복’(resumption)과 ‘확충’(expansion)이다.
(5) ‘날’(욤, םוֹי): 미확정된 길이의 날들로서의 구체적 의미.
(6) ‘어둠’(2절)은 물론 두 번째 ‘어둠’(4-5절)에 기인한 첫째 날은 일상적인 하루보다 더 길었다.
(7) 전치사가 없이 사용된 ‘저녁과 아침’이란 쌍의 독특한 용법은 미결정된 길이의 날을 드러낸다.
(8) 다니엘 8:14, 26(참조. 12:9-13)의 접속사(ו, 와우)가 없는 ‘저녁과 아침’이란 한 쌍의 표현은 매일의 제사를 위한 일상적인 하루를 표현하지만, 매일 하루 종일의 제사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9) 첫째 날과 넷째 날에 ‘낮’과 ‘밤’이라는 두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일상적인 태양일의 하루를 표현하는 히브리어 관용어인 ‘낮과 밤’이라는 한 쌍의 단어로 사용된 경우는 없다.
(10)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정관사 없이 서수(ordinal)를 사용한다.
(11) 유일하게 정관사를 붙인 서수가 여섯째 날에 사용된 것은 제1일에서 6일까지의 종결을 의미하며, 일곱째 날에 사용된 것은 제1일에서 6일까지의 종결을 의미한다.
(12) 제7일은 창조된 역사의 기간을 의미하는 실제 날이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열린 채 종결하는”(open-ended) 날이다.
(13) 제7일만 유독 ‘종결부’(coda, “~째 날이니라”)가 없는 것은 인간의 일상적인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다.
(14) 인류 타락 이전에 동물의 죽음의 가능성
이상의 14개의 사실에 근거하여 우주나 지구의 연령 문제에 대한 논의는 기독 과학자들이 과학적 자료나 증거를 가지고 성경에 임의적 ‘자기해석’(eisegesis)를 시도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우주창조(창 1-2장)ㅡ인간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창 3장 - 계 20장)ㅡ하나님의 우주완성(계21-22장)이라는 3단계의 구별되고 점진적인 창조사관과 언약신학의 큰 틀 아래에서 창조기사(창 1:1-2:3)의 철저하고 신중한 석의(exegesis)를 따라야 한다고 결론 맺을 수 있다.(김진섭 교수, 전 백석대 부총장, 구약학)
3. 결어
그리스도인의 창조사관은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History is His Story)라는 말처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고 선포하시는 주 예수님 중심의 구원사관이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evk, 에크; 창조-재창조), 주로 ‘말미암고’(dia,, 디아; 섭리-성화), 주'에게로‘(eivj ,에이스; 심판-영화) 돌아가기에”(롬 11:36), 역사의 진정한 주권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연대(年代)”로 역사를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계시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성경이 제시하는 인물, 장소, 사건, 연대의 자료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규범임을 고백하면서, “성경이 모든 학문 연구의 최고, 최종 교과서”임을 천명할 사명을 확인한다. 올바른 창조사관에 기초한 모든 학문의 통합적인 연구를 통하여, 주 예수님은 모든 학문의 영역에도 주인 되심을 주장할 “분야주권”(sphere sovereignty)의 개혁주의 문화관-세계관을 가지고, 진화론적 인본주의와 종교다원화의 세속정신이 팽배한 학계와 교계 앞에서 복음 진리의 나팔수 역할을 계속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는 “중생한 학문수행”의 올바른 질문과 그 신앙고백적인 해답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주의 내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실제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과 다양성”(unity in diversity)의 긴장에 대한 절묘한 균형과 조화이다. 우리가 지구의 연령과 ‘창조의 날’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개혁신학의 교단들인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나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목사안수와 결부하여 2000년대 초기에 발생한 창조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에 대한 연구와 제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먼저 우리가 반드시 일치해야 할 것들을 규명하고, 그 다음 우리의 다양성을 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정하고 용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에 일치해야만 하는가? 성경은 영감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창세기 1:1-2:3 또한 그러하며, 이 우주창조 기사는 모세가 기록한 오경의 전략적 일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창조기사는 장르 상 신화가 결코 아니며, 참된 역사이며, 우주와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하와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업’(Magnalia Dei)이며, 진화론적 발상에 어떤 여지도 주지 않는 것이다.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되어 계시록 20장까지 계속되는 “인류타락과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대하 내러티브’(meta-narrative) 역시 그 인물과 장소와 사건 모두가 역사적 진실이다.
우리는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탐구가 내놓는 산물들이 반드시 성경의 권위 아래 완전한 승복을 가져야 하기에 비 중생한 ‘사이비 학문적’(pseudo-scientific)인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과 절대 조화될 수 없으며, 성경적 초자연주의 입장에서 우리의 중생한 순수 학문 행위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품어야 하는 다양성은 무엇인가? 복음주의자 내지 개혁신학의 신학자나 과학자들이 창조의 본질과 기간에 대해 완전히 일치하는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해묵은 논제들인 천년설(전-, 후-, 무-), 세례와 침례, 예배의 내용과 형식, 은혜와 진리, 젊은 지구와 오래된 지구; 노아홍수 대격변론과 다중 격변론 등에 대하여 성경원문의 주석학적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앞서 논한 우주창조 기간에 대한 다섯 개의 이론(“일상적인 하루의 날, 날 세대, 문예적 틀, 유비적 날, 미확정된 기간의 날”)이 복음주의자와 개혁신학자 내부에 공존함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발생 가능한 비방과 분열을 절대적으로 막아내며 서로를 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 아래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 “통일성과 다양성”의 논제를 놓고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하)는 놀라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그렇다! 한국창조과학회가 중심점에 놓여 있는 “지구의 연령”에 대한 뜨거운 논쟁에 관해서도 우리는 현대판 고린도교회의 문제점과 해답을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교만한 지식”의 계층화(고전 8-10장; 해답: 8:1,13)와 “이기적 은사”의 분열화(고전 12-14장; 해답: 14:26)를 막는 유일한 해법은 “희생적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신앙고백으로 주 예수님께서 명하신 ‘새 계명’(요 13:34-35)을 실천하는 것이다.
▲김진섭 교수(성균관대학교 생면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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