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신인상 당선자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8년 8월호, 제202호 신인상 수상작] 장미 - 오세신
신아출판 추천 0 조회 102 18.08.06 12: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한 이불 덮고 자던 언니를 먼 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한 가지에 난 잎도 떨어질 때는 이에 저에 따로 떨어지는 생의 순리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김없이 5월이 오면 장미는 다시 피어나고 그리운 언니도 함께 피어난다. 꽃 속에 어리는 언니는 여전히 서른살 고운 모습이다. 죽음이 언니를 불러 갔지만 이승에서 못다 한 노래를 다른 세상에서 부르고 있으리라."






   장미   -   오세신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피어오르는 장미가 해거름 햇살에 한층 붉다. 빨래를 걷으려다 걸음을 옮겨 찬찬히 들여다본다. 꽃 속에 언니의 모습이 어린다. 장미의 화려함처럼 청춘을 펼치지 못하고 시들어간 언니가 잔잔한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우리 집 이불장에는 사계절 시들 줄 모르는 장미가 피어있다. 결혼 선물로 언니가 손뜨개로 떠준 장미이불이다. 연노랑 바탕에 초록 잎사귀가 겹겹의 빨간 꽃잎들과 어우러져 향기가 배어나오는 듯 화사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행이 지났지만 나에겐 어떤 값진 이불보다 소중하다. 언니는 먼저 시집가는 철없는 동생에게 정성스런 마음을 담아 나비가 춤추듯 손끝에서 수십 송이의 장미꽃을 피워냈다.
   언니를 두고 결혼하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이야 독신을 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동생이 먼저 간다고 흠이 될 것도 없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그렇지를 못했다. 언니가 밤낮으로 피워 낸 장미는 나의 신혼 방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밤이면 꽃밭이 되어 덮고 누우면 언니의 손길이 느껴져 따스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언니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언니는 갸름한 얼굴에 눈이 매우 컸다. 웃을 때면 눈웃음이 시원해 보였다. 언제나 말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즐겼다. 아기 때 젖이 부족해서 배를 많이 곯았다고 하더니 나보다 네 살이나 위지만 작고 약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잠자리에 들면 엄마를 사이에 두고 서로 가슴을 만지려 힘겨루기를 하곤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힘이 센 나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 떠밀리듯 서울에 있는 어느 부잣집에 일하는 아이로 보내졌다. 언니가 떠난 후 엄마는 밥을 못 먹고 잠도 설쳤다. 언니의 빈자리는 엄마의 무거운 한숨으로 채워졌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엄마는 바쁘게 서두르더니 서울 간다며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기차 타는 것이 설레어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 엄마가 간 곳은 언니가 일하는 집이었다. 마침 주인은 집을 비웠고 언니 혼자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갑작스런 방문에 언니의 눈망울은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처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 주인아저씨의 바지가 언니의 키만큼 커 보였다. 엄마는 언니의 얼음 같은 작은 손을 잡고 연신 “내가 죄인이여.”를 되뇌며 가슴을 쳤다. 엄마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훌쩍이는 내 가슴 속에도 샛강이 흘렀다. 저녁때까지 주인을 기다려 사정을 하고선 언니를 데리고 집으로 내려왔다.
   마침 동네에서 십 리나 떨어진 읍내에 야학이 생겼다. 언니는 밤길을 마다않고 열심히 다녔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밤늦게 돌아와서도 등잔불 밑에서 콧속이 까맣게 그을리도록 책과 씨름을 했다. 공부의 즐거움도 잠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던 언니의 꿈이 무참히 꺾이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야학이 문을 닫게 되었다. 언니의 눈빛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말이 없던 언니는 얼마 뒤 친구들을 따라 서울에 있는 봉제공장으로 다시 일하러 떠났다. 가난한 소녀들이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내몰리던 시절이었다.
   언니가 스무 살이 되던 봄, 폐결핵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집으로 내려왔다. 기나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핵은 잘 먹어야 한다는데 세끼 해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몸은 점점 야위어 화사하던 모습은 초췌해져 핏기를 잃어갔고 자지러지는 기침을 해댔다. 해가 마루를 지나 담을 넘어가면 콜록거리는 소리가 더 가팔라졌다. 나는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기침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어 귀를 막았다.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던 날, 언니는 심한 각혈을 했다. 장미꽃잎이 뚝뚝 떨어지며 파리한 창호지에 꽃물을 뿌렸다. 흥건히 쏟아 낸 선혈이 해넘이 서녘 노을같이 붉었다. 언니는 결국 저세상으로 떠났다.
   가슴이 저려서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장미꽃 붉은 송이가 언니의 각혈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가시가 돋쳐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서 언제나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니를 보내고 알았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앞에서 모두가 환호를 보낼 때 뒤에선 사무친 설움에 목이 메일 누군가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언니는 가르쳐 주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한 이불 덮고 자던 언니를 먼 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한 가지에 난 잎도 떨어질 때는 이에 저에 따로 떨어지는 생의 순리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김없이 5월이 오면 장미는 다시 피어나고 그리운 언니도 함께 피어난다. 꽃 속에 어리는 언니는 여전히 서른살 고운 모습이다. 죽음이 언니를 불러 갔지만 이승에서 못다 한 노래를 다른 세상에서 부르고 있으리라.
   깊숙이 넣어둔 이불을 꺼내어 펼쳐 본다. 침침한 등잔불 밑에서 피워냈던 장미가 방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오랜만에 장미꽃이불을 덮고 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을 그리운 언니를.
  


 

오세신  ---------------------------------------------
   충남 천안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졸업.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수강. 진등재 문학회 회원, 재능 시낭송가.

 



당선소감


   수필 개강하는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큰 강의실임에도 내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문학을 꽃피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나에겐 글 쓰는 사람들이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비쳐졌다. 문학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미리 겁을 먹었다.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몇날 며칠 머리를 쥐어짜내어 넋두리 같은 글을 썼다. 내 안에 충실히 여문 문학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며 교수님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씨앗에 한 줄기 물이 뿌려졌다.
   어린 나무는 꽃 피우느라 한창이고/ 4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내 인생의 고목에 움이 텄다. 이제 잎을 내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워내야 할 것이다.
   기회를 주신 수필과비평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인생의 말미를 풍요로운 문학세계로 끌어 주신 지도 교수님께 마음의 큰절을 올린다. 또한 글의 자매가 되어 준 문우님들께도 진정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