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희망을 노래하시는 멋진 교육장님!!!
어느 해 보다도 금년 단풍잎들의 색깔이 참으로 곱습니다. 울긋불긋 비단결처럼 펼쳐진 단풍잎들은 보는 이들에게 여유와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연이 사람들과 공존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주변의 작은 들풀들조차도 자기 몫을 다하려고 향기를 선물합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저 고마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대전, 공수부대원으로 참전을 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은 헤롤드 러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당시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된 러셀은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러셀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좌절에 빠져있던 러셀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며 자신에게 아직 잃은 것보다는 남아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양팔에 의수를 달아 타이핑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어 자신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영화에 출연하여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러셀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부상으로 주어진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이때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챙겨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면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래 전, 주간조선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그는 환자야"라는 말입니다. "그는 환자야" 라는 말은 미국의 모 병원에서 연세가 많고 노련한 의사가 환자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한 젊은 의사 에게 충고 한 말입니다.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젊은 의사도 지치다보니 환자분에게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짜증이 나더라도 "그는 환자야"라는 말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치료와 보호를 받아야 할 환자이기 때문입니다.‘환자’라는 말 대신에‘학생’이라는 단어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는 학생이야”로 단어를 바꾸고 나니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이해하는 공간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습니다. 몸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운동장과 교실 복도를 구분하지 않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무슨 수로 잡아둘 수 있겠습니까? 어른들의 의식 중에‘학생’은 당연히 얌전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에 예, 예 해야 되는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까불고, 부당한 지시에 이유를 달면 어른들에게 대든다고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를 문제 삼아 사기를 꺾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같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교실에서 얌전하게 고분고분 말없이 자란 아이들이 훗날 버티어 낼 수 있을까요? 걱정이 앞서는 것은 버티어 내기가 힘들 것이라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어제 후배로부터 대학에 들어간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 중에 손버릇이 나쁜 학생이 있는데 알면서도 서로 못마땅한 시선으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후배의 아들이 어제 그 녀석과 한 판 붙어 사감으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숙사에서 나오면 객지에서 방을 구하기도 힘들기에 사감에게 한번 만 봐 달라고 통사정을 하였다고 하면서, 당장에라도 쫓아가서 아들의 귀 싸대기를 때려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후배에게 조용히 일렀습니다.“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소. 나약하게 자라는 것보다는 훨씬 자랑스럽네. 물론 지금은 힘들겠지만 결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는 않을 걸세. 아니, 지금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멋진 인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네”
학교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그는 학생이야”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논에 모를 심으면 농부는 매일 논에 나가 어린모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물에 뜬 모들을 주워서 심고, 또 떠오르면 심고 계속 보살펴 줍니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모두 다 망가집니다.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바르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교육의 부재”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핵폭탄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모든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웨덴 부모들은 아이가 넘어져도 일으켜 세우지 않습니다. 프랑스 부모들은 갓난아기가 칭얼대도 곧바로 달래거나 젖을 먹이지 않습니다. 좌절을 경험하고 인내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아침 뉴스에 “수발들며 키웠더니 망나니가 되어 돌아온 자식들‘이라는 타이틀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부모님들의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여,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천천히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조절해 나간다면 장차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려고 합니다. 금방이라도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들 것 같습니다. 아니 잊고 계셨던 분들에게 먼저 안부 전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TV를 켜면 중국의 손자 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떠오릅니다.“무릇 정치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요, 전쟁을 하기 직전까지 가서 이기는 것이 그 다음이요, 전쟁을 통해서 이기는 것은 가장 낮음이니라”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그 안에 3%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3퍼센트의 고운 마음씨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선생님들의 고운 마음이 학교와 아이들을 살리는 원동력입니다. 활기찬 한 주 되시기를 바라오며,,,, 강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