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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를 일러서 N포세대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삼포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수 많은 대한민국의 20대 젋은이들은 비싼 등록금, 취업난 같은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한 젊은이들은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삼포는 이내 오포가 되었습니다. 삼포에 더하여,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내 집 마련도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오포는 다시 칠포가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7포세대라는 말은 마침내 N 포세대가 되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면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취미나 여가 생활도 포기하고, 자존감도 포기하고,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포기하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젊은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N 포세대에 속하는가? 69.0%가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31%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N포 세대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안 나가도 점수를 받고, 실력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온갖 사치를 다 누리면서, 부모 잘 만나서 돈이 많은 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기가 물론 힘들고 내 앞 길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희망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사람들입니다.
포기했다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포기하였는지 물었습니다. 역시 알려진 그대로입니다. 56.8%가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포기했다는 사람도 56.6%였습니다. 내집 마련을 포기한 사람도 52.6%. 절반을 넘습니다. 그 뒤로 연애, 출산, 인간관계 순이었습니다.
사실 겉으로는 다 포기했다고 하고, 다 내려놓았다고 말하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 가지고 싶은 욕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 포기했더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사실, 한 편으로는 편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포기한 자를 loser라고 부르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기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이나 패배감, 성공한 사람들에 대하여 갖게 되는 열등감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N포 세대를 양산하는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와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망과 좌절감을 심어주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가 하루 속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첫 번 제자를 부르신 장면입니다. 마가복음서의 시작은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촉구하면서, 회개의 표로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가서 세례를 받았고 그 가운데 예수님도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헤롯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다가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는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체포되자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는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따라갔다’는 말은 제자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보니,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형제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아마 똑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첫 번째 단계는 버리는 것, 즉 포기하는 것입니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배를 버려두고, 그물을 버려두고,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됨의 조건은 버리는 것입니다.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청년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그리스도 찬가가 나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 영광과 존귀, 위엄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을 비우셨습니다. 영광과 존귀를 다 버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이 되셨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의지도 권위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삶은 고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나와서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도다." 지금 예수님이 신세 한탄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따르겠다고? 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편안한 안식처, 따뜻하고 아늑한 ‘내 집’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나를 따라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권위도, 자존심도, 안정에 대한 욕구도 다 포기하셨기에,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모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복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께 마귀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느니라." 또,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데리고 가더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자들을 명하여 그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 아니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하였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님이 포기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인간 세상에서 재물은 언제나 사람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재물을 상징하는 떡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인기나 명예의 유혹도 물리치셨습니다.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마귀는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이것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지만, 예수님은 깨끗이 이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요? 처음 부르심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버리고 그물을 버렸습니다. 배와 그물은 어부에게는 삶의 방편이며 삶의 근거였습니다. 배와 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배를 손질하고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기웠습니다.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던질 때 목표는 한 가지, 더 많은 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고기를 잡아야 가족들과 더불어 생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배를 한 척 더 살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이 잡고, 더 좋은 집을 사고, 더 기름진 것을 먹고, 세상에서 인정도 받고, 힘도 쓰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이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 마지막 심판의 날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모으고 구원하는 사명입니다. 단순히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안일한 삶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을 위하여,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리고 붙잡은 것은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약속을 붙들고, 그 부르심의 소명, 마지막 부탁하신 그 사명을 위하여 제자들은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그 사명 때문에 옥에 갇혔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가난과 박해 가운데 불안정한 삶이었지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 부르심의 사명,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제자들은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있지만, 그러나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 믿음은 절대로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주님의 뜻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며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어떤 꿈이 있으십니까? 그 꿈과 계획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하나님이 당신의 그 계획과 그 꿈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진 그 꿈이 곧 부르심일 수 있다면, 그렇게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 꿈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그 길을 갈 때, 하나님은 그 길을 열여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포기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는 첫 단계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 나의 욕심으로 비롯된 나의 계획, 나의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온갖 욕심,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또 다른 사람들을 조정하며 힘을 쓰고자 하는 권력욕, 그리고 명예욕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신 것처럼,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소명입니다. 소명은 곧 희망입니다. 스스로 낮아지고 자기를 비워서,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뜻대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믿음 안에서 소명을 붙들고 나갈 때.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갈 때, 우리는 의미로 충만한 구원의 삶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무엇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가십니까? 이 아침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