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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주일_한나와 사무엘
사무엘상 1:6-11
6. 게다가 적수 브닌나는, 야훼께서 잉태하게 해주시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는 한나를 더욱 괴롭혔다.
7. 엘카나가 매년 야훼의 신전에 올라갈 적마다 그렇게 하였으므로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혔고 한나는 목이 메어 먹지를 못했다.
8. 남편 엘카나는 한나를 보고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슬퍼만 하오? 내가 당신한테는 아들 열보다도 낫지 않소?" 하며 위로해 주었다.
9. 실로에서 제사상을 물리고 나자 한나는 일어나 야훼 앞에 나아갔다. 그 때 마침 사제 엘리가 야훼의 성전 문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아파 흐느껴 울며 야훼께 애원하였다.
11. 그는 서원을 하며 빌었다. "이 계집종의 가련한 모습을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계집종을 저버리지 마시고 사내 아이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 아이를 야훼께 바치겠습니다. 평생 그의 머리를 깎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인구 감소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소멸할 국가’, ‘출산율 세계 꼴찌’라는 불명예는 최근 우리나라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출산율은 2018년 0.98명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0.72명까지 떨어졌죠.
우리 정부는 지난 15년간 380조 원을 저출산·고령화에 대책에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하락세를 지속했고, 고령화 대책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출산율 0%대 쇼크'는 총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를 가속시킬뿐 아니라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 등 인구유출에 따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674만 명에서 2060년 2069만 명으로 1600만 명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런 예측대로라면 인구 감소만이 아닌 국가 소멸로 치닫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행안부가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89곳(2021 10. 18)의 실태를 보면 지방의 열악한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89곳의 면적은 우리 국토의 절반가량이 되며, 전체인구의 9.6%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중 84곳이 농촌지역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농촌 인구의 평균 연령은 63세입니다. 농촌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게 된 것이죠.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은 소비위축에 따른 생산감소로 지역경제의 쇠퇴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소비와 생산을 축소시켜 지역경제를 몰락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죠. 국가적으로는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으로 일자리와 주거환경이 악화되어 초저출산을 가속화 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지난 15년간 3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전혀 개선되지 못한 출산율과 인구절벽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일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만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너무도 치열한 경쟁 사회란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안정과 직업적 성취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젊은 부부들이 받는 경제적 압박입니다. 그중에서도 주거비용과 교육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죠. 집값이 오르고 교육비도 높아지면서 출산을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세 번째는 성 불평등 구조입니다.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기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나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출산을 미루는 선택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네 번째는 정부의 적절한 지원정책 부족입니다. 출산과 양육을 돕는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층의 가치 변화가 저출산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의 삶과 자기 계발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런 가치 변화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죠. 그래서 결혼과 출산보다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이러한 가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판관)인 사무엘((Samuel, 히브리어: שְׁמוּאֵל)의 어린 시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 말기(BC 약 1103-1017)에서 왕정시대 초기(BC 약 1050-1000)에 걸쳐 활약한 인물로 최후의 사사이며 최초의 예언자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살던 엘가나였고, 어머니는 한나였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나는 기도 중 야훼께 ‘아들을 주시면 그를 야훼께 바치고, 평생 그의 머리를 깎지 않도록 하겠다(삼상 1:11)"는 나실인의 서원을 하였습니다. 나실인이란 ‘구별된 자’란 뜻으로 일평생 혹은 특별한 헌신을 위해 한시적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을 말합니다. 평생 나실인으로는 삼손(삿 13:5), 사무엘(삼상 1:28), 세례요한(눅 1:15) 등이 있었습니다.
야훼께서는 아이를 점지해 주셨고, 한나는 서원한 대로 젖을 뗀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에게 보냅니다. 어린 사무엘은 성막을 지키며 엘리 대제사장에게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할 때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98세쯤 되던 해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죠.
어린 사무엘은 성전에서 야훼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언과 환상이 드물어진 때에 사무엘은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예언과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데, 계시가 희미하다는 것은 그 시대가 타락하고 부패하여 영적으로 어두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백성들이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의 계시에 무관심했다는 것이죠.
성막에서 자고 있던 사무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처음에는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성막에서 봉사일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야훼는 알지 못했을 때였습니다(사무엘상 3:7). 처음 세 번은 야훼께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는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대답했습니다. 그제서야 엘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였고, 사무엘에게 다시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야훼께 응답하라고 가르쳐주죠.
“야훼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사무엘상 3:10). 하나님께서는 엘리에게 심판이 임하리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행을 일삼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엘리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횡령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성을 성폭행하는 등 두 아들의 죄상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날, 사무엘은 엘리에게 야훼의 말씀을 전합니다(사무엘상 3:11–18). 그리고 엘리는 이를 담담히 받아드립니다. 선지자로서의 사무엘의 신뢰성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졌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계속 드러내셨습니다(사무엘상 3:20–21).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전투에서 사망했고, 언약궤는 빼앗겨 블레셋으로 옮겨졌습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넘어져 목뼈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몇 달 후, 블레셋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에게 되돌려 주었는데,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서 20년 이상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자인 블레셋에 대항하여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숭배하던 거짓 신들을 없애라고 지시합니다. 사무엘의 지도력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물리치게 됩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였죠(삼상 7:9-13). 이로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의 사사로 인정받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무엘은 사사 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연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국을 여는데 매우 중대한 일을 했던 인물이었죠. 사무엘이 평생을 하나님과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살게 된 뿌리에는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아버지 엘가나의 조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는 성서에 여러 차례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야기와 야곱의 아내 라헬 이야기, 사무엘의 부모인 엘가나와 한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었고,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남편 야곱에게 아이를 낳게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되는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유일하게 기도에 매달린 여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였지만 한나만큼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무엘을 낳게 되죠.
그런데 사무엘이 누구도 이루지 못할 업적을 남긴 사사로, 예언자로, 제사장으로 남은 것은 한나의 양육하는 과정과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의 남편은 엘가나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엘가나에게는 한나말고도 브닌나라는 아내가 있었죠.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브닌나가 자식이 없는 한나를 멸시하고 괴롭혔다고 증언하죠. 한나는 브닌나의 괴롭힘에 분노지만 해결책은 싸움이 아닌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한나에게 엘리 제사장이 왜 그렇게 울면서 기도하느냐고 묻습니다. 한나는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죠(삼상 1:16).
죽을 것 같은 고통, 원통함과 격분, 수치스러움, 땅에 떨어진 자존감 때문에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한나는 기도로 그런 상황을 극복합니다. 한나는 성전에서 기도를 마친 후 평온을 되찾았고 근심을 버렸습니다(삼상 1:16-18).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남편 엘가나의 조력도 위대한 사사 사무엘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됩니다. 엘가나는 위대한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버지로부터 고조할아버지 이름까지 소개한 것을 보면 그가 꽤 좋은 가문의 사람이요, 당시 특별한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 집안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눈치나 심지어 학대를 받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분명 한나에게도 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아이를 낳지 못한 한나를 보며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슬퍼만 하오? 내가 당신한테는 아들 열보다도 낫지 않소?" 하며 위로해 주었습니다(삼상 1:8).
또한 엘가나는 한나의 서원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규례에 의하면 아내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더라도 남편이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가나는 아내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기도를 신뢰하고 하나님께 아들을 드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한나와 함께 일 년에 한 번 성전에 가서 사무엘을 찾아 필요한 것을 제공하죠.
어린 사무엘은 성전에 바쳐진 뒤로 몸에 모시 에봇을 입고 지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년 제사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올라올 때마다 작은 두루마기 한 벌을 지어다가 아들에게 주었죠.
사무엘은 젖을 뗀 3-4살쯤에 제사장 엘리 밑에서 성전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삼상 1:22–25). 어린아이임에도 사무엘은 자기 제사장복(에봇)을 입었는데, 보통 이 제사장복은 언약궤가 놓인 실로의 회막에 들어가 야훼 앞에서 사역할 때에 입으라고 주어지는 옷이었습니다(사무엘상 2:18; 3:3).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법정기념일인 어린이날(5월 5일)을 즈음하여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양육의 정신을 높이는 주일입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게,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것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제안된 어린이날의 기원은 1919년에 3.1 운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자 진주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 소년회가 창설되기 시작한 것이죠. 방정환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을 뜨고 1921년 김기전, 이정호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고는 아이를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1922년 4월 각 소년운동 단체, 신문사 등이 모여 논의한 결과 어린이날(소년일)은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5월 1일로 정하였습니다. 그 해에 천도교소년회에서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였습니다.
1923년 5월 1일에는 색동회 창립식 날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당에서 크게 열었습니다. 기념행사의 표어는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 "잘 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였습니다. 이는 어린이가 미래의 희망임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방 뒤 첫 어린이날은 1946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인 5월 5일이었는데,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막기 위해 이후로는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고, 오늘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어린이가 희귀해 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사무엘처럼 슬기로운 어린이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미래기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기성세대, 부모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합니다. 젊은 부부가 안심하고 아이를 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것이죠. 양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국민 전체가 함께 해야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부모들이 된 우리 역시 한나와 엘가나의 정신과 헌신을 본받아 새 시대를 열어갈 주역들인 어린이들은 신앙으로, 슬기롭게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2024.0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