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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스크랩 한국에도 탑묘형식의 스투파가, 제주 평화통일불사리탑에서
보타(dsw) 추천 0 조회 57 16.05.02 16: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에도 탑묘형식의 스투파가, 제주 평화통일불사리탑에서

 

 

제주성지순례 이틀째이다. 순례지는 평화통일불사리탑과 성산동암사이다. 첫째날은 제주서쪽 방향이었고, 둘째날은 제주동쪽방향이다. 제주동쪽방향 첫번째 일정의 시작이 일명 도림탑이라고 불리우는 평화통일불사리탑이다.

 

주민등록증을 까보니

 

불사리탑순례에 앞서 제주시 호텔에서 1박 하였다. 호텔은 제주하와이호텔이다. 모두 25명이 순례자인데 남자가 8명 여자가 17명이다. 부부팀도 5팀이나 있었지만 4-5인실 온돌방을 여러 개 잡아 남녀구분하여 숙박하였다. 남자법우님들의 방의 경우 두 개인데 트여 있어서 매우 넓직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조식을 하고 모두 큰 방으로 모였다. 거의 20명 가량 들어 가는 너른 온돌방은 아마 학생들의 수학여행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차담을 하였다. 미리 준비해 온 차도구를 이용하여 중국명차를 나무었다. 자연스럽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되었다.

 

여자법우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일까 법우님들은 자기소개시간을 가졌다. 불교로 인연 맺은지 만12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세히 모르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이이다. 그래서 주민등록증을 까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여행을 준비한 총무로서 나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 여행자보험용으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오륙십대이다. 가장 고령자는 47년생 남자법우님이다. 여자법우님은 50년생이다. 가장 젊은 나이는 67년생으로 남자이다. 여자는 62년생이다.

 

대부분 오륙십대이다. 그러나 불교와 인연을 맺을 당시에는 사오십대이었다. 그때 당시 사십대는 오십대가 되고, 오십대는 육십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모임에서 한가지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번 연장자이면 영원한 연장자이고, 한번 막내이면 영원한 막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이제 50이 된 법우님은 모임에서는 여전히 막내이다.

 

서로간의 나이를 확인한 법우님들은 한바탕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더구나 날씨마저 청명하여 마음마저 산뜻하였다. 어제는 비가 내렸으나 늘 그렇듯이 비 개인 후의 다음날은 빛이 난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공기는 상큼하다. 햇살에 초록의 잎파리는 빛이 난다. 어제와는 너무도 달라 살맛이 났다. 산뜻하게 출발한 순례의 첫 목적지는 평화통일불사리탑이다. 입구에서 여자법우님들의 경우 나이 순서대로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하였다.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어디에 있을까?

 

평화통일불사리탑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곳은 어디에 있을까? 버스운전기사겸 가이드도 지나가는 길에 보기만 했을 뿐 처음 와 보았다고 했다. 지도로 검색해 보니 제주하와이호텔에서 평화통일불사리탑까지 거리는 16키로미터 거리에 있다.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아스라이 한라산이 보인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온 듯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이국적이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더구나 열대나 아열대지방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야자수가 곳곳에 있다. 마치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온 듯 하다.

 

 

 

 

 

 

 

 

 

 

 

 

 

 

 

 

 

 

33미터높이의 스투파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어떤 것일까? 안내판을 보니 불사리탑높이는 33미터에 달한다. 33천을 뜻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만든 것일까? 도림스님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일주동로 884에 있는 불사리탑 조성에 대한 이야기를 불교방송에서 들었다.

 

 

 

 

 

 

 

 

한때 불교방송을 열심히 들었다. 주로 이른 아침 불교강좌시간이다. 사년전의 일이다. 그 때 당시 도림스님이 법화경강좌를 진행하였다. 이에 대하여 도림스님의 사자후와 독특한 법화경 게송노래(2012-04-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그 때 당시 도림스님은 방송강좌에서 “수행이라는 것이 뭐냐. 앉아서 기도하고 참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여. 참말로 민중속에 들어가서 군중속에 들어가서 그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여.”라 했다.

 

강의 중의 스님은 종종 제주도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은 불사리탑에 대한 것이다. 방송 중에 오로지 불사리탑 건립을 목표로 십년 기도를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아서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접한 일명 도림탑이라 불리우는 사리탑을 접하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무불상시대에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불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사찰양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 볼 수 있는 탑묘양식을 따른 것이다. 이런 불탑형태에 대하여 다고바(Dagoba)’라 한다.

 

다고바는 스투파로서 우리나라 탑묘의 개념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해 놓고 있어서 불자들의 신앙의 대상이 된다. 주로 스리랑카에서 볼 수 있다. 마치 봉분형태의 모습은 산치대탑에서 유래한 것이다.

 

 

 

 

산치(Sanchi)대탑(B.C3세기)

 

 

 

산치대탑은 기원전 3세기에 아소까대왕이 세운 것이다.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쉬주의 수도 보팔 근처 북부 46km 지점에 위치한다.

 

거대한 봉분형태의 탑묘를 건설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불상시대와 관련이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약 5백년간 불상이 없는 시대가 있었다. 단지 부처님의 사리탑이나 족적, 보리수를 신앙하는 시대를 말한다. 이처럼 무불상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 산치대탑과 같은 스투파이다.

 

법당인가 석탑인가

 

스투파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그래서 사리가 들어가 있는 탑묘가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법당 앞에 있는 삼층이나 오층석탑이 대표적이다.

 

무불상시대에서는 탑묘가 숭배대상이었다. 후대 불상이 출현하면서 불상이 숭배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숭배대상이 탑묘에서 불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동아시아불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불자들은 참배하러 갈 때 법당에 들어 간다. 법당에 부처님상이 모셔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불상시대는 탑묘가 신앙의 중심지이었다. 법당 보다 탑묘인 것이다.

 

마하위하라(Maha vihara: 大寺)의 위용을 보면

 

무불상시대에 스투파는 숭배대상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다고바라는 이름으로 역시 숭배의 대상이다. 그런 다고바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거의 55미터에 달한다. 5세기에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가 주석하였던 아누라다푸라의 마하위하라(大寺)’의 위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Maha vihara(大寺, akkakaso)

 

 

 

혼합된 형태의 제주수투파

 

제주에서 탑묘형식의 거대한 스투파를 보았다. 도림스님이 10년 걸려서 만들어 놓은 걸작이다. 스투파 꼭대기에는 한국전통양식의 탑이 올려져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다보탑과 석가탑을 접목시킨 형태라 했다. 이렇게 본다면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스리랑카 전통양식과 한국의 전통양식이 혼합된 형태라 볼 수 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평화통일불사리탑묘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들어가 보니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아래층에는 약사전, 종무소, 전시관 등이 있다. 특히 전시관에는 방광하는 불사리탑의 사진이 걸려 있다.

 

 

 

 

 

 

불사리탑이 방광하였다는 이야기는 도림스님의 불교방송 불교강좌시간에 종종 들었다. 사진을 보면 무지개와 함께 탑묘가 희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층은 일반법당

 

스투파 2층은 일반법당이다. 둥그렇게 원형모양의 법당이다. 연등도 걸려 있고 탱화도 있어서 일반사찰의 법당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 오전 어느 불자가 법화경 사경 전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부처님 한분만

 

스투파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원형 돔 바로 아래 원형의 법당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에는 오로지 석가모니부처님 한분만이 모셔져 있다. 연등이나 탱화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

 

 

 

 

 

 

 

원형의 벽면에는 작은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마치 천불전의 작은 불상을 보는 것 같다. 이런 형태의 불상은 동굴에서 벽화의 형식으로 볼 수 있다. 한켠에는 법화경 사경을 위한 책이 잔뜩 쌓여 있다.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 보았다. 중앙에 불사리가 있는 황금빛 탑과 연결되어 있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도림스님이 스리랑카에서 가져 온 부처님치아사리가 보존 되어 있다고 했다.

 

 

 

 

 

 

맑은 기운이 감도는 법당

 

이른 오전 눈부시게 밝게 빛나는 날 3층 법당에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이른 오전임에도 몇 명의 불자들이 조용히 앉아 있다. 잠시 앉아서 입정하였다. 피라미드밑에 있으면 신비로운 힘을 받는다는데 원형의 돔, 그것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아래에 앉아 있으니 일반법당의 분위기와는 다르다. 마치 동굴속의 법당처럼 아늑하다.

 

 

 

 

 

 

제주 평화통일불사리탑은 이국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에 보지 못하던 남방불교양식으로 지어졌다. 특히 3층 법당을 보니 천정도, 법당도 모두 둥그런 원형이다. 그래서일까 마음도 안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법당을 만들 때 팔작지붕형태의 전통양식도 좋지만 스투파형식의 구조물도 괜찮을 것이라 보여진다.

 

 

 

 

 

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법우님들이 나이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런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음만은 청춘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순례단 평균연령은 오륙십대가 대부분이다. 10년 전에는 사오십대이었다. 불교와의 인연이 10년 넘었고 도반들과 인연 역시 10년 넘었다. 절에 10, 20, 30년 다닌 불자들이 있다. 그토록 오래 절에 다녔다면 공부는 얼마나 되었을까?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제자 마하 깟짜야나가 있었다. 어느 날 바라문들이 존자 깟짜야나여, 수행자 깟짜야나는 늙고, 원숙하고, 연로하고, 만년에 이른 바라문에게 인사하지 않고 일어서서 맞이 하지 않고 자리를 내 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불만을 토로 하였다. 젊은 부처님의 제자가 연로한 바라문들을 본체만체한다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제자 깟짜야나는 외도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깟짜야나]

바라문이여, 그 세상에 존경받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는 장로의 지위와 청년의 지위에 대하여 분명히 설했습니다.

 

바라문이여, 태어난 이래 여든 살, 아흔 살, 백 살의 노인이라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속에서 살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고뇌에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념에 삼켜지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한다면, 그를 어리석은 장로라고 합니다.

 

바라문이여, 검은 머리를 하고 꽃다운 청춘이고 초년의 젊음을 지니고 나이 어린 청년이라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속에서 살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고뇌에 불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념에 삼켜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를 슬기로운 장로라고 합니다.” (A2.37, 깐다라야나의 경,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이가 여든이 되었어도 여전히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장로라 했다.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장로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법구경에서 머리가 희다고 해서 그가 장로는 아니다. 단지 나이가 들었으나 헛되이 늙은이라 불리운다.” (Dhp260) 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반면 머리가 검은 청춘이지만 감각적 욕망에서 자유롭다면 진짜 장로라 했다. 비록 사미의 신분일지라도 진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자라면 그 사미가 장로인 것이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머리가 희다고 해서 모두 장로가 아니라고 했다. 이런 경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머리가 검어도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가 장로라 했다. 이 경우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든 바라문들이 자신들 앞에서 인사하지 않고 일어서서 맞이 하지 않고 자리를 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 할지라도, 부처님의 제자들은 나이 든 바라문 보다 정신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사실을 바라문들이 알았을 때 바라문들은 나이 어린 부처님 제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서 존자께서는 성숙한 사람으로 장로의 지위에 서 있습니다. 저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청년의 지위에 서 있습니다.” (A2.37) 라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탐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성숙한 청년의 지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검은 머리의 청년일지라도 탐진치에서 벗어나 있다면 공경과 공양의 대상이 된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나이를 먹었어도 부처님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나이는 문제 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날

 

눈부시게 빛나는 날, 4 24일 일요일 오전 평화통일불사리탑에 있었다. 스리랑카전통양식의 다고바에 우리나라 전통양식 석탑이 결합된 독특한 모양의 성지에 있었다.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 성지순례 기간 중에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둥그런 스투파와 야자수, 그리고 각종불탑들이 청명한 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합장하며 불사리탑을 세 바퀴 돌았다.

 

 

 

 

 

 

 

 

 

 

 

2016-05-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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