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들의 식생(植生)
올여름은 다른 해보다 더 덥고, 비도 많이 내릴 것이란다. 지금껏 휴가는 여름에 주로 갔고, 그것도 더운 동남아행이 많았다. 그렇다면 시베리아 추위보다 낫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지역에선가 벌써 온열병 사망자가 있었다. 기온이 높으면 유해 미생물들도 번창한다.
일기예보는 오늘까지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하늘을 보니 그러려니 하는 마음보다, 아마 오지 않을지도 몰라가 더 우세한 느낌이다. 요즘은 각자가 티비(?)를 손에 들고 다니니, 예전처럼 날씨보다 기상캐스트 옷차림 평하지 않아도 된다.
그에게 소중한 일상을 놓칠세라 하루살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단 산길은 미끄러우니 지난번에 갔었던 테크 연결된 산(무장애 산?)으로 등산을 가잔다. 스스로 자택감금 생활하던 사람들이 바깥 공기를 씌면 환장을 하겠는갑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자전거를 탄 두명의 젊은이가 다가왔다. 선거운동을 하는 중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현실정치에 대실망 티비뉴스를 절대 보지 않는다.
손을 내미는 그에게 '길이 뻔한데 젊은 사람이 왜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지도 못할 어려운 길을 가려느냐'고 하였고, 그는 그래도 '젊은 사람이 나서서 세상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돈선거라 자신은 돈이 없어 유세차도 못마련하여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보태줄건 없고, '기왕 시작했으니, 할려면 세상을 바꿀 각오로 최선을 다해보라' 말하고 그들에게서 헤어졌다.
하루살이가 타고 오는 버스에 내가 탑승했고, 가는 코스에서 베짱이가 차에 올랐다. 오늘 산행은 하루살이, 깔따구, 베짱이 그렇게 미물 삼총사가 함께 하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주로 재취업경쟁에서 탈락한 6,70대들이다. 그래서 언제 내릴지 모를 비를 각오하고, 오기로 산을 오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온이 높지않아 기분이 그런대로 상쾌했다. 정상엔 안개가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을 내려와 하루살이의 친구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고, 셋이는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비가 올듯 말듯, 비구름이 건너편 산허리를 감고 돌았다. 평소 내가 다니던 코스를 한바퀴 돌고 싶었으나 등산을 마쳤으니 적당히 하자고 둘이 손사래를 쳐댔다.
조금을 걷다가 천막아래 나무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쉬는곳 가까이 다가온 까치 한마리, 어째 가난과 질병에 찌든 사람처럼 측은해 보였다.
우리가 먹던 과자를 던져 주는데도 경계심이 매우 강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낸다. 약자를 보는 강자의 시선, 그것 때문에 프로레타리아 혁명이 유발되었다고 책 읽은 것 같다. 까치를 보는 나의 시선도 그럴까? 살기가 가파른 세상이다. 그래도 깡다구 내어 살아야지! 까치 너도...
이른 저녁을 먹기위해 시장통 식당엘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고, 경찰들 숫자도 만만찮다. 지켜보는 사람들에 물으니 선거유세가 있을 예정이란다. 우리는 미리부터 정치에 흥미를 잃고, 선거애기 손사래를 치며 있었으니 누구의 유세인지는 처음부터 관심밖이다.
식당남자 주인이 예전 요식업을 했던 베짱이의 음식평에 허튼소릴 하다 민망스러울 정도로 까였다. 하루살이 말인즉, 전에도 와보니 엿도 모르며 마누라만 잡더란다. 나도 첨부터 꺼드럭대는게 싫었으나, 그가 안되어 보여 식당을 나오며 둘이 손잡이를 하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길잃은 철새? 뭔가 조금은 부족한듯 이른 저녁, 호숫가에 나란히 내려앉아 바람을 쏘였다. 높이 치솟는 분수대 물줄기가 시원해 보였다.
하루살이가 자신이 전에 갔었던 노래방으로 가보자고 하였다. 이 나이에 뭔 노래방? 그러나 하루살이의 주장은 강했고, 끝내 우리들을 그곳으로 인도했다. 들어선 노래방은 라이브 구조였고, 벽에는 가수들의 대형사진이 많이 걸려 있어 그앞에서 노래? 초반에 기가 죽었다.
그중에는 함께 찍은 주인장의 얼굴도 있었는데, 50대인 그녀는 가수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고, 곁에 있던 또래의 여자 후배도 가수로 입문 하였다고 말했다.
나는 어쩌다 노래방을 가면 거의 매번 선창이다. 희미한 불빛, 눈이 침침해 선곡이 귀찮으니 서빙하는 주인장더러 예약을 부탁한다. 그럼 한곡으로 마무리냐고? 아니다. 체면 차리고 있으면 여러곡 부른 사람이 기회를 또 주는 것이다.
카수, 나는 거의 시청하지 않지만, 요즘의 대세는 방송에 의하여 짜여진 틀안에서 젊은 청춘들이 티비화면을 거의 독점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이든 사람들의 가수생활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편처럼 스며드는 그 취향, 그들의 용기를 꺽을 수는 없으니 덕담으로 격려를 해야했다.
벌써 밤이 깊었다.내요즘들어 외출이 잦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나이 즈음에 지나쳐도 그렇지만 모자라는 것도...'중용'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내일 하루는 '금주데이'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하루살이, 깔따구, 베짱이란 미물 닉네임이 생겨났나고?
하루살이는 툭하면 '오늘이 생의 마지막처럼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더러는 '세상 걱정을 뭣하려 하느냐'기에 내가 '그래도 하루쯤 남은 사람들 걱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럼 하루살이와 식생은 비슷하지만, (하루살이보다 하루 더 사는걸 연상하며) 깔따구라 이름지었다. 혼자 사는 베짱이는 아직도 여자친구가 집에 들락거리고, '삶을 재미있고, 마음 편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우리들은 산다고 살았지만, 원하던 삶을 완성하지 못하고, 후회 남은 미생들이다. 살아가는 식생과 생각들이 비슷한 것 같아 친근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