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보면 오대양 육대주가 이루는 모양새가 희한하다는 생각이다. 해협(海峽)과 만(灣)으로는 유럽의 발트해, 그 안에 보트니아만, 도버 해협, 지중해, 흑해, 홍해, 아덴만, 페르시아만, 호르무스 해협, 싱가폴 해협, 마젤란 해협 등 오늘날 매스컴에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모양새 뿐만이 아니고 땅 위에 실리고 지하에 묻힌 온갖 것들도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온통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과 모래밖에 없는 중동지역의 땅속에 석유를 묻어 두었고 땅 위에 산천초목이 욱어진 땅 속에는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요상하다 싶기도 하다.
금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내 반정부 시위 세력 지원 및 핵무기 개발 저지’를 명분으로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선제 타격하여 발발한 전쟁이 지금도 끝나지 않는다. 그 동안 많은 민초들만 밟히고 죽어간다. 연일 메스컴을 시끄럽게 하는 페르시아만(Persian gulf : P·G)의 목줄기인 호르무스(Hormuz strait) 해협 때문에 세계 경제가 춤을 추듯 요동을 친다. 당사자인 이란과 미국이 겹겹이 막고 있는 그곳을, 그것도 전쟁 중에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이참에 되새겨 본다.
페르시아만의 목줄기인 호르무스해협을 지나기 직전에 있는 오만의 무스카트항, P·G 안에 있는 사우디의 담맘(Dammam)항, UAE(아랍에미레이트)의 제베일 알리(Jebel Ali : 두바이), 이란의 반다라 아바스(Bandar Abbas), 쿠웨이트, 이라크의 바스라(Basra)항 등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란-이락’ 전쟁 중엔 전쟁구역인 이 지역을 겁도 없이 돌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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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NZ(뉴우질랜드)의 네이피어(Napier)항에 머무는 중 수도 웰링턴까지 출장으로 갔다가 이튿날 항공기 결항으로 11시간 가량의 버스 여행으로 돌아왔다. 사방이 초록색으로 잘 단장된 경치, 그 자체가 좋았음에 무엇보다 마음이 시원스러웠다.
귀선하여 순찰 중 회전 나침판(Gyro compass)의 고장을 발견했다. 연 이틀간 담당 계원과 씨름을 했으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출항했다. 북미 서북부의 시애틀(Seattle)까지 약 11,300km를 가야 할 길이 막막했다. 부득이 자기(磁器) 나침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금에서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울산을 보고 가야 하는 판국이다. 몸도 마음도 피로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냉정하게 차근히 찾아가자. 옛날에는 별만 보고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아랫쪽 네이피어항. 위쪽은 북미 시애들항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곁에 하고자 혹은 해야 할 것들을 지저분하리만큼 많이 두고 있으면서도 하나도 제대로 실행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정신력이 약한데 그 원인이 있었으리라. 단순히 생활의 지루함을 떼우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탓은 아닌지? 아니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지? 그도 아니면 웰링턴에서 얻은 김진홍 목사의 테이프에서 들은 말처럼 비젼을 갖지 못한 탓일까?
인생은 어차피 머슴살이라 했는데 다만 누구를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가 문제라고 하면서 돈, 명예, 권력, 학문, 자식, 마누라, 종교, 취미 그 어느 하나를 주인으로 삼고 일생을 충실히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헛된 인생살이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의지와 신념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라던가. 그렇다면 내 주인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다음 항차가 남미→중동(페르시안 걸프)일지도 모른다는 전문이 왔다. 중동? 당시 전쟁 중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두 나라 사이에서 1980년 9월 22일부터 1988년 8월 20일까지 8년에 걸쳐 쉬지 않고 치러진 전쟁이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 북서부의 시애틀 외항에 접근, 시애틀항만(Seattle Traffic) 협조로 Pilot station에 도착. 젊은 Pilot를 만나 시원스런 협조의 약속을 받았지만 실은 등줄기에 진땀 나는 과정이었다.
용선자인 NYK(니혼유센)로부터 다음 항차가 남미→중동이 확정(Fix)됐다고 연락을 받았다. 역시 담맘(Dammam). 쿠웨이트(Kuwait)까지 간다고 했다. 양하항은 ‘미정’이랬다. 오후 선내 위원회 소집했다. 뾰족한 수가 있을 수도 나올 수도 없다. 알고는 있으라는 의미에서다. 마음들만 불안하고 착찹하며, 못 나고 가난한 나라 백성임을 한탄할 뿐이다.
시애틀항에 머무는 동안 연일 신문에 중동전쟁에서의 무차별 포격. 일본 선원노조(Seaman's Union)의 페르시아만의 입항 거부 선언 등이 한층 마음을 무겁게 한다. 참으로 어려운 항차가 될 것만 같다. 아무래도 당사자들 만큼 그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삶이 곧 전쟁임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그것이 곧 인간다운 삶의 장(場)이 아닐까. 자유, 풍족! 그것은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상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단련과 마음의 결정을 위해 발바닥이 부릅트도록 걸었다. 자정 경에 기관장과 한국음식점에서 소주 몇 잔 했으나 뒷맛은 마신 소주보다 더 쓰다.
더구나 5월 17일에는,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 프리깃함(Frigate) 피격 사건이 한층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군함은 이락 폭격기의 실수로 피격. 결국 28명이 희생됐단다. 전쟁 발발 6년반 만에 처음으로 미국해군의 피격인 점에서 의의가 큰 것도 같다. 과연 중동 항차를 무사히 해낼 것인가? 신문과 TV를 유심히 보지만 마치 ‘소귀에 경 읽기’다. 답답하다. 말은 없지만 선내 분위기가 납처럼 무거워져 간다.
선주(船主), 용선자 NYK. 우리 회사인 대아해운과 P·G에 관해 잦은 Telex가 오갔지만 마치 문틈에 손가락 끼듯이 곤란한 입장에 빠진다. 일단은 선주(Owner)와 대아의 방침과 지시 그리고 자료를 요구하고 용선자에게는 실질적인 최근의 Data를 요청했다. 앞으로의 문제가 자못 궁금하다. 그것은 곧 내 자신의 운명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글씨를 써도 손과 마음에 잡히지를 않는다. 그저 답답함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
과연 내 스스로도 그 전쟁터에 뛰어 들어야만 할 것인가? 개인적이기 보다 책임을 가진 공인(公人)으로서 쉬이 거절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출항예정일(ETD)가 늦어진다. 다행스런 일이다.
05:00에 일어나 거리 전봇대에 매달린 공중전화 Box에서 동전을 넣고 집에 전화했다. 참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만든 나라다.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수익자 부담제도이다. 밝은 아내의 목소리가 우선 시원스럽고 위안(慰安)이 된다. 그러나 차마 전쟁 중인 중동행 얘기는 꺼내지 못 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 혼자만 겪으면 그만이지 가족까지 염려에 젖게 할 필요는 없다. 설사 운 사납게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된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 마음이 무겁다. 배를 좀 더 깊이 앎에 따라 늘 한치 철판 밑이 깊은 물속임이 더욱 뚜렷하게 인식되어 오지만, Wife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선주와 용선자의 Telex는 받았지만 회사에서는 없다. 오후에 직접 전화하여 담당 이사(理事)와 통화했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선주도 선원 회사도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은 분명히 한다. 대신 동경 56도 10분를 통과하는 시점에서 기본급 100%의 전쟁 수당을 지급한다고 했다. 내일쯤 Telex가 오는 데로 전원을 집합. 모든 상황을 알리고 각자의 의향에 맡기자. 남들이 다 가는데 우리라고 못 갈 리는 없다. 시팔 것! 총들고 한판 붙는 기분으로 부딪쳐 보는 거다. 죽기 밖에 더 하겠나. 욕을 자주 하는 사람은 삶이 늘 긴장 속에 있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가 보다. 그 놈의 ‘빈자소인(貧者小人)’ 국력이 약하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원망한다. 허나 마음을 굳히자.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닌가. 그리고는 최선을 다하고 그밖엔 하늘에 맡기자. 남은 50일은 정성껏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며 마음부터 닦자.
북미 시애틀 항. 아랫쪽 티코마항은 당시 목재를 싣기 위해 우리 선박들이 들락이던 곳이다.
이곳 신문에 미(美) Frigate함 피격에 모두 37명의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됐다. 출항 직전에 회사로부터 Telex 받았다. 새로운 것은 없다만 유일한 중동행 Order이고 증빙서류인 셈이다. 화창한 날씨 속에 13시 40분 시애틀항을 출항했다. 올 때 고생한 Gyro(전륜구 나침판)는 제조사측의 수리를 받았다. 먼 산의 흰눈과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짙은 침엽수 삼림. 깊고 굴곡 심한 Puget Sound. 기관장의 말처럼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소리는 부러움이 차다 못해 원망으로 터져 나온 소리다. 물론 자연이 가져다준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도 인위적인 가꿈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으리라.
계속되는 데모와 정쟁으로 시끄러움만이 유일한 대한민국의 소식으로 이곳 TV에 비쳐지는 현실에 비하면 너무도 격차가 심하다. 회사의 Fax를 일단 게시하고 내일쯤 전체적인 의견을 묻기로 하자.
전원 집합. 다음 항차 중동에 대한 설명과 협조를 구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두서도 조리도 서지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말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그냥 얘기하고 자신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지만 뭘로 판단한단 말인가? 얼마만큼 호응을 하고 또 누가 거부할 것인가는 며칠 시간적 여유를 준 다음 다시 파악하기로 했지만 모두가 벌레 씹는 얼굴이다. 더구나 이런 걸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체면 아니면 평소 사소한 불평을 합리화시키려하거나 요구하려는 얄팍한 심리를 가진 자들도 있음은 내가 미리 아는 바이니 별로 신경을 쓸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작 명확한 결론을 스스로가 내리지 못하는 것은 먼저 내 자신부터가 어딘가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한 것은 틀림없다. 바로 그것이다. 이미 현실적으로는 정해져 있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작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주일간의 시애틀항의 생활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전부가 마음이 같은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은가? 천국에 있다가 전쟁터로 간다는데…… .
시애틀 시내(가운데 탑이 유명한 스페이스 니들. 먼산의 흰눈이 인상적이다
전 선원의 의견을 들었다. 의외로 3등 항해사와 1기원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생각보담 전체적으로 많이 응해준 데 우선은 안심이다만 기어이 1-2명의 탈락자를 낼 것도 같다. 선주로부터 ‘전원 승낙(All Accept)’ 여부를 전문으로 물어왔다.
1기원은 자기 말대로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믿음과 생각을 갖고 있다. P.G(페르시안 걸프)는 처음이라며 일단은 가보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 중이라고 했다. 3/O는 무조건 “절대 불가(Never)”이다. 정승도 제 싫으면 그만인데 도리가 없지 않은가? 비록 미혼이긴 해도 나이가 그만하면 스스로의 앞길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회에 계속)
첫댓글 발바닥 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부르트도록 걸은 보람이 있었네요. 젊음이 힘이니까.
노년에 회상하면 자신이 대견하고 칭찬하고 싶을 것입니다.
힘겨울 때 견딜 수 있는 것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가정, 가족이 있으니까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겠지요.
늑점이님의 건강한 노년 생활을 위해서 건배하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을 합니다.
다음 회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