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째주인 28일 토요일. 여행생협의 서울성곽걷기 두번째 걸음에 동참하였다.
현재 여행생협 준비위에서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는데 이렇다할 여행 계획이 없는 상태인지라 가입한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와 여행생협의 존재를 알리는 작업의 하나로 최방식 공동대표가 앞장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코스는 지난번에 이어서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다.
지하철 4호선 5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지 말고 왼쪽으로 돌아 300여 미터 가면 혜화문이다.
이름을 들어 본 것도 같도 아닌 것도 같고. 혜화동 지명만 알고 있었다.
혜화문 앞에 도착하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서울시장의 공관 관저가 있는 곳.
일행 몇 분이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인 다비드 씨도 두번째 참석이라 한다.
[혜화문 계단]
최대표님이 성곽걷기를 먼저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성곽의 역사적인 유래와 배경을 잘 모르고 있어서 가까운 지역부터 쉬엄쉬엄 여행 겸 놀면서 알아 가자는 취지라고.
두번째 참석이신 분도 있고, 처음인 분도 있고...서로 가벼운 인사 후 본격적으로 걷기에 앞서 오늘 걷는 구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인 배경 설명을 최대표님이 하였다.
현판 글씨가 왼쪽에서 시작한다. 혜.화.문.
1994년에 성곽 복원을 하면서 제멋대로 쓴 것이라고.
혜화문을 지나 200미터 쯤 가니 서울시장 공관 사저가 높은 성곽 위에 있어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거무스름하고 이끼가 껴 다른 돌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베어 있음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넓은 돌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서울시장 공관 사택으로 사용하였으나 박원순 시장은 원래대로 복원 할 계획이라고.
중요한 문화유산이 시장의 사택으로 쓰였다고 생각하니 많은 사실을 참으로 모르고 살아왔구나...
[서울성곽 축대]
성곽을 죽 따라가다 보니 원 축대에 중간에 복구된 담벽이 서로 맞지 않고, 식물 뿌리로 인해 흙의 압력을 받아 담벼락이 불록하다.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성곽을 따라 동네에 들어서니 성곽의 옛 돌로 보이는 큼직막한 몇 개의 돌이 민가의 축대에 끼어 있기도 하다.
옛 문화재의 관리가 허술하게 방치된 느낌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경신중고등학교의 담벼락인데 아랫부분은 성곽의 돌 위로 쌓아 울타리로 사용하고 있다.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 이 곳 마전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성북동은 원래 물이 맑고 경치가 좋으나 땅에 돌이 많아서 농토가 전혀 없고 또한 시장이 멀어서 정착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이 많이 생기므로 영조4년(1765년)에 서울의 각 시장에서 파는 포목의 마전하는 권리를 이곳 사람들에게 주어 생활을 유지하게 하였으니 그로부터 성북동을 마전터라 불렀다고 한다.
어느 분이 오늘이 중복이라고 하여 나는 추어탕을 먹었다. 고소하고 맛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뙤약볕에 성곽걷기가 무리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기우에 불과하였다.
녹음이 우거져 그늘이 되어 주고 가끔씩 시원한 바람은 솔솔~
전망대에서 바라 본 삼청각
성곽을 걷다가 둘러 보면 도시에 나무가 많아 쾌적해 보였다.
[숙정문]
숙정문(북문). 노무현 정권 시절에 개방되었다.
4대문의 북문으로 음기가 강하여 가뭄 때에는 청와대 뒷문인 신무문과 이 숙정문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함.
용마루에 12지신상이 인상적인 모습이다.
더운 날씨였지만 나무가 우거져 좋았다.
백악산(북악산) 정상으로 가는 성곽길...
올라 온 길에서 성곽을 내려다 본 모습.
백악산 정상의 바위에서
백악산에서 내려 오면 창의문이 기다리고 있다.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4개의 작은문 중의 한 개에 해당한다. 숙정문과 같이 풍수지리적으로 통행하면 좋지 않다하여 폐쇄하였다고 함.
높은 천정에는 봉황의 단청이 있다.
성곽걷기를 마치고 국수가 맛있다는 집.
국수와 도토리묵과 막걸리 한 잔으로 여행의 피로를 싹 풀었다.
전철을 타기 위해 내려오면서 재래시장인 흥인시장을 둘러 보았다. 석희 언니가 그 옛날 중학교 때 이 시장에서 자주 먹었다던 떡볶이가 아직도 있다며 30여 년이 지난 어릴 적 그 맛을 더듬기 위해 가득 찬 배에 또 구겨 넣었다.
시중의 떡볶이와 달리 기름에 볶는 것이 특징이다. 간장떡볶이와 고추장떡볶이 두 종류가 있는데 기름에 볶아서인지 맛이 고소하였다. 앗, 사진이 없네?....
서울성곽의 1/4를 걸었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돌(성곽)에서 옛 선조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 옛날의 서정도 되짚어
보았다. 산은 그대로 인데 옛 조상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을 성곽은 허물어지고 쓰러져 밑돌만 남아 있다.
그나마 복원을 위해 모양새를 갖추기는 하였지만 현대문명의 기술이 세월의 흔적까지 따라 잡을 수는 없는지 판이하게
구분이 된다. 우리의 옛 것을 잘 보존하고 지키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깨달았다.
첫댓글 심우장과 서울시장공관은 다릅니다. 심우장은 성곽에서 저 멀리 보이는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이 33년부터 44년까지 살았던 집. 심우도(십우도)에서 나온 말로 소를 찾는 과정을 도를 찾는(구도정진)과정이라고 해 우리 서울성곽여행 취지와 비슷하다는 취지로 설명함.
서울시장공관은 일본인이 40년 성곽위에 개인집을 지은 것인데, 박정권 시절 79년까지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됐고, 81년부터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동글씨 공부할 때 한 눈 팔았네...네롱^^*
네~~그렇군요. 심우장과 서울시장 공관을 하나로 생각했어요. 근데 심우장은 왜 안들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