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두 번째 날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이 있는 빅토리파크에서 첫 일정을 시작합니다. 이 곳은 아라라트산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라는데 날이 아주 청명해야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산이라, 오늘 정도 날씨면 시력이 좋은 사람만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지금껏 코카서스여행을 하면서 많은 행운이 따라서 감사하지만 조금 더 욕심이 납니다. 내일 아르메니아를 떠나기 전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라라트산을 잘 볼 수 있기를.^^
'창끝 교회'라는 의미의 게르하르트수도원은 열두사도 중 한 명인 타대오가 예수님을 찌른 창(롱기누스의 창)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바위 속을 파내서 짓고 조각한 석굴사원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석굴 곳곳에 새겨놓은 조각들과 십자가 부조들이 아름답습니다. 마침 동굴 안 사원에서는 여성합창이 울려퍼집니다. 아름다운 화음과 고요함이 경이롭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아자트 계곡 위에 자리잡은 가르니 태양신전은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태양신을 모셨던 신전입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곳입니다. 목욕탕 유적도 돌아보고, 신전터에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직선으로 쭉쭉 뻗은 주상절리가 일품입니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주상절리계곡입니다. 태양신전 안에서는 아르메니아 전통악기인 두둑(피리) 연주가 이어집니다. 낮고 구슬픈 음색에 애조 띤 멜로디가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영화음악도 연주해주셔서 잘 들었습니다.
점심은 아르메니아 농가에서 화덕에서 바로 구워낸 종이처럼 얇은 빵(라디쉬)과 땅 속 화덕에서 기름기 쪽 빼고 구워낸 돼지고기와 감자구이로 먹습니다. 빵을 굽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재빠릅니다. 바로 구운 빵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체리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 야외테이블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한 상 그득히 차려놓고 먹고 마시는 시간은 즐겁기만 합니다.
오후에는 예레반 시내를 둘러봅니다.
예레반은 기원전 782년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입니다. 이 도시를 조성할 때 어느 위치에서나 아라라트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하니 이 나라 사람들의 아라라트 사랑이 가늠이 됩니다. 그런 산이 20세기 초반 러시아와 터키의 담합으로 아르메니아는 손도 못 쓴 채 터키에 넘어가 버려, 지금은 터키 영토로 편입되어 있으니 매일 아라라트산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됩니다.
아르메니아는 405년 마시롭이라는 학자가 문자를 창제한 이후로 아르메니아 문자로 정리된 다양한 분야의 책과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 귀중한 문화유산이 전시되고 있는 고문서박물관을 둘러봅니다. 자기나라 글과 말을 갖고 있는 민족의 저력이 느껴지는데 지금의 처지는 옛날의 영광과는 다르단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캐스캐이드 예술공원은 500계단으로 조성된 야외미술관입니다. 아름다운 조형물과 조각품들을 전시하는 전망좋은 곳으로 우리 같은 관광객뿐 아니라 예레반 시민들이 쉬어가기에도 좋은 공원으로 보였습니다. 한국인 작가가 만들었다는 폐타이어로 만든 사자상도 둘러보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냅니다.
예레반시내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공원입니다. 1915년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터키 동부에 살던 12개 마을사람들이 마을 채로 몰살당한 사건입니다. 20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니 상상이 안되는 규모입니다. 우리 현지가이드였던 아미네의 친척도 이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이 슬픈 역사는 여기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터키는 아직도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니 얼마나 억울할까요. 지금 아르메니아 인구가 300만 명인데 해외에서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700만 명이라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겠지요. 2015년 올해가 바로 대학살100주년이라니 이번에 방문한 우리도 더욱 숙연해지는 마음입니다. 부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있길 바래봅니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고는 아르메니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합니다. 오늘은 코카서스여행이 끝나는 아쉬운 밤이기도 합니다. 아르메니아는 와인보다 꼬냑이 유명하다고. 이번 코카서스여행을 알차게 이끌어준 가이드, 블라디미르박으로부터 꼬냑 마시는 법과 꼬냑잔 등 꼬냑에 대한 재밌는 설명도 듣고, 아르메니아 전통공연도 감상하며 저녁식사를 합니다. 몇몇 회원은 공연하는 분들 사진 찍다가 공연단에 붙잡혀 함께 춤을 배우고 추기도 하셨는데, 아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