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야지.
산에 좀 가야지.
산에 한 번 가야지.
다음엔 꼭 가야지.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
열두 번을 별렀다. 열두 달이 갔다.
열두 달을 별렀다. 한 해가 간단다.
“산에 가셔야지요.
그렇게 산과 소원하게 지내다가 다리에 힘 빠지면 정말로 산에 못가십니다.”
지난여름에 총무가 2층 계단에서 내게 건넨 소리다.
나는 미안해…어쩌구 얼버무리다 돌아섰는데 아차 싶었다.
내가 늘 이렇다. 미안하다니??
염려해 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했어야 올바른 대답이 아니었으랴.
송년 산행엔 꼭 참석해야지.
문학산 정도의 가벼운 산행에도 빠지면 안 되지 했는데
꼭 그럴까?
산행 후, 일 년 산악회를 갈무리하며 지글지글 앞의 한딱가리에 더 구미가 당긴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송도갈매기란 이름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말이다.
여하튼 갔다.
나는 교통이 좀 불편스러워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선학역주변의 **아파트에 무작정 차를 몰고 들어서니 경비아저씨가 초전박살의 자세로 막아선다.
-잠시 산에… 하며 부탁했더니 결국 너그러이 은혜를 베푸신다.
-아저씨, 당신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십시오.-
선학역에서 회원들과 조우했다. 그런데 왜 인천지하철 선학역은 그렇게 춥담?
어서 산에 오릅시다.
내게 문학산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산이 제일 멀었던 것이 아닌가.
인천의 진산이란 소린 꽤 많이 들었고 미사일인가 레이더인가의 기지가 한참 이슈가 되었었다.
인천시문학동우회의 문학지이름도 문학산이다.
물론 산의 높이가 산의 품격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깟 손바닥만 한 산을 가지고… 싶었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문학산은 토산으로서 겸손해 보였다. 인간의 몸에 저항하는 몸짓을 보이지 않았고
흔히 바위산에서 볼 수 있는 쇳소리라도 날 듯 한 날카로움이나 도전적인 모습도 아니었다.
순하게 도시와 친화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헤프게 쳐진 모습도 물론 아니었다.
압도적인 산이 좋은 산이 아니고 친화적인 산이 좋은 산이다.
도전하여 정복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에베레스트가 명산이 아니고
백두산 한라산만이 명산이 아니고
우리 생활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문학산이 훨씬 명산이다.
인천의 진산이란 게 괜한 소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솔길이 정겹다.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도란거리면 좀 좋은 길이랴 싶다.
아리따운 여인 하나 다가와 손잡고 문학산을 걸으면 좀 좋으리.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면 그건 또 얼마나 좋으리.
노랗고 노란 귤 하나 벗겨 그녀와 한쪽씩 나누어 먹노라면
시원할 대로 시원하고 달콤할 대로 달콤한
그 맛과, 그 산과, 그 길과, 그 우리는 또 얼마나 그림 같으리.
이런 이런, 요즘 아이들 문자로 무슨 생뚱스런 생각을 … 정신 차려야지.
…차려야지
날씨가 풀리면 이렇게 포근한 토산을 맨발로 한 번 걸어봐야지.
여하튼지
올라봐야 안다. 올라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구나.
산만 그런 것도 물론 아니겠지.
팔각정을 못 미친 곳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무슨 군사시설이 있었다.
그 내용이야 내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김신조가 무장공비로 침투하던 6~70년대도 아니고
저런 군사시설 따위가 얼마나 군사적인 가치가 있을 것인가 .
이제라도 시민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 올바르지 싶다.
어느 중년의 등산복 차림이 철조망을 잠시 넘보려는 사람들을 팔 벌려 막아선다.
우국충정이 넘쳐나는 정의로운 아저씨다. …먹고 싶은 것도 많으시겠어요. 아저씨 수고하세요.
팔각정에서 잠시 쉰다.
-산사랑 모두 모이세요. 모이자, 증거를 확보해야지. 사진을 찰칵한다.
아니지 요즘의 디카는 소리도 안 나더라.
그러구러 옛 송도역 쪽으로 하산하여 다시 청량산을 올랐다. 가벼운 오름이었다.
청량산은 응달쪽에서 올랐으므로 제법 눈이 쌓여 겨울 산의 정취를 풍긴다.
박물관 앞으로 하산하니 12시가 넘었다.
드디어 송도갈매기에서 산사랑 회원들이 둘러앉는다.
산사랑을 위하여! 쨍그랑.
그리고 모든 위할 것들을 골고루 위하여!
회장님! 총무님! 산악대장님! 그리고 기타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많으셨는데…
늘 넉넉한 미소로 살림을 이끌던 신형자님이 잠시 총무를 내려놓았다.
그래요.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랫만에 산에 오니 낯선 얼굴들도 많이 보인다. 앞으로는 자주 좀 다녀야지.
산행이 뜸한 나는 오늘 처음 보았는데
우윤선이란 예쁜님이 만장일치의 박수로 새해의 총무를 어께에 메었다. 혹시 공산단 수법인가? ㅎㅎ
수고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많이 해 주시겠지만.
이런 글을 산행기라고 쓰려니 좀 망설여진다.
기행문이란, 여행 중에 보고들은 견문 등의 체험에다 감상 등을 여정에 따라 기록함으로서 안내서의 역할 같은 것도 곁들여 져야 하리라.
그런데 나는 순전히 내 감정에만 입각한 감상나부랭이가 아닌가.
그래도 할 수 없다. 내 글이란 게 어차피 대책 없는 글이니까.
다만 제목만이라도 산행기라고 붙이지는 말자. 그러면 조금 덜 민망하지 싶으니까.
산사랑 회원님들!
얼마 남지 않은 한해를 알차게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들이 원하시는 만큼씩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