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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12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산상강론은 ‘팔복’(3-10절)으로 시작하는데 11-12절까지 포함하여 ‘구복’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팔복으로 보든 구복으로 보든 중요한 것은 하늘을 열어 복을 먼저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늘의 복이 주어진 자는 이런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 왕국의 복이 주어졌기에 이런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상강론 전체가 이 복에 근거하여 생각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3절). 직역하면 ‘복이 있다. 그 영이 그 가난한 자들은, 왜냐하면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심령”이란 ‘프뉴마’로 ‘숨, 호흡, 바람, 생명, 영’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아가달토스’가 붙으면 ‘더러운 영, 더러운 귀신’이고, ‘하기오스’(거룩한)가 붙으면 ‘성령’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2:24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영의 상태는 하나님의 영역을 의미한다.
“가난한 자”의 ‘포토코스’는 ‘가난한, 빈곤한, 구걸하는, 결핍된, 하찮은, 무력한, 빈약한, 의지하고 사는’이란 뜻인데 ‘두려워하여 움츠려들다, 쭈그리다, 웅크리다’라는 뜻의 ‘프톳소’에서 유래하였다. 모든 것을 잃어 비참하게 된 자, 완전히 낮아져서 위축되고 미천하여 결핍된 상태에서 고통받는 자로 도무지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한 자”란 단순히 돈이나 물질이 없어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비참하여 고통받는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신명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도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손을 펴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된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의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한나의 기도 속에서 잘 드러난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7-8)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신다고 하셨다. “진토”의 히브리어 ‘아쉬포트’는 ‘쓰레기더미, 거름더미’라는 뜻인데 거지, 구걸하는 자들의 자리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한나의 기도를 성취하셨음을 나타내셨다(삼하 22:1-51).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가난한 자라고 하였다(시 9:18). 이는 곧 다윗 언약 안에서 후손을 통해 이루실 것인데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삼하 22:51).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3의 말씀을 읽으신 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가난한 자”는 “포로, 눈먼 자, 눌린 자”와 같은 존재이다. “눌린 자”의 헬라어 ‘드라우오’는 ‘깨뜨리다, 억압하다, 산산이 부수다, 멸망시키다’라는 뜻이다. 즉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포로 되었고, 진리를 볼 수 없는 눈먼 자이고, 산산이 부수어져서 멸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은혜의 해”, 곧 희년, 해방의 날 안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히시겠다는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옥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 메시아인지 알아보게 하였을 때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다.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5-6 / 참고 눅 7:22-23)
예수님은 친히 가난한 자가 되셔서 가난한 자들과 복음으로 함께 하심으로 다윗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란 물질이나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하여 무능한 상태에 있는 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져야 할 대상으로 구원이 이루어져야 할 존재를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된 표현이 ‘부자’이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율법을 다 지켜 행한 자기 의를 내세웠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19:21)라고 하시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말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19:22).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19:23)라고 하셨다. 이런 점에서 “부자”란 율법적 행위를 구원의 재료로 삼는 자이다. 곧 온갖 종교적 행위로 천국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상태이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1-3)
부자의 “재물”이란 무엇인가? 바로 율법적인 자기 행위를 말한다. 부자의 “옷”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 대신 자기 의를 말씀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로 늘 울고 통곡하는 것이 죄의 권세에 매인 자들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행위를 쌓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종말의 상태이다.
“복”이란 ‘마카리오스’로 ‘복된, 행복한’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복’(福)이란 구약적 배경을 가진 용어이다. 창조 때 보여주신 “복”이 ‘바라크’인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일곱으로 표현하였다. 즉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복되게 하신 것, 거룩하게 하신 것 그것이 안식이다.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께 합류되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복이고 거룩이며 곧 안식이다. 그 복을 사람에게 주셨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2)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그리고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는 언약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 안에서만 창조 때 보여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진리가 땅에 충만하게 되는 복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약의 복이 지향하는 바는 큰 민족을 이루는 “자손”(씨)에 대한 것이다(창 12:7, 13:15, 16, 15:5, 18). 단수로 표현된 유일한 자손, 그가 창조 때 복을 주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갈 3:16).
시편 1편에서 “복”이란 ‘에셰르’인데 ‘똑바로 가다, 성공하다’라는 말의 ‘아샤르’에서 온 말로 ‘행복, 복’이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 하면 ‘마카리오스’이다. ‘행복, 복’이란 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인간은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죄인은 똑바로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약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실 때 주어질 수 있는 복이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시온에 내 아들을 왕으로 세우신다고 하셨다(시 2:6), 그래서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 2:12)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그들과 같은 한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창조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에서 말씀한 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언약을 완성하심으로 드러난 하늘 왕국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라는 예수님의 선포는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거나 가난하게 되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이루신 그 은혜로 찾아와 덮어주시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습과 같이 그렇게 결핍되어 가난하게 된 자에게 주어지는 복된 선물이 하늘 왕국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가난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이 발생되면 그 안에서 내가 가난한 자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전하였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무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영이 완전히 결핍된 ‘없음의 상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음의 상태’, 즉 영의 상태가 되었다. 그들이 십자가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이다.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7-10)
(2024032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첫댓글 잃어 버렸던 것을 확인케 하시는 기쁨을 주시는 동시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2) ", "단수로 표현된 유일한 자손, 그가 창조 때 복을 주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는 말씀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군요 ~~
사람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실 자손이기에 창조에 대한 모든 기록 역시 언약의 실체를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론을 듣지 않고 새벽에 교안만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였는데 강론을 들어 보니 확실하게 느껴지고 보여집니다~~
이번 강론을 통해서 그동안 묻어 두었던 부분이 확 새롭게 풀리는 기쁨으로 다가 오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