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들었지요, 어떤 비밀스러운 선율
다윗이 연주한 그 선율이 주님을 기쁘게 했다고.
그러나 당신은 음악엔 관심 없지요, 그렇지요?
그 선율은 이렇게 흘러요.
4도 화음에, 5도 화음, 단조로 내리고, 장조로 올리고
낙심한 왕은 그렇게 할렐루야를 작곡했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당신의 신앙은 두터웠으나, 그걸 증명해야만 했어요.
목욕하는 그 여인의 모습을 지붕 위에서 보았고
달빛 안에 있는 그의 아름다움이 당신을 뒤덮었어요.
그 여인은 식탁 의자에 당신을 묶고
당신의 왕좌를 깨뜨리고, 당신의 머리를 잘랐지요
그리고는 당신의 입술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냈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마도[그대여], 나는 그전에 이곳에 있었던 적이 있어요.
이 방을 알아요. 이 바닥을 걸었었죠.
당신을 알기 전에 혼자 살았어요.
대리석 아치에 걸린 당신의 깃발을 본 적이 있어요.
사랑은 승리의 행진은 아니에요.
그것은 시리고 일그러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래서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당신이 내게 알려줄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당신은 내게 전혀 보여주질 않아요, 그렇죠?
그때를 기억하죠. 내가 당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거룩한 비둘기도 들어왔어요.
우리가 나눈 모든 숨결은 할렐루야였어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마도 높은 곳에는 하느님이 계실 테고
사랑에서 내가 배운 모든 것은
당신을 유혹하려는 누군가를 쏘는 방법
그것은 당신이 밤에 들을 수 있는 울음소리가 아니에요.
그것은 빛에 비춘 어떤 사람도 아니에요.
그것은 시리고 일그러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당신은 내가 그 이름을 헛되이 부른다고 말하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이름을.
설령 그랬더라도, 정말이지, 그게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죠?
모든 말씀 속에는 타오르는 빛이 있어요
당신이 들은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거룩한 것이든 일그러진 할렐루야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온 힘을 다했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없었기에, 만져보려 했어요.
나는 진실을 말했고, 당신을 속이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해도
나는 노래의 왕 앞에 서겠어요.
다른 말은 담지 않고, 오직 할렐루야만 부르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Leonard Cohen (1934 ~ ) “Hallelujah” (1984)
번역: 주낙현 신부
번역 후기: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는 실로 많은 가수가 새로 불렀다. 내 아들도 ‘슈렉’에 삽입된 곡으로 이 오래된 노래를 기억해 내고는, 아빠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자기도 안다고 기뻐한다.
내게는 노래의 음악성을 평가할 능력이 없으나, 그가 말한 대로 이 ‘비밀스러운 선율의 화음’과 가사는 수많은 이들의 귀를 붙잡는다. (다만, 원래 가사는 발표 이후에 코헨 자신도 조금씩 바꾸거나 보태 부르기도 했다. maybe – baby; holy dove – holy ghost – holy dark 등)
노랫말은 복잡하고 중의적이다. 다윗은 수금을 타며 하느님을 찬양하던 목동이었으나, 신경쇠약에 걸린 폭압적인 왕을 달래는 궁중 가수로도 일해야 했다. 그러다 자신의 절대 권력을 누리는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한눈에 빠져버린 사랑때문에 자신의 충신이었던, 그 여인의 남편을 죽게 만드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다시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로 엮인다. 하느님과 나눈 약속의 상징, 그리고 힘의 상징인 머리칼을 잘리고, 회개와 더불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삼손의 처지와 겹친다.
노랫말의 ‘당신’은 절대적인 신 하느님으로,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다윗으로, 연인으로, 노래하는 자기 자신으로, 심지어는 노래를 듣는 이로 이리저리 중의적으로 교차한다. 사랑에 끌렸지만, 다시 그 사랑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전개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며 불완전하고 비참한 자신의 몸으로 부서지고 깨진 노래, 일그러진 찬양의 노래 ‘할렐루야’를 불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조건이리니, 그 나약함을 인정하고서,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 그러면서도 그 사랑의 진실만은 끝까지 지켜보려는 모순된 저항이 인간 자체에 대한 통찰로도 들릴 것이다.
이 포기와 저항의 모순 속에서 코헨은 이 노래 ‘할렐루야’의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세상은 갈등으로, 화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 이원론의 체계를 초월할 수 있는 순간들, 모두 엉망인 것들을 화해하게 하고 껴안을 수 있는 순간들은 있어요. 이 순간이 바로 ‘할렐루야’가 의미하는 바에요. 그 어떤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우리 입을 열어서 우리의 팔을 펼쳐서 그것들을 포용하며, 그저 ‘할렐루야! 그 이름 찬미 받으소서” 하는 순간이죠. 이러한 전적인 포기, 전적인 확신의 자세가 아니고서는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것은 ‘너는 이것을 완수할 수 없을 거야’ ‘그거 안돼’ ‘이곳에서는 혁명을 할 수 없어’ ‘이 상황의 해결책은 없어’ 같은 말이 아니에요. 이렇게 완전히 화해할 방법이 없는 갈등 속에서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할 때에요. “봐라. 나는 이런 개 같은 일을 절대 인정할 수 없어. 할렐루야!” 이때가 바로 이곳에서 온전히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