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예수 마리아 요셉"
"예수 마리아 요셉"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묵상
"찬미 예수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신자)
"예수 마리아 요셉" (신부님)
"예수 마리아 요셉" (신자)
"두 번째 할 때에는 한결 익숙해지셨지요?
"예"
"그러면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인사말일까요?"
"아니면 '기도'일까요?"
기도인지 인사말 인지 헷갈리겠지만 그대들을 우리에게 '예수 마리아 요셉'으로 인사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곳 성지에 와서 최 양업 신부님의 편지를 정리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최 양업 신부님의 편지 집을 보면 대부분의 편지 첫머리에 항상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고 시작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면 최양업 신부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이란 기도를 많이 하셨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최 양업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실 때 15살 나이에 유학을 가셨습니다.
걸어서 마카오까지 가셨습니다.
순명·복종 서약을 한 최 양업 신부는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 필리핀 마닐라, 다시 마카오로, 만주 소팔가자 등을 거치며 계속 수학했습니다.
그렇게 목자로 살기 위해 노력한 최 신부는 1844년 12월 10일경 동료 김대건 신학생과 함께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고국 입국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난파와 조선에서의 박해 등으로 번번이 조선 입국에 실패한 최 양업 신부는 1849년 4월 15일 상하이에서 사제로 서품 받게 됐었습니다.
그해 5월 중국 요동 지방에서 사목을 시작했지만, 최 양업 신부에게는 조선의 복음화라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귀국을 시도한 끝에 6번 만에 그해 12월 3일 13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나이가 28세였습니다.
28살의 나이에 고국에 들어오셔서 신자들을 찾아다니시며 하루에 80리에서 100리의 거리를 사목을 위해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하루에 80리에서 100리의 거리는 사실 엄청 먼 거리였어요.
열 시간 이상씩 낮이 아니라 밤길을 걸어 신자들을 찾아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선종하시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12년 동안 걸어 다니셨던 거리가 9만 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신자들을 찾아서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부님께서는 전국 방방 곳곳을 걸어 다니시면서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그것을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예수 마리아 요셉'하고 기도를 하셨음이 틀림이 없어요.
왜냐하면 최양업 신부님이 돌아 가실 그때 장티푸스 환자들을 돌보시다가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티푸스에 걸리신 것은 맞기는 하지만 신부님이 선종하신 그 이후를 되돌아보고 생각하면 최 양업 신부님과 제일 친했던 신부님 중에 페롱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그분의 스승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최 양업 신부님이 돌아가실 무렵 베르뇌 신부님이 달려와 종부 성사를 보게 되었다.
신부님이 종부 성사를 줄 때 종부 성사 중의 고해성사는 의식이 없어 보지 못했다.'
그때 최 양업 신부님이 의식이 없었습니다.
최 양업 신부님의 죽음이 아주 임박했을 때 그의 편지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의 입에서는 예수 마리아 라를 부르기를 그치지가 않았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의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신부님은 '예수 마리아' 하면서 계속 불렀다는 것입니다.
일부로 생각하고 노력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무의식 속에서 '예수 마리아'까지 흘러나왔다는 것은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는 않았지만 요셉까지는 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최 양업 신부님의 평생의 기도가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럼 몇 번을 그렇게 불러야 무의식 중에도 그 말이 나오게 될까요?
"한 백 번 하면 될까요?" (신부님)
"아니요" (신자)
"어림도 없지요.
그럼 만 번 하면 될까요?"
"안되요"
백만 번 천만 번 아니 무의식 중에서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만 돌아가실 때, 의식이 없을 때 그 말이 나올 것이에요.
이곳 배티성지에는 이곳은 최 양업 기념 성당, 위로 올라가면 또 성당이 있는데 신부님 탄생 기념성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김 대근 신부님, 최 경환 선생님, 6인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어요. 그리고 십자가의 길, 산상 제대. 6인 순교자 묘소, 신부님 옛 성당, 최 양업 신부님 박물관 등 많은 것이 있으며 엄청 넓어요
그래서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의 기억에는 이곳 성당은 엄청 크다는 것과 이곳 밥이 아주 맛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웃음"
그러나 여러분이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죽을 때까지 기억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부님)
"예수 마리아 요셉"(신자들)
최 양업 신부님의 기도만큼은 꼭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을 모르고 오신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최 양업 신부님의 시복과 시성을 위해 한국 교회에서 엄청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나라에 오셨을 때 127분이 복자 시복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신부님의 시복도 함께 청원했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2021년이 김 대근 신부님과 최 양업 신부님이 동년인데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시 시성 시복 청원했지만 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왜 안 되었는가?
역대 우리나라에 있는 복자님과 성인들 중 순교자가 아닌 분은 한 분도 없어요.
그런데 순교자가 아닌 최 양업 신부님을 첫 복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며 청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 교황 시성청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면 그분의 사목 업적 기록과 그에 따른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즉 기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난 2021년에도 '이것이 그분의 기적이다'라고 올렸습니다.
하지만 로마 교황 시성청에서 기적이 맞긴 맞는데 시복에 합당한 기적은 아니다.
"왜 그럴까요, 궁금하시죠?
"예" (신자들)
분명하게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복자 시복에 합당한 기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복 시성이 되기 위한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천천히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기적이 즉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시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야 시성,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또 다른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그래서 최 양업 신부님께서 시복이 될 것이라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 양업 신부님이 시복이 되면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최 양업 신부님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성인이세요.
우리가, 나에게,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나 최 양업 신부님의 시복 청원이 받아들여 복자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최 양업 신부님이 아니라 바로 나, 우리를, 위해서 신부님이 시복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사 참여, 기도, 사랑의 실천,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기초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내가, 나라는 존재에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나눈 기준은 세례를 받았다, 성당에 다닌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삶 안에서 감사하느냐 감사하지 않으냐에 생각함에 따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기준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중요한 감사는 나, 나의 존재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진짜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데 있어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지만 내가 하느님께 귀한 존재의 의사가 있는 것입니다.
즉 내가 하느님께 감사해야지만. 내가 하는 선행이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내가 하는 미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별 볼일 없는 내가 하는 기도가, 별 볼일 없는 내가 하는 선행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별 볼일 없는 내가 하는 사랑의 실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의 존재를 진짜 할 수 있어야 여러분은 진정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진짜 존재할 수 있게 하려면 누가 해야 합니까
바로 내가, 내가 해야 합니다.
사랑받고 있는 내가 해야 합니다.
내가 필요한 존재이구나.
내가 하느님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최 양업 신부님의 편지를 보면 제가 저 자신을 이 최양업 신부님을 통해서 '하느님이 교우들을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내가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성지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꼭 한 가지 기억하시라는 것은 '예수 마리아 요셉'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에게 기도를 들릴 때 다른 것은 하지 마시고 내가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이구나, 내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이구나 내가 하느님께 특별한 사람이구나,
최 양업 신부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함을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정말 진짜 진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최 양업 신부님이 시복 되시고 시성 되시는 데는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저 저 같은 사람 때문입니다.
교회가 변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느님이 바라시는 뜻대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정 순택 주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성직자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은 순교한 열정으로 평소에 늘 신자들을 위해서는 불꽃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착한 목자이신 최 양업 신부님의 정성과 열정으로 우리 신도들에게 신학생들에게 전파해야지 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시복시성 되기를 바라는 또 다른 이유는 최양업 신부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최 양업 신부님이 시복 시성이 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 마리아 요셉'을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 마리아 요셉'
최 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서 내가, 우리가, 함께 사랑받는 귀중한 존재가 되는 것을 잊어 버리지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신 실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받는 귀한 존재로서 나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즐거운 신앙인으로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하느님께 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최 양업 신부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청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잘 전해드릴 것입니다.
최 양업 신부님의 전구가 하느님께 잘 전해지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아멘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배티 성지 성당에서 11시 미사에서
첫댓글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할줄 알고,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는 내가 정말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신부님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좋은 말씀 다시 새길 수 있도록 해주신 복된야고보헝제님께 주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