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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실 없는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 끈적하고 달콤한 백색 존재 뒤에는 현대인들의 건강을 둘러싼 이슈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이제 설탕에 대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들어 보자.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커피에 설탕 한 스푼을 넣으려다 순간 손이 떨려서 식탁에 엎어 버렸다. 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손으로 휙 훔쳐낸 뒤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면 그만일 뿐 깨끗한 종이를 찾아 다시 쓸어 담는 이는 열에 한 명도 안 될 것이다.
소중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석유나 도시 가스 같은 생필품이라고 느껴지는 데다 1kg에 1천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가장 흔한 백설탕의 경우) 때문일까?
이 반짝거리는 하얀 가루가 존중받을 수 있는 찬스는 미처 슈퍼에 가지 못해 아껴 써야 할 상황이거나 아니면 혈당치가 떨어진 당뇨 병 환자가 사탕을 잊고 외출했을 때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설탕에 대한 냉대는 최근에 특히 더 거세지고 있다. 일찍이 대안적인 식 문화 운동이 발전했던 선진국에서 흰 쌀, 흰 밀가루와 더불어 건강을 해치는 주적인 삼백(三白)으로 지목된 지 오래요, 요새는 국내에서도 추방 운동이 한창이다.
설탕도 말을 할 수 있다면 피를 토하며 격세지감을 하소연할지도 모른다.
로마 네로 황제 시대(기원 전 60년) 사카룸(saccharum)이라는 라틴어 명칭으로 처음 사료에 등장한 이래 이 돌같은 꿀은 황제부터 노예까지 전 세계 모든 이들을 굴복시켰다.
서기 600년 페르시아 제국의 의학자들이 사탕 수수의 즙을 응고, 정제해서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한 이래 페르시아를 괴멸시킨 이슬람 세계가 전리품으로 재빨리 챙긴 것도 이 사카룸의 제조 기법이었으며, 앙숙인 기독교인들 역시 설탕을 갈망했다.
마지막 십자군 원정이 끝날 즈음인 13세기 초에는 유럽에도 이 설탕의 마력이 널리 알려졌고, 이후 전쟁과 약탈, 조직적인 범죄들이 장장 7세기 동안 설탕을 둘러 싸고 벌어졌다.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에 이르기까지 구미 열강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샅샅이 뒤져 원주민들을 노예로 잡아 들인 뒤 중남미와 카리브 해의 사탕 수수 농장에 팔아 넘겼다.
정복자 나폴레옹은 과학자들을 채근해 사탕 수수보다 값이 싼 사탕 무로 설탕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신대륙 미국은 쿠바에 대규모 설탕 식민지를 건설했다.
17세기 초만 해도 설탕은 차와 함께 약국에서 취급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열 병, 기침, 가슴 통증, 위장 병, 심지어 흑사 병이라는 페스트까지 고쳐 내는 만병 통치 약으로 추앙받았다.
19세기 영국의 노동자들은 부자만 맛볼 수 있었던 설탕을 넣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면서 고된 노동의 시름을 잊었다.
온 세상이 설탕을 예찬했으며, 그 어떤 전통 문화에서도 설탕에 저항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생존 본능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설탕과 권력>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인류 학자 시드니 민츠에 의하면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미각은 단 맛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신호로 인지해 왔다고 한다. 인간을 포함, 모든 포유동물의 젖이 달다는 사실도 무관하지 않다고.
어떤 학자는 태아들이 자궁 안에 있을 때 이미 단 맛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젖의 대용물로써 설탕을 탄 액체가 사용되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
물론 끝 없이 계속되는 전성기는 없는 법. 설탕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이래 많은 민간 치료자와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의 몸이 수크로오스(sucrose, 사탕 수수나 사탕 무를 정제해서 만든 설탕)를 견뎌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1975년 출판된 이래 설탕의 유해성을 다룬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 <슈거 블루스>에서 <뉴욕 포스트> 기자 출신의 저자 윌리엄 더프티가 생생하게 묘사한 이른바 설탕 중독의 진행 상황은 이들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짚어 낸다.
“설탕을 매일 먹으면 체내에 과다한 산성 상태가 계속되는데 이 평형을 맞추려면 결국에는 체 내 깊숙이 저장된 미네랄을 쓸 수 밖에 없다. 혈액을 보호하기 위해 뼈와 치아의 칼슘을 꺼내 쓰는 지경에 이르면 이가 썩고,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과다한 당은 포도당으로 전환된 뒤 글리코겐 형태로 간에 저장되는데 이 용량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정제 설탕을 매일 먹으면 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한계에 이르면 초과 분의 글리코겐은 지방산으로 전환되어 혈액을 타고 돌아 다닌다.
혈액은 온 몸을 순환하다가 활동성이 떨어지는 배, 엉덩이, 유방, 허벅지부터 시작해 결국 심장과 콩팥 같은 활동성 기관에도 지방산을 축적하게 된다.
이 때부터 온 몸의 기능이 약해지고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변한다. 부교감 신경에도 문제가 생겨 이 신경의 지배를 받는 소뇌 같은 기관의 활동이 저하되고, 급기야는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순환계와 림프 순환계 역시 문제가 생긴다. 불량 적혈구가 생기고, 백혈구가 과도하게 생산되어 조직의 생장이 느려지는 것.
또 몸의 저항력과 면역성이 저하된 결과 추위, 열, 해충, 세균 등의 공격에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한다. 뇌 기능마저 떨어져 계산력과 기억력이 저하되며 항상 피곤한 상태로 지낼 수 밖에 없다”
설탕 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설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설탕 업계는 설탕이 영양가가 높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자들은 설탕이 영양가는 제로(0)이면서 오직 칼로리만 높다고 반박한다.
설탕 업계가 설탕이 화학적으로 순수한 천연 식품이라고 홍보할 때 상대편에서는 정제 과정에서 요오드, 철, 칼슘, 인 같은 미네랄 성분이며 섬유소, 나트륨 성분까지 사라지니 그야말로 순수하다는 말이 맞다는 비아냥으로 맞서고 있다.
섭취 후 몇 분만 지나면 온 몸에 생기가 도는 쾌속 에너지 원이라는 주장에는 입 속에서 씹을 필요도 없이 곧 바로 소장을 통과해 피 속으로 향하는 정제 설탕의 신속성이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반론이 잇따르고 있다.
설탕 업계는 설탕이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 병 등과는 무관하다는 FDA의 발표를 내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 영양 학회 정진은 교수는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보다는 총 섭취 열량이 높은 사람들이 비만한 경우가 많다는 논문으로 미국 학계에서 인정받기도 했다.
설탕을 탄수화물이라고 주장하는 설탕 업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자들은 몸 서리를 친다.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탄소라는 용어 자체의 뜻으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공공연히 탄수화물이라고 떠드는 건 저의가 있어서라는 것.
식품 포장지와 캔 라벨에 기재되어 있는 영양 성분 분석 표가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거론된다. 여기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의 함량만이 표시되어 있을 뿐 당분은 따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과 정제 설탕이 한데 묶여 동일한 영양소로 기재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설탕이 함유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화학 구조도 다르고, 몸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다른 포도당과 설탕을 한데 묶어 그저 당이라고만 부르는 것에도 설탕 반대론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포도당은 열 에너지를 발산하는 혈액의 필수 성분이다. 그러니 설탕까지 당으로 부르게 되면 사람들이 설탕 역시 인체에 꼭 필요한 성분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
혈중의 포도당과 코카콜라에 든 설탕이 당분이라는 이름 아래 얼렁뚱땅 묶일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분노 어린 반론이다.
이 두 입장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 많은 학자들은 대부분 정제 설탕을 배격하거나 또는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는 중도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노화 학자 클로드 쇼사르(Claude Chauchard) 박사는 체내 흡수가 빠른 당분들은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으로 전환된다고 경고한다.
사탕 수수와 사탕 무에서 얻은 정제 설탕은 물론이고, 갈색 줄기 나무 설탕(Brown Cane Sugar), 과일에서 얻은 과당(fructose), 꿀 등이 모두 몸에 좋지 않다고까지 단언하는 강경 입장.
그는 전 세계적으로 설탕 소비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우려한다. “설탕은 조미료일 뿐 음식이 아닙니다”
자생 한방 병원 비만 센터의 조언에 따르면 한의학에서는 설탕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다만 한의학의 고전 <황제 내경>에 의하면 단 맛을 적당히 섭취하면 근육을 이완시키고 비위를 보하며 예민해진 신경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단 맛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되면 신장의 기능을 떨어뜨려 신체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한의학에서의 신장은 단순히 소변을 걸러 내는 기관이 아니라 뼈, 근육들이 활동하는 기운을 주관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보고 있다.
또 지나친 단 맛은 심기(心氣)를 약하게 해서 쉽게 숨이 차거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고. 특히 단 맛의 과다 섭취를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육병(肉病)이 든 사람.
이 육병이라는 것은 기운이 빠져 물살처럼 살이 찌는 병을 뜻한다. 즉 병적으로 살이 찌는 경우에는 단 맛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야기.
특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패스트 푸드나 인스턴트 식품 등으로 섭취하게 되는 지나친 당분이 건강의 진정한 적이라고 짚어 냈다.
이제 우리 눈 앞에서 반짝거리는 백설탕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때는 지났는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청량 음료, 콜라, 롤빵, 페스트리처럼 혀로 단 맛이 느껴지는 음식들뿐만 아니라 피클, 케첩, 베이컨을 절일 때도 설탕이 들어 간다. 심지어 담배나 치약에도 당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면 믿겠는가?
모든 식품 산업 종사자들은 설탕이 사람들의 입 맛을 끌어 당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무설탕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다만 정제 설탕 즉 수크로오스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일 뿐 말토덱스트로오즈나 폴리덱스트로오즈 같은 다른 이름의 당분은 논외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다른 이름의 당분 역시 중독 과정을 촉진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식품 성분 표를 반드시 읽고 ose(오즈), ol(올) 또는 시럽 형태로 들어가 있는 것들을 주의하는 것뿐.
무가당이라는 말도 믿을 수 없다. 음료수, 스낵, 캔디, 젤리 등에는 포도당을 비롯한 말토 포도당, 폴리 포도당 같은 다른 형태의 당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설탕 7~9 티스푼은 너끈히 들어간 청량 음료 대신 무열량 음료를 즐겨 마신다고? 라버드 의대 교수인 윌터 윌렛의 말에 따르면 그것 역시 믿을 게 못 된다.
FDA가 승인한 설탕 대체물은 사카린, 아스파탐, 아세설팜 K, 수크랄로스 등 모두 네 가지. 물론 인터넷이나 각종 언론에서 떠들어 대듯 이것들이 건강에 결정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그는 반문한다. “평범한 물 또는 주스를 살짝 가미한 물을 마시면 될 텐데 왜 불확실한 것을 먹어야 할까 고민하죠?”
구멍난 포대에서 줄줄 새듯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설탕을 위시한 당분들. 그것들이 던지는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미 선택의 문제를 떠난 것처럼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예전처럼 직접 요리하기 보다는 대량 생산된 식품을 그저 소비하게 되면서 이제 우리는 직접 입으로 들어갈 음식조차 지배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다양한 세력들이 식품 산업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식품 소비 채널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더 편리하고 더 간편하며 더 자유롭다는 미명 아래 개인의 발언권이 역설적으로 줄어 들고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에 서 있는 양 거의 자동적으로 먹어 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퍼 넣고, 일체의 부담 없이 버리곤 했던 설탕을 한 움큼 집어 들고 한 번 생각에 잠길 때다. 매끄럽고도 반짝이는 설탕의 결을 찬찬히 바라 보며 그 안에 도사린 유사 이래의 이야기 거리, 논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
세상 모든 여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하얗고 반짝거리는 것이 무엇일까? 아쉽지만 다이아몬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 때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대접을 받았건만 이제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설탕이 바로 정답이다.
어느새 설탕에는 온갖 부정적인 야욕(당신을 살 찌게 만들고, 병들게 만드는)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다행히 화장품 업계에서는 설탕의 미덕이 아직도 유효하다.
“실제로 당은 오래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꾸준히 사용되어온 화장품 재료입니다” 태평양 연구소의 윤은숙 연구원의 이야기다.
가장 대표적인 아하(AHA) 성분으로 꼽히는 글리콜산이 그 좋은 예. 사탕 수수에서 추출되는 글리콜산은 각질 제거 효과가 뛰어나 거의 모든 각질 제거 제품에 쓰이는 성분이다(대개 3~10% 함유).
물론 화장품에 쓰이는 당은 우리가 말하는 설탕과는 동의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할 것.
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설탕을 가리키지만 화학적으로는 당류(saccharide) 중에서 물에 녹으면 단 맛이 나는 것(단당류와 대부분의 올리고당류)을 총칭하는 단어다. 따라서 설탕은 당의 한 종류에 불과한 셈이다.
“화장품에 쓰이는 당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당류는 단위에 따라 단당류(당의 성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더 이상 가수 분해 할 수 없는 최소한의 단위), 이당류, 다당류로 나눠지는데 설탕이 바로 이당류에 속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활에서 접하는 설탕은 이러한 이당류들이 덩어리를 이루어 결정화된 것을 말합니다. 설탕은 눈에 보일 정도로 크잖아요? 당연히 그 정도까지 커지려면 이당류들끼리 뭉쳐야 되겠죠”
화장품에 당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이들 당류는 피부에 닿는 순간 아주 작은 단위인 단당류로 분해되어 피부 보습력을 높이고, 에너지 원으로 사용되어 피부 대사에 도움을 주거나 또는 각질 제거에 탁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마치 초콜릿 하나가 노곤해진 온 몸에 영양을 공급해 주듯 화장품 속의 당은 피부에 보습과 함께 각질 제거까지 해주는 고마운 존재인 셈.
물론 요즘엔 이런 당류가 아닌 설탕 가루가 직접 화장품에 쓰이기도 한다.
“설탕의 질감을 살려 각질 제거용 폴리셔(polisher)로 쓰이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살구 씨 등의 곡물 형태 스크럽이 인기였다면 요즘엔 설탕이나 소금으로 만들어진 스크럽 제품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리진스의 노소영 홍보 과장의 이야기다.
“폴리셔로 쓰이는 설탕은 대부분 오일 베이스에 안정화시키기 때문에 닦아낸 후에도 오일이 피부에 남아 촉촉하게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죠. 게다가 천연 성분이라는 장점까지 있어 요즘의 웰빙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렇듯 피부에는 보약으로 인식되는 당이지만 설탕을 혀 끝으로 맛본 뒤 과감히 식도로 내려 보내는 일은 글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최근 과도한 당분 섭취가 피부 노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을 크리니크 연구소에서 제기했기 때문이다.
크리니크 연구소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과도하게 섭취된 당분은 단백질 섬유에 달라 붙어 서로 결합하게 된다고.
이런 과정 속에서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유해 노폐물인 AGE와 프리래디컬이 생성되어 피부의 섬유 조직은 서서히 딱딱해진다. 결국 피부는 탄력을 잃어 주름이 생기고, 자외선에 더 쉽게 손상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지금껏 고작해야 비만의 원인쯤으로만 짐작되었던 설탕이 주름과 탄력 저하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된 것이다.
이쯤되면 누가 무서워서 마음 놓고 설탕을 먹을 수 있을까? TV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던 슈 크림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날카로워진 신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코코아 한 잔은 또 어떻고.
하지만 다행히 당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대사 작용에서 적정한 양의 당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
문제는 적정한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닐까? 많은 여성들이 그 적정하다는 당의 양을 짐작하기 어려워 지금 이 순간도 쉽게 포기한 채 살아 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금처럼 일상적인(이 단어의 동의어는 고생스럽지 않게가 아닐까) 식 생활에서 AGE 생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당분 특히 정제된 당분 섭취와 함께 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일 것. 가공 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AGE 함유 가능성이 높다)을 피하고 가급적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는 것만이 비결이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친구라지만 설탕은 당신의 친구도 혹은 적도 될 수 있는 양 날을 날카롭게 세운 검과 같다. 그리고 그 검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당신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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