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건축만이 삼림 파괴를 유발한 원인은 아니었다.
목재는 난방과 요리를 하기 위해 , 또 소금 , 타일, 도지기를 만들기 위한
산업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연로로서의 기능 역시 수행했던 것이다.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듦으로써 철을 제련할 수 았는 뜨거운 불을 얻을 수 있엇다.
또 인구가 늘어나자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으므로 숲을 베어내고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농토를 만들어야 했다.
농부들은 자신의 밭을 '녹색비료(예: 나뭇잎 나무 겁질, 나뭇가지)'로 비옥하게 만들었고,
소와 말들에게 숲에서 얻은 사료(덤불, 풀)를 먹였다.
1에이커의 농지에 필요한 녹색 사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5~10에이커의 숲이 필요했다.
전쟁이 종결되던 1615년 전까지 아이묘와 쇼군 휘하의 군대는
말을 위한 사료, 무기와 방어 울타리를 만드는데 쓰이는 대나물를 숲에서 얻었다.
또한 삼림 지역을 소유하고 있는 다이묘들은 쇼군에게 매년 목재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졌다.
건축붐과 이에 따른 삼림 파괴는 1570년부터 1650년까지 최고조에 달했다.
그 이후에는 목재가 부족해지면서 그 소비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쇼군이나 다이묘의 직접적인 지시, 또는 농부 자체의 필요성에 따라 나무를 베었으나
1660년대부터은 사기업이 정부의 주문을 받아 목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에도에서 화재가 또 발생했을 때 가장 유명한 목재상 중 한 명이었던 기노쿠니야는
영리하게도 화재로 인한 목재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에도에서 큰 이윤을 남기고 팔고자
화재가 진압되기 전부터 기소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목재를 사들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삼림 파괴가 진행된 곳은
가장 큰 섬이자 초기 일본의 주요 도시인 오사카, 교토가 위치하고 있던 혼수 섬의 기나이 분지로
서기 약 800년 경이었다. 1000년경에 이르면 벌목 현상은 작은 섬인 시코구에까지 확산된다.
이어 1550년 무렵에는 일본 국토의 약 4분의 1이 벌채되었지만 (주로 혼슈 중심 지역과 동부 시코구 부근)
나머지 지역엣는 여전히 저지대 숲과 이전부터 있던 오래도니 숲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1582년,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에서 목재를 요구한 최초의 일본 통치자가 되었다.
그의 영지에서 생산되는 목재만으로는 많은 건물을 짓는 데 따른 목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산림 지역의 통제권을 갖고 있었으며
매년 각 다이묘들에게 특정한 양의 목재를 공급하도록 명령했다.
쇼균과 다이묘들은 자신들을 위해 산림을 벌채한 것은 물론
마을이나 사유지를 장식하기 위해 온갖 귀중한 수종(樹種)을 독차지했다.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벌목지에서 목재가 직접 소비되는 도시나 성의로 나무를 운반하기 쉽도록
정부는 강에서 운송에 방해가 되는 장애 요소를 제거했고,
이에 따라 목재를 강물에 띄우거나 뗏목에 실어 소비지까지 운송할 수 었었으며,
후에는 배에 실어 항구까지 운반했다.
벌목 현상은 최남단 섬인 규슈의 남쪽 끝에서 시코구를 거쳐 혼슈의 북쪽 끝까지 주요 세 개 섬에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1678년에 이르면 벌목업자들은 당시에는 일본 땅이 아니었던
혼슈 북쪽의 홋카이도 남부 지방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1710년에 이르면 경사가 너무 가팔라 접근할 수 없거나,
아니면 도쿠가와 시대의 기술로는벌채가 너무 어렵고 채산이 맞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 개의 주요 섬들(규슈, 시코구, 혼슈)과 홋카이도 남부 지역의 접근 가능한 모든 산림 지역이 벌채되었다.
삼림 파괴로 목재, 땔감, 사료로 사용되던 나무가 부족해졌고,
호화스런 건축물도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지을 수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분명한 현상 말고도 목재 부족 현상은 다른 방향에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목재와 연료를 둘러싼 마을 내, 마을 간, 그리고 다이묘와 쇼군간의 분쟁이 증가하게 되엇던 것이다.
그들 모두는 일본의 산림을 먼저 차지하고자 경쟁을 벌였다.
이때 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또 다른 논쟁이 벌어졌다.
목재를 운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라믈이 있는가 하면
낚시나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싶어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1장 몬태나의 경우에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산불도 증가했는데,
이는 벌목지에 새로 심어진 나무들의 경우 이전의 오래된 나무들보다 더 불에 타기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단 경사면을 보호하고 있던 숲이 제거되고 나니
많은비가 내리고, 눈이 녹고, 지진이 자주 발생하면서 토양이 침식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나무가 사라지나 경사면에서 물이 흘러내려 저지대를 범람시켰고,
토양이 침식되면서 저지대의 관개 수로의 물 수위가 높아져 폭풍으로 인한 피해가 커졌으며,
숲에서 채취할 수 있었던 비료아 사료가 부족해졌다.
결국 이런 모든 요소는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 농작물의 양을 감소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을 줄곧 괴롭혔던 식량 부족 사태가
160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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