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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그레고리안 성가는 중세가톨릭교회 64대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GrgoriusI 540~604)가 주도하여 각 나라별, 지역별로 부르던 성가를 수집한 다음, 교황청에서 정리한 미사곡이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이탈리아 로마의 부유한 원로원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1세는 법학을 공부하여 573년 로마 시장이 됐다. 로마 시장이 된 이듬해 아버지 고르디아누스(Gordianus)가 세상을 떠나자, 이때 그레고리우스1세는 첼리오언덕에 있는 부모의 저택을 성 베네딕투스수도회 소속 성 안드레아수도원으로 만들어 스스로 그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레고리우스1세는 나중에 교황이 됐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지역별로 서로 다른 성가를 부르는 것이 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지역을 순회하며 미사를 집전하든 서로 이해되는 노래를 주고받으며 은혜가 상통하기를 원했던 그는 각 지역에 수사를 파송하여 미사를 수집하게 했다. 그렇게 모은 노래가 1000여곡이 됐다. 그러나 교황청이 이 노래를 보존하며 가르치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악보가 없는 시대였으니 모든 노래를 귀로 듣고 외워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각 지역에 가서 듣고 외워서 모아온 노래들을 입으로 전달하여 가르치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구전으로 전하는 노래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도 없고 기억에 따라 오류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라테라노 궁전 근처에 있는 집을 내주어 스콜라 칸토룸(Scola Cantorum 기숙제(寄宿制) 성가 가수 양성학교)을 세워 가수 교육을 실시했다.
스콜라 칸토룸을 졸업한 성가대원들이 미사 시간에 성도들이 하던 교창과 응창을 대신하게 되자 미사음악의 수준이 향상됐다. 또 스콜라 칸토룸에서 독창자로 교육받은 합창장(Cantor)이 각 지역 교회음악 지도자로 파송되어 노래를 가르치며 교회음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칸토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많은 노래를 암기해야만 했으며 칸토르들은 오랜 기간을 스콜라 칸토룸에서 엄격하게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정리된 그레고리안 성가가 2000년 후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구천 울산대 객원교수·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추천음악= 그레고리안 찬트, Te D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