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17분.
인천국제공항 인근 영종도 해안가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인은 익사. 그러나 형사 강도현의 눈에는 그 결론이 처음부터 마음에 걸렸다.
*익사한 사람의 손에는 이렇게 깊은 손톱 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시신의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다. 손가락 사이, 방수 처리된 작은 USB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강도현은 장갑 낀 손으로 그것을 꺼냈다.
USB 표면에는 유성 매직으로 단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태블릿'**
그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다음 날 오전, 서울 마포구의 낡은 사무실.
강도현 사설탐정사무소. 간판의 페인트가 절반쯤 벗겨진 그 공간에, 예고 없는 손님이 찾아왔다.
여자였다. 나이는 서른 중반. 검은 코트에 선글라스. 그리고 눈 밑의 짙은 그림자. 며칠째 잠을 못 잔 사람의 얼굴이었다.
"강도현 탐정님이시죠?"
"그렇소만."
"제 오빠를 찾아주세요."
그녀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강도현이 봉투를 열자 사진 한 장이 나왔다.
남자. 40대 초반. 단정한 인상.
강도현의 눈이 멈췄다.
*어젯밤 영종도 해안가.*
"성함이?"
"이수혁. 시노코 해운 전략기획팀 부장이었어요. 3일 전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강도현은 천천히 봉투를 내려놓았다.
"'이었어요'라고 하셨소?"
여자의 입술이 떨렸다.
"...느낌이 그래서요."
사무실 한 켠의 낡은 노트북에 USB를 꽂자, 암호 입력창이 떴다.
강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해자의 이름, 생년월일, 회사명을 차례로 입력했다. 모두 실패.
*마지막 시도.*
그는 USB에 적힌 두 글자를 다시 떠올렸다.
**태블릿.**
자판을 두드렸다.
**TABLET**
딸깍.
폴더가 열렸다.
안에는 세 종류의 파일이 있었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직전 시노코 해운이 VLCC 초대형 유조선 12척을 대량 계약한 내부 문서.
둘째,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결된 것으로 의심되는 국내 유령회사의 자금 흐름 추적 자료.
셋째, 그리고 마지막. 스캔된 태블릿 화면 캡처 파일 수십 장.
강도현은 마지막 파일을 열다가 손을 멈췄다.
화면 속 문서들에는 특정 정치인들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숫자들. 날짜, 금액, 계좌번호.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거다.*
그는 USB를 뽑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강도현의 두 번째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왔다.
이수혁의 사무실 서랍에서 발견된 항공권 영수증. 3주 전, 이스탄불 경유 테헤란행. 출장 기록에는 없는 일정이었다.
*왜 테헤란에 갔나.*
그는 오래된 인맥을 뒤졌다. 국가정보원 출신의 전직 동료, 박진수.
"테헤란에서 최근 한국인과 접촉한 이란 측 인물 있어?"
전화기 너머 박진수가 낮게 웃었다.
"도현아, 너 지금 어디까지 들어온 거야."
"이수혁이라는 사람 알아?"
침묵이 흘렀다.
"...만나자. 전화로는 안 돼."
---
그날 밤 한강 시민공원 벤치.
박진수는 코트 깃을 세운 채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수혁은 단순한 해운 직원이 아니었어. 호르무즈 봉쇄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유조선을 선점한 건 그 작자가 만든 시나리오야. 근데 그 과정에서 뭔가를 봤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태블릿."
박진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들었어?"
"그 사람 손에 쥐어져 있었거든."
박진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태블릿 안에는,"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란 자금이 국내 특정 세력으로 흘러들어간 증거가 있어. 호르무즈 봉쇄를 미리 알고 움직인 게 시노코만이 아니라는 거지."
강도현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비밀도.
세 번째 단서는 이수혁의 휴대폰 통화 기록이었다.
죽기 48시간 전, 그는 같은 번호에 여섯 차례 전화를 걸었다. 모두 수신 거부.
번호를 역추적하자 나온 것은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인근의 민간 주소였다.
강도현은 차를 몰았다.
평택 팽성읍의 작은 원룸 건물.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 떠난 흔적이 역력했다. 뒤집힌 의자, 바닥에 흩어진 서류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세계 지도.
지도 위에는 붉은 펜으로 세 곳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호르무즈. 평양. 평택.**
그리고 그 세 점을 잇는 선.
강도현은 사진을 찍었다.
*이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다.*
이수혁이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의 수신자는 미국이었다.
미 의회 정보위원회 소속 보좌관의 개인 주소. 첨부 파일은 암호화되어 있었지만, 제목만은 평문이었다.
**"Tablet Files — Evidence of manipulation and foreign interference"**
강도현은 오랫동안 그 제목을 바라보았다.
이수혁은 죽기 전에 이미 이 파일을 누군가에게 넘겼다. 그렇다면 그는 왜 죽었는가.
*파일을 넘겼기 때문이 아니다. 파일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내부에 누군가가 있다.
의뢰인 이수연이 다시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오빠... 맞죠?"
강도현은 대답 대신 USB를 내밀었다.
"이게 당신 오빠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겁니다."
이수연은 USB를 받아들고 오래 바라보았다.
"오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호르무즈 봉쇄가 단순한 지정학적 긴장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그 혼란 속에서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걸.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여기까지 닿아 있다는 걸."
"누가 오빠를 감시했습니까?"
이수연의 눈이 흔들렸다.
"...저도 몰랐어요. 오빠가 가장 믿었던 사람이 바로 그 연결고리였을 줄은."
강도현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워싱턴 D.C., 미 의회 청문회장.
강도현은 방청석 맨 뒷자리에 앉아 증인석을 바라보았다.
증인은 이수연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태블릿에 담긴 진실, 조작된 자금 흐름, 호르무즈와 평택을 잇는 보이지 않는 선들.
홀 안이 조용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의원들은 서류를 들여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강도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포토맥 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진실은 언제나 더디게 온다. 하지만 반드시 온다.*
멀리 테헤란에서는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뉴스가 흘렀다. 압록강 너머에서는 라디오 전파가 어둠을 뚫고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평택의 기지에서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바람에 펄럭였다.
세상은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 하나가 드러나는 순간, 균열은 시작된다.
강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일은 끝났다.
영종도 해안가.
강도현은 혼자 그 자리에 다시 찾아왔다.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갔다. 이수혁이 마지막으로 누웠던 자리.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USB였다. 원본 말고, 이수혁이 예비로 만들어두었던 두 번째 복사본. 이미 모든 파일은 안전한 곳에 전달되었다.
그는 USB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당신이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전달되었소. 이수혁 씨.*
바람이 불었다.
호르무즈의 바람과 같은 바람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 해안까지 닿은 것 같았다.
> *봉쇄된 것은 해협만이 아니었다.*
> *진실도, 자유도, 오랫동안 봉쇄되어 있었다.*
> *하지만 물은 반드시 길을 찾는다.*
> *그리고 진실도 그러하다.*
>
> *호르무즈에서 평택까지.*
> *그 길은 결코 막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