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커라면 위대한 始祖, 존 맥그리거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존 맥그리거(1825-1892)는 지금 국제카누연맹(ICF)과 우리나라 대한카누연맹(KCF)의 홈페이지에서도 '카누의 역사' 페이지에 거론 될 정도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의 일생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해보면서 그가 카누카약 스포츠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가졌었는지도 함께 알아보려고 합니다.
John MacGregor's Life
스코클랜드 군 장교와 귀족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태생부터 금수저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따라 인도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동인도회사 소유의 배(돛달린 기선)에 타게 되었는데 고작 세 번째 항해에 나선 배에 촛불로 인해 불이 나는 바람에 탑승자 641명 중 81명이 목숨을 잃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는데 그 와중에서도 생존 - 어차피 오래 살 운명이었던 듯
아버지의 지시(?)대로 영국의 왕립학교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까지 졸업한 수학에 재능을 보이며 성장. 강한 기독교 신앙으로 선교사가 되기를 열망하고 토목공학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과학적 관심이 커서 특허법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됨. 재미있는 건 사격에도 능한 명사수여서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사격 대표선수로까지 활동했다고 함 - 다재다능한 인간類
청년시절에는 가난한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런던의 누더기학교연맹(Ragged School Union) 출범에 중요한 역할을 함
여행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20대 때에는 9개월간 남유럽, 중동지역을 탐험하고, 30대 때는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했음 - 그때 캐나다에서는 카약을, 미국에서는 카누를 접하게 되었다고 함.
캐나다에서 본 에스키모 카약을 본떠 설계한 무게 36kg의 15피트짜리 목재 프레임에 고무 캔버스를 씌운 Rob Roy 카약을 직접 제작함. 30대 때 모두 7척을 만들어 유럽과 발트해, 중동을 다니면서 탔다고 함. 오늘날까지 국제카누연맹에서 '카누세일링' 종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Rob Roy의 컨셉을 잘 계승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닐지.
1866년 그의 나이 41살에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아 영국왕립카누클럽(British Royal Canoe Club)을 창립해서 첫 수장(captain)이 되었고, 55세가 된 1880년에는 미국카누협회(American Canoe Association) 창립 멤버가 됨 - 진짜 오지랍이 남달랐던 것 같기도 한데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과 무게감 덕분에 지르는 일마다 다 잘 된 듯.
30대 후반부터 카누와 카약 여행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쓰고 출판까지 함. 그 중에서 1866년에 쓴 'A thousand Miles in the Rob Roy Canoe'로 꽤 많은 돈도 벌었다고 함 - 어찌되었든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고 봐야 함.
그의 약력을 보면 정말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살았음이 느껴짐 - 변호사, 카누인, 스포츠작가, 환경운동가, 발명가, 여행작가, 자연주의자, 탐험가, 자선가, 저격수, 교육위원회위원, 팔레스타인학자, 성지여행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동문
John MacGregor's concept
"in walking you are bounded by every sea and river, and in a common sailing-boat you are bounded by every shallow and shore; whereas, ...a canoe [can] be paddled or sailed, or hauled, or carried over land or water". (그가 쓴 저서의 내용 中 - 위키피디아)
아마도 그는 수상 여행에 카누나 카약이 갖고 있는 효용성이 엄청나다는 점에 주목한 듯 합니다.
오늘날에도 배를 이용한 수상 여행을 하는데 카누 카약에 비견할 만한 보트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물론 존 맥그리거가 만든 Rob Roy(스코틀랜드의 무법자 이름을 딴 것)는 오늘날의 Folding Kayak과 달리 분해 조립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요령만 있으며 혼자서 들어 나를 수도 있고 자신의 차에 실어 운반할 수 있다는 점, 발목 깊이만 되면 어디든 입출항 할 수 있으며 값도 저렴한 것은 물론 운영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 ^^
이후 1900년 초에 독일의 요하네스 클레퍼(Klepper)가 분해 조립이 가능한 형태로 대량 생산하면서 1930년대 중반까지 유럽 전역에 무려 50만대가 팔렸다고 하니 정작 큰 돈을 번 건 딴 사람이라는 건 참 재미있습니다.
존 맥그리거는 그 특유의 자선가的 사고에 기반해서 작게는 club 크게는 union같은 조직을 만드는데도 능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지금 카누와 카약을 그저 단순 취미 활동을 위해 배를 구입해서 야외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데 있어서 이 자선가的 인식이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아쉬움이 점점 더 커지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창립한 영국과 미국의 조직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자선가的 인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보도록 하고요.
영국은 특히 자국은 물론 해외 식민 영토에서도 카누 카약 스포츠 교육 체계(system))를 잘 다지고 나아가 최근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교육 체계에까지도 크나큰 영향을 주었고, 미국도 나름대로의 교육 체계 구축도 잘 했지만 AW(American Whitewater)같은 환경 운동쪽 체계를 더 잘 다졌다고 봅니다.
여기에 지금도 전세계 카누 카약의 최고 브랜드가 거의 다 영국과 미국에 있다는 것만 봐도 그의 컨셉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