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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9:1-4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우리는 긴 창세기의 역사 중 한 장을 남긴 마지막 부분에 왔습니다.
창세기는 지구역사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아주 긴 역사를 기록한 성경 최초의 책입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습니다.
그 긴 역사 가운데 또한 가장 긴 장에 기록되어 있는 야곱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을 오늘 우리는 함께 찾아 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장이 창세기 49장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49장 마지막 부분에는 야곱이 평안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요.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될 지는 모르지만 야곱이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베푼 야곱의 축복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르으벤에게 주어진 축복 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에 레아를 통해 얻은 장자입니다.
그 아들을 낳은 레아에 대한 기록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성경학자들은 르우벤이라는 뜻을 레아가 말한 하나님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 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하고요.
이제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라는 의미로도 이해를 합니다.
야곱은 자기의 큰 아들 르으벤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시작 때 읽은 3절 4절입니다.
창 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으벤아 하죠?
야곱이 아들들에게 한 축복을 읽어보면 이름들은 다 불려 졌지만 르으벤처럼 누구야 하고 부른 이름은 르으벤과 유다 뿐입니다.
그렇게 불리운 것의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좀더 애정 어린 그런 표현이라고 저는 이해를 합니다.
르으벤을 그렇게 부르고 난 다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너는 내 장자요” 무슨 말씀 같습니까?
혹시 가정에 장남이나 장녀로 태어나신 분 계시나요?
우리 나라도 이스라엘 못지 않게 장자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런 나라이죠,
그렇습니까?
저의 부모님을 보니까? 장자는 집안 일 별로 한 것이 없어도 큰 아들이라고 제일 큰 몫을 남겨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도 마지막 축복의 기도를 하면서 너는 내 장자요 하는 말로 큰 아들을 불렀습니다. 너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런 아들이다 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그 다음 그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너는 나의 모든 것이다 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한 다음 그 다음 말씀은 더 엄청난 말씀을 주십니다.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 너는 다른 아들들과 다르다는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월등하고 탁월하다”
야곱은 장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어떠함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질렀습니까?
몇분인지 몇초인지 알 수가 없지만 야곱은 아주 짧은 시간에 둘째로 태어 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게 못 마땅 했습니다.
그냥 못 마땅한 것이 아니고요.
장자에게 돌아갈 복을 갈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어떤 일을 꾸몄습니까?
먼저는 배고픈 형의 식탐을 이용하여서 형의 장자권을 갈취하였고요.
다음으로는 어머니와 결탁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 챘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야곱이 태 안에 있을 때부터 야곱을 장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의 성향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장자의 복이 야곱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무엇을 보셨을까요?
제가 금요일 저녁마다 창세기를 하면서 야곱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무슨 냄세를 들으셨습니까?
사람냄세 많이 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으셨죠.
아니 사람이 사람냄세 많이 나는 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사람냄세는 세속적인 사람 냄세입니다.
성경은 그 냄세에 대하여서도 언급한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두 냄새를 사도 바울은 언급합니다.
무슨 냄세와 무슨 냄세 입니까?
다른 사람이 맡으면 무엇에 이르는 냄세요?
사망에 이르는 냄세, 다른 냄세 하나는요? 생명에 이르는 냄세,
야곱이 무슨 냄세를 많이 피웠다는 말씀입니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세를 많이 피웠다. 그런 것도 우리 찾아 보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어떻게 하셨다고요? 장자로 선택하셨다.
무엇을 보시고요?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는 것을 보시고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도 중히 여기시지만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인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루터가 회심하게 된 말씀도 그런 말씀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마음은 어떠하지만요?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지만 그 마음의 중심이 하늘을 향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이라 합니까? 믿음으로 살리라.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로마서 1:17절과, 갈 3:11절과, 히10:38절에 이 말씀을 인용 언급을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까? 집사람은 저를 보고 교만에 대하여 자주 말을 합니다.
제가 저를 보는 것 보다 아내가 저를 보는 눈이 더 정확하겠죠?
더 겸손하려고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교만이 있습니까?
정직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인은 무엇으로 산다고요?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들으셨죠? 말씀에 대한 순종이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아멘입니까?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도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신다고요? 야곱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세상에서 장자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시 89: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이 말씀은 첫 번째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요, 다음으로는 다윗에 대한 말씀이고요, 그 다음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께 연합한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이해되시나요? 그렇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장자의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의 장자로 삼고요.
나중 주님 오시는 날에는 우주의 장자로 삼으실 것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요.
이다음 하늘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야곱이 르으벤에게 말한 월등하고 탁월하다는 말씀이 누구에게 적용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거 맞습니까?
예 우리 성도님들 성경이 말하는 월등하고 탁월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비록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살았지만 바벨론의 장자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그가 월등하고 탁월하였습니까?
다니엘서에는 다니엘과 바벨론 사람들에 대하여 평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하늘 장자들로 부르심을 받으신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니엘처럼 믿음안에서 세상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함과 탁월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르으벤은 그 장자의 축복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창세기를 보겠습니다.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물이 끊음 같고 탁월하지 못하다.
우리 성도님들 물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저희들이 살고 있는 집을 세를 주고 어려움을 격었던 이야기를 드렸죠?
아이들이 물통을 들고 물을 떠 나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게 일시적은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전기는 끊지 못하였지만 저의 생각으로 전기보다 더 중요한 물은 끊었습니다.
아파트에서 한 것인지 수도과에서 한 것인지는 몰라도요.
그리고 난 다음 그 집 사람들이 나갔을 때 집의 모습을 제가 말씀 드렸죠.
화장실에 응아가 변기 뚜껑까지 오르도록 차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볼 수가 없기까지 그곳에서 본 모양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느꼈습니다.
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이 끊어지면 이렇게 더럽고 추해지는구나 라는 것을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을 늘 사모하게 되길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물은 무엇에 대한 상징입니까?
물을 알아야 물이 끊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성경 보겠습니다.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무엇이 물에 대한 상징이라고요?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우리 성도님들 성령을 사모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목마름이 없는 풍성한 하늘 분위기로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물로 씻어 무엇으로 깨끗하게 하시고요? 말씀으로..
물로 씻었는데 어떻게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나요?
물로 씻었으면 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 말씀은 물의 상징은 또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더 깊은 연구는 우리 성도님들 스스로 해 보시길 바랍니다.
물에 대한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 무슨 말씀을 드렸습니까?
요 4: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도 물을 구하여 결코 목마르지 않는 풍성한 샘물을 경험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아주 소중한 말씀 하나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물이 끊어지듯이 그러한 처지에 내려간 르으벤의 잘못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창 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으벤이 그렇게 월등하고 탁월하였지만 물이 끊어짐 같이 된 이유를 무엇이라 합니까?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르으벤은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 패역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장자의 자리를 떨어지게 하는 이유가 되었고요.
우리는 여기서 우주의 장자로 태어난 한 인물을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음을 받던 순간부터 완전한 존재로 창조함을 받은 존재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이러한 말씀을 줍니다.
겔 28:14-15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 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완전하게 지음을 받고 그룹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존재가 누굽니까? 루스벨이죠.
우주의 맏아들처럼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 다음으로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과 연합하였던 그가 어떻게 하다가 떨어졌나요?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 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어디에 오르려 했다고요?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도 아버지 침상에는 오를 수는 있어도 아버지의 자리에는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이유가 그렇습니까?
그런데 누가 시도 했습니까? 사탄 루스벨이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의 보좌에 누가 앉아 있습니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의 보좌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지 못한다면 누구와 같다고요.
사탄과 같다 제가 심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늘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보좌를 점령하려고 하다가 떨어진 사탄과 함께 추락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원하여 떨어지셨습니다. 어디로요? 지옥으로
그리고 사람으로 오시어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보좌를 건설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 마음의 보좌에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끄집어 내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사탄과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보좌에 계시는 어린양의 인도를 따라 살아감으로 어린양이 시온산에 설 때 우리 함께 그곳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