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를 들으며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한 공동체가 경험하는 시대는 종말의 시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목이 베이고 피를 흘려야만 하는 야만의 시대입니다.
종교는 아편일까요? 아니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 만드는 위로일까요?
복음서를 새롭게 읽으며 복음서의 저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예수님 대신 신적인 예수님만 증언하는 종교는 균형을 잃은 종교입니다.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현실에서 새로운 혁명을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아편 같은 종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과 동떨어진 내세에서만 존재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현실을 순응하게 하고 진실을 외면하게 하게 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바꿔 하나님의 정의가 세상을 다스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순응하며, 세상의 아픔을 아픔을 외면하고 개인의 구원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편같은 종교입니다.
반대로, 제국의 폭력앞에서 고통받으며, 시련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절망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만들며, 하비루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끔찍한 고통가운데서 그들을 반듯이 구원해 주실것라는 믿음의 종교는 커다란 위로의 종교입니다.
동학 혁명이 제국의 폭력 앞에서 처절하게 탄압받고 버림받았을 때 천도교는 새로운 희망을 주는 위로의 종교가 되었던 것처럼, 요한 공동체 역시 하나님의 약속과 천년왕국을 통해 커다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앙함과 우리의 고백이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여 주는 종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문명의 이기와 도시의 삶으로부터 편안하게 살아갈 때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이,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주간의 강의를 통해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1세기 예수 공동체가 경험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복음서를 읽으니 이전 보다 훨씬더 풍성해 지는 경험과 모호했던 신앙관들이 다시금 정립되는 경험을 하게되었습니다.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이전에 공부하지 못했던 바울과 예수 강의도 들으면서 좀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8주간 쉽지 않은 강의를 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강의를 참여해 주신 분들도 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첫댓글 구구절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젊은날 크로산과의 만남은 잠깐의 학문적 외출이었지만 우물로 다시 돌아와서 종교적,문자적 편협의 돌담을 헐고 수정해서 성경적으로 다시 쌓으려다보니 예전보다 볼 품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예수의 찐 설교에 입각한 재건축이라는 것만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