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6월4일(日)雲
▲성제봉(聖帝峯)(외둔리입구-고소성-신선대-구름다리-정상-노전리)
해봉산악회(39명)
◈참 고
성제봉(聖帝峰)일명 형제봉[兄弟峰]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花開面)과 악양면(岳陽面)의 경계에 있는 산.
문화재 : 고소성
높이 1,115m의 지리산 자락 가장 남쪽에 있는 최고봉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모습이 비슷하여 형제봉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정상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어
매년5월에는 철쭉제를 개최한다.
형제봉 등산로 주변에는 통천문, 신선대, 봉수대, 고소성 군립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고소성 군립공원에서 내려다보면 《토지》의 주 무대인 평사리 들이 한눈에 보인다.
또한 악양팔경(岳陽八景)이라는 악양의 주요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해발 300m에 있는 고소성(姑蘇城:사적 151)은 천연의 요충지에 있어 백제와 신라의 접전
지였다. 형제봉의 등산로 대부분 악양면 등촌리에서 시작하여 신선봉, 고소성을 따라 19번
국도로 향하는 코스와 성불재를 거쳐 쌍계사로 가는 길이 있다.
▲*하동군청 홈피에서
해발 1,115m의 성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지명이다.
남부능선의 끝자락이면서도 정작 남부능선 종주산행에서 제외되곤 하는 성제봉이지만 성제봉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산행 대상지여서 최근 주말 산꾼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 "土地"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녘의 풍성함과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는 섬진강의
비경 그리고 섬진강 건너 지리의 지맥이 그대로 이어져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제봉이기 때문이다. 삼신봉에서 성불재, 내원재를 지나 시리봉 못미쳐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성제봉이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시리봉을 지나 조식선생이 넘었다는 회남재를 거쳐 청학동과
묵계에 이를 수 있다.
성불재에서 성제봉까지도 대략 2∼3시간이면 닿는다.
성제봉의 등산로는 대부분 악양면 등촌리에서 시작되는데 하산은 신선봉, 고소성을 따라
19번 국도로 향하는 코스와 성불재를 거쳐 쌍계사로 향하는 코스가 있다.
주말 산꾼들은 주로 악양면 등촌리를 시발점으로 해 성제봉에 올랐다가 고소산성을 따라
하산하기도하며 쌍계사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 산행이라기보다 독립된 성제봉으로서의 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성제봉을 산행하면서
음미해 볼 수 있는 것은 해발 300m에 위치해 있는 고소산성과 토지의 평사리, 그리고 중국의
악양형과 지세가 유사하다는 악양의 절경등을 들 수있다.
♣산행 코스
외둔리입구,(10시43분)-->고소산성(11시27분)-->통천문(12시10분)-->신선대(14시16분)-->정상(15시20분)
-->노전마을입구(17시43분) 총 7시간
☞☞지리산 자락의 삼신봉을 콧등에 두고 있는 성제봉. 솔직히 지난주 까지만 해도 그
이름조차 몰랐든 산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숨겨놓은 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가 예상외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여
거의 만원이 되어 출발.
버스가 남해고속도로에 오르자 이 태근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한다.
“출발지점 부터 계속 오르막을 타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아 힘드시겠지만 그런 회원님
들은 중간에 탈출 코스가...” 있으니 괜찮은 산행이라며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중간 휴게소를 거쳐 하동으로 빠져 왼편으로 섬진강을 끼고 19번 국도를 달리다
10시36분, 국도변 외둔리 입구에 정차한다.
집체만 하게 가로 누워있는 ‘瀟湘樂園’이라고 음각한 석비와 큼직한 ‘악양면 안내’
간판이 한자로 쓰여 있어
중국문화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시선을 끈다.
우선 ‘소상’이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남부를 흐르는 샤오수이강[瀟水]의 별칭이며,
샹장강[湘江] 중류와 샤오수이강의 합류 부분을 가리키기 때문인데 ‘성제봉’유래등을
하동군에 문의했으나 아직 정답은 더 기다려봐야겠다.
각자 산행준비를 마치고 원을 그리며 각개점호와 상견례로
10시43분, 곧장 비탈로 출발한다.
숲이 없는 턱에 올라서니 엉겅퀴 한 송이가 반갑게 인사하고 등산로 주변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한 장년회원은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었는데 걸어가며 딴 게 벌써
한주먹이나 된다.
곧 된비알의 바위길이 이어지고 회원들의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숲 속 길로 이어지자 몇몇 회원들은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하고 가파른 바위 사이 길을
올라
11시27분, 보수중인 ‘하동 고소성터’에 올라선다.
뒤돌아 잠시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안내간판에 설명문이 쓰여 있다.
참고로 하동군 홈피에서 간략하게 옮겨본다.
‘산성 둘레는 800여m. 장방형(長方形)바위를 견고하게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남북
양쪽에 성문을 설치했으며 성벽 높이는 3.5∼4.5m로 아래 폭이 6m, 상면폭이 2m인 사다리
모양이다. 성의 축조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하동군지에 따르면 신라의 김춘추
장군이 백제를 공격할 목적으로 당나라에 원병을 청해 축조, 나당연합군의 주둔기지로
활용하면서 백제와 왜(倭)의 협력을 차단시켰다고 전한다. 특히 이곳에서 소정방(蘇定方)
군이 주둔, 주력부대를 지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소산성의 축조 유래는 소송이(蘇松伊)에 얽힌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蘇장군의 부친과
모친 경주 金씨는 후손이 없어 걱정을 하던 중 어느 날 金씨 꿈에 신령이 나타나 康州
(지금의 진주) 부근으로 이사를 하면 후손을 볼 것이라고 해 그대로 했더니 아들을 얻었다 한다.
그 후 蘇장군이 성장, 外城을 쌓으라는 어머니 金씨의 명에 따라 산성을 축조했는데 蘇
장군의 성씨를 따 고소산성이라 부른다는 전설이다.‘
성벽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그 그늘 아래서 서너 명의 다시 휴식을 하고 탁
트인 경관에
다시 뒤돌아 메마른 섬진강과 오른편의 소설 "土地"의 주무대인 평사리 들녘을 캠코더로
담고 다시 배낭에서 캐넌을 꺼내어 촬영한다.
진행방향으로 통천문, 신선봉과 신선대가 능선 따라 길게 위로 뻗어있다.
숲 속으로 들어서자 오른편으로 줄을 길게 쳐놓았는데 한참 공사 중인 모양이다.
다시 바위사이 오름길을 거쳐 턱에 올라서는데
11시39분, 좌로 암괴가 앉아있고 오른편 소나무에 노란 ‘통천문’ 방향표지판이 붙어있다.
바로 내림 길로 이어지는데 저만큼 통천문의 거대한 바위가 보이고 바위 사이 오름길로
변한다.
암괴 왼편으로 첫 철 계단이 나타나고 연이어 작은 계단을 거쳐 두 번째 철 계단을 올라서니
12시, 오른편은 벼랑인 거대한 암괴 두개가 서로 머리를 맞대어 의지하는 형태로 의해
생긴 삼각형 통천문이 보인다. 오른편 바위중간부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의젓하게 서있고
뒤따라 올라온
이 영택회원과 서로 통천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약 5m 거리의 문을 선체 빠져나간다.
입석리 쪽에서 올라왔다는 그 지방 부부등산객이 산성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라간다.
12시10분, 노란바탕에 봉화대라고 쓴 방향표시판이 나타나고 이 진복 회원이 뒤따라
올라와 앞 찔러간다.
12시22분, 칠이 벗겨진 노란바탕의 작은 간판에 ‘봉수대’라고 쓰서 나무에 붙여놓은
곳에 당도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희미한 돌무더기가 보인다.
오른편으로 꺾어져 내림을 탄다.
발아래 진초록 붓꽃이 외롭게 피어있다.
신선봉은 이미 넘어 섰는가 신선대 방향표지판이 나타나고 토종벌 한 마리가 양지에서
맴돈다.
너럭바위 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그 강인함을 자랑하고 있다.
11시 방향으로 건너편 산자락이 잿빛 너덜겅이 길게 흘러내려있고 그 위로 신선대가
자리하고 있다.
잠시 내리막을 걷다 다시 오르막을 타면서 오늘 처음으로 해봉에 참여한다는 안경 낀 40대
초반의 부녀회원이 힘들어 쉬면서 요즈음 흔한 수입 귤을 쪼개며 권해 목을 축이고,
모처럼 동행하는 김 현주회원이 버스 안에서 본 비디오의 배경음악이야기가 나와 그
선곡에 고심한다고 하자 배경음악 CD를 빌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다시 오름을 타는데 위에서 하산하는 남녀등산객과 처음으로 조우하며 인사를 나눈다.
암괴사이의 푸른 나무를 바라보며 올라가다 다시 철 계단을 넘어 내리막을 타고 다시
철 계단을 올라 암괴를 우회하며 자일과 철주에 케이블로 연결한 가드레인을 잡으며
올라서니 왼편은 벼랑이, 12시 방향으로 신선대가 보이고 발아래 양지쪽 낙엽줄기 사이로
살모사 한 마리가 긴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는 걸 장시간 캠코더에 담는다.
13시34분, 정 대장이 식사를 마치고 후미를 기다리며 왼편 암괴위에앉아 기다리고 있다.
선두그룹이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체력이 달리는 회원들은 여기서
악양초등학교 쪽으로 하산한다고 한다.
바쁘게 식사를 하고 정 대장의 후미담당자 이 동희군에게 무전기로 후미 6,7명을 안전하게
악양면사무소 쪽 갈림길에서 하산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13시52분, 정 대장, 이 진복회원과 셋이서 신선대를 향해 출발한다.
또 다른 살모사 한 마리가 캠코더에 잡히는데 이번에는 잽싸게 풀숲으로 달아난다.
14시1분, 소나무에 붙여놓은 ‘신선대’ 방향표시판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
거대한 암벽사이를 휘돌아 올라가는데 신선대, 구름다리 위, 철 계단에 서있는 정 대장을
캠코더에 담고
14시16분, 구름다리 위, 그 철 계단에 올라선다.
구름다리, 현수교와 성제봉을 배경으로 캠코더와 캐논으로 촬영하고 철 계단을 내려
약 20m의 다리를 건너고 철주 가드레인을 지나는데 건너편에서 가족등산객들이 내려온다.
하동군수명의의 ‘안전수칙’판이 걸려있다. 어린이들 안전을 위해 부모님들이 함께 건너라고.
짧은 암능 이지만 다시 철주가드레인이 쳐져있다.
또 다른 철교를 건너 이제 흙을 밟는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탄다.
철쭉이 듬성듬성 보이는 철쭉지대의 ‘성제봉철쭉제단’을 지나
14시56분, 제비꽃이 외롭게 한 송이 피어있는 貞夫人文化柳氏 묘비석을 지나 풍향 깃발
펄럭이는 헬기장을 지나친다.
이제 평탄한 잡목과 풀숲 사이를 한참 걸어가는데 부부회원 중에 부인이 무릎통이 왔다며
정 대장이 상비약으로 준비해온 분무 에야 파스를 뿌려주고 있다.
이제 정상은 바로 머리위에 있다.
암봉 옆을 돌아서 올라가는데 기이하게도 그 암벽에 석비가 박혀있다.
‘聖帝峯配孺人密陽朴氏之墓坐子 處士咸安李公’ 음각해 놓았다. 캠코더로만 촬영하고
휘돌아
15시20분, 4시간37분만에 정상에 올라선다.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건 산행 기점이 해발 10여m도 안되기 때문에 1900m 산 높이를
탄 거와 진배없기 때문이리라.
우선 북쪽으로 높은 구름에 시계가 너무 좋아 멀리 보이는 천왕봉과 일명 형제봉의 또
다른 암봉과 삼신봉, 그 뒤로 반야봉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을 반 시계방향으로
섬진강까지 촬영해 나간다.
‘聖帝峯1115m’라고 음각한 정상석비 모서리에는 건립일자 檀紀4325年4月1日, 다른
면에는 서기일천구백구십이년오월삼일이라고 음각 해놓았다.
뒤따라 올라온 정 대장에게 부탁하여
천왕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정 대장을 세워놓고 촬영하려니까 필름이 바닥이 나버렸다.
15시29분, 시간에 쫓기어 아쉬운 마음으로 오른편 하산 길로 접어든다.
통나무계단을 거쳐 된비알을 타다 너덜 길을 거쳐 물이 말라가는 약수터를 지나
또 다른 너덜을 건너고 시간에 쫓기어 성제굴은 언제 지나쳐버렸는지
잡목 숲과 돌탑을 지나 잡목 숲, 통나무계단 바위사이 길을 거쳐
16시47분, 오늘산행 중에 처음으로 파이프로 흐르는 물을 만나 세수와 목을 축이는
이 영택, 이 종원, 이 진복회원등과 합류하여 나도 목을 축인다.
16시54분, 대나무 숲을 지나고 작은 연못 안에 돌거북이와 석탑이 있는 간이이정표
(형제봉4km 토굴암3km 청학사 수양원)를 지나 콘크리트 포장로를 걷는다.
청학사를 거쳐 산행안내문의 하산지점을 확인하지 않고 마을에서 도로만 생각하고 우측
으로 계속 큰길로만 따라 내려오다 보리밭과 마을 가운데 있는 보기 좋은 반송과 뒤돌아
신선대 구름다리를 촬영,
17시43분, 정동마을 입구 포장도로에 당도함으로서 7시간의 산행이 끝난다.
하지만 버스가 보이지 않아 산행안내문을 하산지점이 ‘노전마을’이란 걸 뒤늦게 알고
가게에 들려 물으니 여기서 약 30분정도 더 올라가야한다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 부탁, 편승하여
17시53분, 버스와 정 대장과 회원들이 막걸리로 뒤풀이 하고 있는 ‘청학사’표지판이
서있는 노전리 입구 광장에 도착, 즐거운 산행담을 나눈다.
18시2분, 부산으로 출발. 옆 좌석의 박 회원이 하산하면서 남자들이 뽑아준 죽순이라며
비닐봉지에 싼걸 보여주면서 큼직한 게 세 개나 들어있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하긴 갖고 가 먹어야지!”
하고는 함께 폭소를 터뜨린다.
18시6분, 악양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이 동희군이 인솔한 집행부 순남이등 B팀 7명이
승차하고 일로 부산을 달린다. 물이 많이 준 섬진강에는 천렵객들이 재첩을 잡는다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열심히 강바닥을 휘젓고 있다.
18시41분, 하동I/C를 빠져 남해고속도로에 오르고 사천휴게소에 들려 잠시 휴식을 취한다.
19시30분, 진성I/C를 나와 국도를 달리면서 붉게 타들어가는 노을과 작별인사로 캠코더에
담고
마산과 창원터널을 통과하면서 캠코더의 테이프도 작별을 고한다.
21시23분, 서부산T/G를 통과한다.
모처럼 장엄한 지리산 주능선과 천왕봉, 삼신봉등을 선명하게 촬영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하루였다.
◈지명유래 문의에 대한 하동군수의 답변(203.5.2. 이종수)
우리군 방문을 환영합니다
귀하게서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안내드립니다
1. 성제봉
성제봉은 형제봉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1,115m의
높이에 화개와 악양사이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봉우리가 2개인 쌍봉으로 형제를 경상도 사투리로 성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2. 악양면
악양의 악은 우리말의 "아가 "즉 작다라는 뜻이며
양은 "따듯하다 "란 의미입니다
한자 뜻을 풀이하면 한다사는 크게 따듯한 곳
소다사는 적게 따뜻한 곳이란 뜻입니다.
" 사" 모래사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신라시대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이두식 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라시대 악양은 한다사군 "소다사현"에
속했던 것인데 서기 757년 경덕왕 때 한다사군이 하
동군으로 개칭 될때 악양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의 악양과 지형이 비슷하여
중국의 악양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3. 평사리
평사리는 고려때 28역 중 하나인 평사역촌이 있던 곳으로 6,000여평의 역사와
중마 1필, 복마 4필등이 있었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화개면 부촌과 악양의
신암.삽암,평사역촌을 합해 평사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4. 소상낙원
중국의 악양에 있는 소강과 상강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 8곳을 선정 소상8경을 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동 악양에도 소상8경을 정하여 소상낙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