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신인문학상 심사평
-강수정, 한성환, 황금비의 시에 대하여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의 위상은 수직 상승했다. 한강의 소설을 사기 위해 오픈 런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요즘. 폭풍처럼 몰아친 ‘한강 신드롬’의 여세를 몰아 이번 애지 신인문학상에 응모한 여러 투고자들의 문학에 대한 열기와 관심 또한 대단했다. K문학의 위상에 손색이 없는 강수정, 한성환, 황금비의 응모작을 2025년 봄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명왕성」 외 4편을 응모해온 강수정의 시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활달한 시세계를 운용하고 있다. 「명왕성-134310」에서는 2006년 퇴출된 플루토를 통해 버려지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풀어낸다. 지옥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불러온 저승의 뱃사공 카론이나 고양이 러시안 블루, 필리핀 보홀의 안경원숭이 같은 대상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문장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시는 버려질지언정 다시 밤하늘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해바라기가 되겠다는 화자의 역설적 희망을 개진한다. 암 치료를 끝내고 돌아온 엄마를 맞던 어린 화자의 기억을 사진으로 풀어내는 「어린이날」이나 작약을 닮은 5월의 그녀가 사라진 후 가시 돋친 선인장이 자라는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그해 5월」은 절절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이 잘 드러난다. 「귀뚜라미」에서는 바흐의 변주곡 골드베르크를 들으며 불면의 밤을 지새던 귀뚜라미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안식의 시간을 염원하고 있다. 연못에 떨어진 목련의 소란이 잘 그려진 「봄, 소란」 또한 청각과 시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감각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다. 강수정이 확장해가는 감각적 이미지와 상상력은 그녀의 세계로 빨려들게 하는 충분한 마력이 있다.
「그 길」 외 4편을 응모해온 한성환의 시는 서정에 흠씬 젖어들게 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더 지배적인 정황을 만들어 독자를 자극시키려는 시의 홍수 속에서 한성환의 시는 지극한 편안함을 선물해준다. 그의 시편들 앞에 서면 함께 편안해져서 두레밥상에 모여 앉고 싶게 한다. 「그 길」에서는 모시 등거리에 이슬 젖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생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낙하하는 은행잎을 온몸으로 느끼는 「가을이 지는 날」과, 물벼 나쑥부쟁이 같은 고향 들꽃마을을 시각이미지로 그려내는 「저만치 가을 가네」에서는 쇠락하는 가을의 정취가 만져진다. 「둥지 속 세상」에서는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남의집살이 하는 제 새끼를 걱정하며 우는 울음과, 남의 새끼에게 먹이를 밀어 넣고 울어 젖히는 개개비의 청각이미지를 감각적인 대비로 끌어낸다. 「맨발」에서는 일상의 수고로움을 짊어진 맨발을 통해 지친 삶을 위로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 시대를 건너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서정의 힘이 돋보이는 시편들이다.
「귀벌레 증후군」 외 4편을 응모해온 황금비의 시는 모던한 현실적 감각을 잘 아우르는 폭넓은 상상력을 보여준다. 「귀벌레 중후군」에서는 화자가 삼복의 열대야를 건너가는 여름 끝자락을 형상화하고 있다. 되풀이되는 귀뚜리 울음과 함께 불면의 열대야를 건너는 귀벌레의 울음이 뫼르소에게 전이된 심리묘사로 전개되어 있다. 「U산부인과」에서는 낙태하는 어린 여자의 상황과 막 긁어낸 흰 핏덩이를 쏟아낸 폭설에 메타포를 걸어둔 탄력적인 시다. 인구절벽을 체감하는 현실을 절묘한 비유로 비틀고 있다. 걸인을 외면하는 지하계단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밀어 올리는 역설적인 비유의 배경으로 장치되어 있다. 겨울 길목에서 떠나보낸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월 하구」, 삼월에 내린 폭설을 그려내는 「삼월 폭설」의 시각적 이미지는 환상성을 심화한다. 렘브란트 그림 속으로 날아간 까마귀나 숲속 공방 장인의 옻질 그리고 처녀귀신이나 길고양이 같은 다채로운 시적 대상들이 그려내는 상상력에 비해, 「구포 장날」에서는 장터에 모인 온갖 살림들의 세태를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비오면 짚신이 절고 볕 나면 우산이 절 듯 한살이를 살아내는 진실한 삶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강수정, 한명환, 황금비 세 시인의 응모작은 서정성이나 상상력을 가미한 환상성 등의 개성으로 제 각각의 시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세 분의 시편들은 다양한 빛깔의 가능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닿을 것이다. 세 분 시인의 애지 신인상 당선에 마음 모아 축하를 전한다. 시인은 고단한 가시밭길을 피 흘리며 걸어가는 행복한 사람이다. 시의 길에서 흘리는 고뇌와 불면과 사유를 즐길 것을 믿는다.
----애지신인문학상 심사위원 일동(글 배옥주)
첫댓글 신인상 수상한 세 분께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