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송수권
이웃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제주에선 고유명사인 순이삼촌을
보통명사로 쓴다
이웃 사촌을 한 촌수 더 당겨서
순이삼촌이라 부른다
순이삼촌은 복수의 언어가 아닌
홀수의 언어
한솥밥을 먹고 자란 가족이란 뜻이다
순이삼촌 어데 가 하면
남자 대답이 들리는 게 아니라
‘곤을동 물 길러간다’라고
올레길 담구멍 물허벅 속에서도
여자의 숨비 소리가 들린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둘둘 빙떡을 말다가도
순이삼촌 홀아방 식개* 언제 먹엉?하고 물으면
빙떡 메밀향이 입안 가득
혀끝을 아린다
* 식개食皆 : 다 같이 모여 먹는 제사떡 또는 그 음식.
----송수권 시집 {흑룡만리}(도서출판 지혜)에서
동아시아의 회전문, 태평양의 관문, 한반도의 귀걸이, 평화의 섬, 자연의 섬, 1만 8천의 신이 사는 섬----.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은 도덕이 없어도 되었고, 법이 없어도 되었다.
너와 나는 다같이 하나가 되었고, 그 모든 일들은 저절로 일어나고 저절로 해결되었다.
순이삼촌, 참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말이다. 삼촌은 특수한 혈통과 인척관계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제주도에서는 그러나 그의 이웃들, 즉,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뜻한다.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인 순이삼촌, 남자만을 지칭하는 언어가 아니라 여자들도 지칭하는 순이삼촌, “한솥밥을 먹고 자란 가족이란 뜻”의 순이삼촌.
송수권의 [순이삼촌]이라는 시를 읽으면 제주 사람들의 더없이 다정다감한 천성과 함께, 그 아름다운 풍습이 생각나고, 그 아름다운 풍습과 어진 천성이 죄가 된 제주 사람들의 불행이 떠오른다.
아름다움의 저주, 그 천형의 형벌, 오늘도 순이 삼촌은 그 천형의 형벌의 삶을 살아간다.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黑龍萬里』는 {새야새야 파랑새야}, {달궁 아리랑}, {빨치산}에 이은 네 번째 장편 대서사시집이며, 일제식민시대를 거쳐서, 남북분단과 좌우 이념투쟁에 희생된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가라고 할 수가 있다. 하루바삐 우리 한국인들의 역사적 상처와 그 아픔을 치유하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노老 시인의 정신이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기념비적인 대서사시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이탈리아의 단테가 있듯이, 우리 한국문학사도 이제는 송수권 시인이라는 대서사시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첫댓글 에휴! 주간님 이상한 지시어들 땜시 감상에 장해 생기는데요ㅠ
시집 [흑룡만리] 밤 늦도록 읽었습니다
요즘 시를 왜 쓰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많았는데
흔들리지 마라 꼭 붙잡아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