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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레위기에는 다섯 가지의 제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입니다. 제사 순서는 단순히 동물을 드리는 의식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 곧 저와 여러분 개개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인 과정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제사라고 할 수 있는 번제를 중심으로 드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① 먼저, 자신이 기르는 짐승들 가운데 흠 없는 것을 골랐습니다. 신체적으로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절거나, 상처는 물론 기형도 없는 상태여야 했습니다. 결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병들지 않아야 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으로 좋은 상태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존재의 근원을 자신 안에 가지십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영원하십니다. 시작도 끝도 없으십니다. 전능하십니다. 모든 능력을 다 가지셨습니다. 모든 일을 전부 다 할 수 있으십니다. 전지하십니다.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아십니다. 무소 부재하십니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십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십니다. 불변하십니다. 본질과 성품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까지도 한결같으십니다. 지으신 만물을 절대 권위로 다스리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는 가장 중심적이고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단순히 죄가 없다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구별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순결하십니다. 모든 생각과 뜻과 행하심은 하나같이 선하십니다. 의로우십니다. 사랑도 거룩하고, 공의도 거룩하고, 자비도 거룩하고, 자비도 거룩하십니다. 어떤 존재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으십니다. 유일하십니다. 그렇기에 거룩하지 않다면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존경과 섬김 곧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흠이나 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십니다.
특히“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9)라는 증거에 따르면, 제물은 궁극적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하여 친히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당연히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완전해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제물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완전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상태여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과 희생과 헌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② 흠 없는 짐승들 가운데서도 수컷을 골랐습니다. 수컷은 성별이라기보다는 가장 온전하고 가치 있는 제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가장 온전하고 가치 있는 존재였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버려서 지극히 무가치한 존재에 불과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려고 할 때 절대로 간과하지 말고 반드시 지켜야 할 너무나 중요한 원칙입니다. ③ 제물은 제사를 드릴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와야 했습니다. 죄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죄인 각자의 자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 회막 문 앞은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번째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만나기 위하여 정해주신 장소였습니다. 친히 임하여 주신 장소였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바로 그 회막 문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희생과 헌신과 공로가 아니라 제물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동시에 예배의 방법도 정하십니다. 예배는 저와 여러분이 아니라 하나님 방법으로 드려야 합니다. ④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온 제물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했습니다. “안수סָמַךְ(사마크)”는 “손에 힘을 주어 얹다, 힘주며 기대다, 의지하다, 힘을 주어 붙들다, 지탱하다.” 등의 뜻입니다. 안수는 단순히 손을 살짝 얹는 정도의 행위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자신과 동일시 하기 위해서 손에 힘을 주어 얹는 행위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이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섰다는 의미로 안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셨습니다. 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과 제물이 하나라는 의미로 안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물이 곧 저와 여러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곧 제물입니다. 사실은 제물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죽어야 마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인 죄에 대한 책임을 제물이 대신 받아주었다는 의미로 안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이 수시로,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짊어져 주셨습니다. 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속죄 방법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약속을 의지하여 안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문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과 희생과 헌신과 봉사와 힘에 부치도록 드리는 헌금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한 분만 유일하게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손을 얹어 안수한 제물을 직접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사장이 제물을 죽인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직접 죽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생명이 죽는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요구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어야 할 존재는 제사를 드리는 자신이지만, 하나님께서 제물을 대신 받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가 영원한 죽음을 부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단단히 새겨두어야 합니다.
⑥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제물을 잡는 동안 흘리는 피는 제사장이 받았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생명만 생명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거룩한 생명을 아낌없이 내놓으셨습니다. ⑦ 제사장은 받은 피를 가져다가 제단 사방에 뿌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인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는 수고와 공로가 아무리 많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제물의 피가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속죄 의식을 집행했습니다. 피는 생명을 대신 내어준 속죄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 피는 궁극적으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흘리실 보배로운 피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짐승이 흘리는 피 곧 저와 여러분이 시도 때도 없이 힘에 지나도록 하는 수고와 희생과 헌신과 봉사와 성경 어디에서도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헌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아낌없이 흘려주신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⑧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가죽을 벗겼습니다. 동시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던 제물의 속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겉모습은 물론 마음과 중심까지도 아십니다. 사람 앞에서는 감출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절대로 숨길 수 없습니다. ⑨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가죽을 벗긴 제물의 각을 떴습니다. 99.9%의 진심이 아니라 0.1%의 전심은 제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 불 가결한 요소입니다. 제물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부분적인 헌신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헌신이 드려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도 남겨 놓지 말아야 합니다. 숨겨놓지도 말아야 합니다. 전부를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⑩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었습니다. 내장은 마음과 생각을 가리킵니다. 다리는 삶의 행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겉은 물론 속까지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겉은 물론 속까지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⑪ 제사장은 준비된 제물을 제단 위에 각을 뜬 고기와 머리와 기름 순서로 벌여 놓았습니다.
드디어 제물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손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졌습니다. 예배는 저와 여러분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는, 마음을 투영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수 있도록 온전히 맡겨지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이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⑫ 제사장은 제단 위에 질서정연하게 배열해 놓은 제물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불에 태웠습니다.
전적인 헌신입니다. 제물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조금도 남겨 놓지 않고 다 드렸습니다. 완전한 소멸입니다. 형체가 남지 않도록 완전히 태워졌습니다. 제사를 드린 사람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소속의 대전환입니다. 더 이상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완벽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지워져야 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져주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드려진 제사를 일컬어 “향기로운 냄새”(레1:9b)라고 표현합니다. “안식 또는 만족을 주는 냄새, 기쁘게 받아주시는 냄새” 등으로도 의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안식을 누리실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상태가 되셨습니다. 산산조각 나 있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완벽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라고 외쳤습니다.
예배는 예식이 아니라 몸 전체를 쉬지 않고 제물로 드리는 삶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라.”(고전10:31)라고 외쳤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예배가 되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무엇을 하든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골3:17)라고 외쳤습니다. 행위 전체를 하나님께 예배로 드리라고 외쳤습니다. 예배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예배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찬양과 기도와 설교와 헌금 등으로 채워진 시간만은 아닙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이어지는 일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현재 허락해 주신 모든 관계입니다. 수시로 하는 선택입니다.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고 또 힘과 용기까지 북돋워 줄 수 있지만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행동입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세끼 챙겨 먹는 식사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정말 많지만 참고 견디며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존재 방식입니다. 주일은 물론 하나님께서 호흡을 허락해 주시는 모든 순간이 예배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교회 안에서 끝낼 수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훨씬 많은 시간 아니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교회 밖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부모, 자녀, 형제, 이웃 등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칭찬하거나 깎아내리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심리적인 상태를 일컬어 자아 비대라고 합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하게 자부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삶이 곧 예배, 예배가 곧 삶이 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자신의 전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예배로 드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삶,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끙끙 앓아오셨던 하나님께서 안식을 누리실 수 있는 복된 삶, 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복된 삶 곧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복된 삶은 물론 마치 든든한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는 평안과 함께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고 필요까지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은혜까지 누리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