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落葉)이 진다.
심완 박전상환
1.
얽키고 설킨 인생
거미줄에
걸린 이슬
그 것이 곧 나의 삶
그 것이 곧 너의 삶
외롭다
말하지 말라
그 것조차 사치(奢侈.)다
2.
꽃 피고
잎이 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만나고(逢) 헤어지는(別離)
인연(因緣)이란 거미줄 위
거짓이 하나도 없는
* 체로금풍(體露金風)
나목(裸木)들
3.
아서라 이별 앞에
흘린 눈물(情恨淚) 얼마던가
세상사 온 몸(身)으로
꽃 피우고 잎 지우며
만남(相逢)에 감격의 눈물(淚)
더욱 많고 많더라.
4.
소슬한
가을바람
만산홍엽(滿山紅葉) 물들이고
이별은 본래 자신(本來自身)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난다
화려(華麗)한 꽃과 잎 취(醉)해
꿈을 꾸듯
살았네
5.
스스로 자기 자신
돌아 보고
회개(悔改)하라
준엄(峻嚴)한 충고(조언)이며
깨우침의 말씀(覺惺經句)이다
얼키고(tangled)
설킨 인생에
이슬 방울 또르르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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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로금풍(體露金風)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우리의
지혜(智慧, 슬기)롭고
현명하신 선조(先祖)들께서
남겨주신
옛 말(古語) 중에서
"
체로금풍(體露金風)
"
이라고 하는
말(문구, 경구)이 있다.
"
체로금풍(體露金風)
"
이 말은
《벽암록》제27칙에
나오는 말(문구, 경구)로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 스님(學僧, 비구승)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떠합니까 ?
”
그러자 운문선사가 대답했다.
“
체로금풍(體露金風
가을 바람에 나무의 본체(本)가
완연히 드러나지.) !
"
여기서《체로(體露)》는
《본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라는 뜻이고
《금풍(金風)》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뜻한다.
나무는
봄이 되면 연두색 잎(葉)으로
겨우내 텅빈 알몸을 장식하다가
여름이면
짙은 녹음(綠蔭)으로
뭇 새(鳥)를 불러들이고
가을이면
이 모든 것(一切萬物)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
겨울 한 철
산문(山門)을 닫고
제 안(內面)으로 채찍질하여
부처님을 닮아가다가
다시 봄이 되면 빗장쇠를 푼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어린 욕망의 싹을 내고
여름이면
짙은 욕망의 무게에
허덕(번뇌)이다
가을이면
이 모든 욕망의 무게를
일체 모두 다 내려놓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참회(懺悔)와
수행(修行, 精進)) 속에
나이테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이러한
일련의 순환과정에서
금풍(金風)의 역할(役活)은
대단하다.
금풍(金風)이
불어오지 않으면
어찌 숲(林)의 적나라한 본체를
볼 수 있으며
어찌 만남과 이별 속의
인간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으랴.
차가운
체로금풍(體露金風)이 불어와
별리(別離)의 순간이 와야
비로소
잎(가지 枝葉)과 열매(果)가
본체(不變體)가 아님을 알고
온갖 욕망(오욕칠정)과
시기 질투, 불신(不信) 등이
부질없는 허상(虛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內面)에서
스스로 금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라도
본래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력(餘力)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금풍(金風)은
선사(禪師)의 시퍼런 눈매요,
고승대덕의 주장자(柱杖子)이며
화두(話頭)이고
팔만대장경이요
참회진언일 것이며
고결한 지조요
본래
자성 청정심의 빛이며 찬란하고
눈부신 광명(光明)일 것이요
살아있는 양심의 소리인 것이다.
가을은《체로금풍》의
계절(季節, 節期)이다.
눈 앞에 보이는
잎을 보고 열매를 꿈꾸되
언젠가
사라질 존재(消滅存在)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눈(眼目)
즉,
유(有)와 무(無)를
동시(同時)에 볼(觀) 수 있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혜안(慧眼)의 눈을 갖추기에
좋은 계절이다.
깊어가는 가을 !
여태도
무겁게 걸쳐온 위선(僞善)과
가식(假飾)의 옷가지(껍질)를
가을 바람에
모두 다 날려버리고
가벼운 나목(裸木)이 되어
자신의 내면(內面)의 소리에
귀(精神)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보자.
2019. 10月 마지막날
서필(書筆)하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경상북도 포항 구룡포
별빛총총한
깊고 깊은 산골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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