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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목사(동래 중앙 교회)
경쟁이라고 하는 광장에는 구름 위로 솟아있는 두 개의 사다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이라는 사다리이고, 또 하나는 실패라는 사다리입니다. 실패의 사다리는 사람들이 그다지 찾지 않기 때문에 늘 한산하기만 합니다.
그
러나 성공의 사다리에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힘께나 쓴다는 사람들이, 재산께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면서 매달려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을 원하고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그래서 이 성공이라는 사다리에 매어 달린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하나라도 더 가지고 한자리라도 더 높아지기 위해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가기 위해서 전력 질주합니다. 거기에는 온갖 권모술수와 야비한 수단방법들이 동원됩니다.
이웃은 없고 적들만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 시대 경쟁의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인간군상들의 모습입니다.
성공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지만 실패에는 언제나 눈물과 비애가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에는 성공함으로 기뻐하는 사람들보다는 실패함으로 목놓아 우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실패라고 하는 것은 실로 서글픈 일입니다. 쓰디쓴 인생의 고배를 마시는 일입니다. 우리 중에도 입시에 실패했다고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 때문에 낙망하고 있는 분도 혹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질병으로 인해 좌절한 채 주님 앞에 나와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나날이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구나 그러한 삶을 원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가지는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의 영예 건너편에는 실패의 은혜도 반드시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실패가 정작 내 현실로 다가왔을 때에 그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참 성공자입니까?
성공했다고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성공에는 참된 성공과 거짓된 성공이 있고, 실패에도 참 실패와 거짓 실패가 있습니다.
가 과연 참 성공자입니까? 그것은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성공자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자신을 반성할 줄 알고 왜 실패했는가하는 그것을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또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삶을 성실하게 준비해 가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크게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인생의 위대한 진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말씀 13절,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겠고 그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위대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실패로 인해 절망하지 아니하고 실패를 통해 오히려 인생의 길을 발견하고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진정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 성공의 길로 향해 나갈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안지추라고 하는 유명한 학자가 <안씨패훈(安氏敗勳)>이라고 하는 책을 지었습니다. 그 책은 '패배를 통해서 어떻게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을 후손에게 주었는데 후손 중에서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 가운데서 끝까지 지켜야 되는 그러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이 안선생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경쟁에는 실패라고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너희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어떤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해라. 성(省), 상(像), 약(躍) 하라."
성(省)이라고 하는 것은 실패를 통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걸어 왔기에 이런 실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다시 한번 자신을 살펴보면서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그 실패한 것을 보충하라고 하는 그런 말입니다. 상(像)이라는 말은 실패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좌절하기 쉽고 절망하기 쉬운데 마음을 굳세게 해서 그 상을 바라보고 실패를 이겨나가라고 하는 그러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躍)이라고 하는 말은 실패에는 반동의 힘이 있다, 실패는 인생을 힘차게 뒤에서 밀어주는 그러한 추진력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실패를 통해서 낙심하지 말고 그 밀어주는 추진력을 힘입어서 앞으로 약진해 나가라고 하는 의미의 말입니다. 성, 상, 약 하라! 참 의미 있는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때 가능합니다. 그 사람은 일곱번 넘어 지더라도 다시금 일어나는 놀라운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게 하시는 이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일어나게 하시기 때문에 의인을 건드릴 자가 없다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 시간 실패했다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병에 걸려있다고 절망하고 있습니까?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실패의 고통 너머에는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나이다."(67절)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이로써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게 되고 실패를 통해서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욱 뜨겁게 나누게 되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실패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성공의 토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 실패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이렇게 열심히 해서 성공했노라고 자기 경험을 의지하고 자만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됐으니까, 만사가 계획을 세운대로 성취되니까, 자기가 뜻한대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 나가니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공에 도취되어 진정한 성공의 삶에서는 오히려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고 더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됨으로 예전에는 누리지 못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되니 이는 실로 얼마나 귀한 은혜의 기회입니까?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런 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실패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으십시오. 왜 실패했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실패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허물과, 나쁜 습관들을 과감히 고쳐 나가십시오.
믿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실패했을 때에 낙심하기 쉽습니다. 실패가 무서운 해악을 끼치는 것은 그 실패 자체가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서 인생 전체를 비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운명을 저주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며 하나님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든게 끝났다고 여기며 돌이킬 수 없는 후회스런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한번의 실패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의 인생 전체를 실패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실패했다고 하여 목숨까지도 끊는 사람들은 또한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더라도"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이라고 하는 숫자는 완전한 수입니다. 일곱 번 넘어졌다는 것은 실로 회생할 수 없는 완전한 패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전히 넘어졌다 할지라도,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저 사람은 도저히 회생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의인은 그 실패를 딛고 다시금 전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절망하거나 자기의 실패를 비관해서 자기를 학대하며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이 실패를 사용하여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하는 특별한 계획과 섭리가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정 주영씨가 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책에서 아주 감명 깊은 대목을 하나 읽었습니다. 그것은 일명 빈대철학이라고 하여, 정 주영씨가 빈대를 통해서 자신의 경영 철학을 배웠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고 합니다. 그는 그 당시에 기댈만한 변변한 집도 없어서 거의 매일 밤 노동자 합숙소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그 노동자 합숙소에 들끓고 있는 빈대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대와의 전쟁이 매일 밤 계속되었는데 하루는 꾀를 내어서 자기 침상에다가 다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침상다리를 만들어 세우면 좀 덜 기어올라오겠지. 그런데 왠걸요 그 침상다리를 타고서는 일렬로 계속해서 빈대가 올라오면서 자기의 잠자리를 괴롭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 다음에는 침상다리마다 깡통을 하나 묶어서 거기다가 양잿물을 부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빈대들이 올라오다가 침상다리로 올라오지 못하고 그 깡통에 빠지면서 그 양잿물에 다 빠져 죽더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잿물을 보니까 빈대가 수북히 깡통에 담겨져 죽은 것을 보고서는 내 머리가 제법 쓸 만 하구나, 이제부터는 잠을 좀 편히 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왠걸 며칠이 지나니 또 빈대가 자기에게 붙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잠자리를 괴롭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올라오려면 양잿물을 통과해야 되는데 어떻게 이 빈대가 올라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하루는 잠을 자지 않고서 이 빈대들이 어떻게 하는가 그 행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한 밤중이 되니까 천장에서 빈대가 자기 몸으로 툭툭 떨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이 빈대들이 다리로는 올라오지 못하니까 벽을 타고는 천장으로 기어올라가서 자기 몸 있는 곳으로 낙하를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정 주영씨는 거기에서 큰 깨달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미물(微物)도 살기 위해서는 온갖 실패를 무릅쓰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조그마한 시련에 넘어져서야 되겠느냐. 내가 성공하려면 끝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서 후일 그의 사업이 어려울 때마다 빈대의 끈질긴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시 노력함으로 오늘의 현대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저는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발견되는 공통된 한가지 특징이 있어요. 뭐냐하면 끈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러서지 아니하는 놀라운 추진력이 그들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주실까요? 어떤 고난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세우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과 실패 가운데에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의인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든지, 실패했을 때든지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의한 성공자보다는 차라리 의로운 실패자가 되십시오
성공했을 때는 남이 실패하는 것을 비웃지 마세요. 저런 것도 못하는가 비웃지 마세요. 실패했을 때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잘되는가 형통함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마세요.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 이렇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 질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무슨 말이냐 하면 원수가 넘어질 때에, 실패할 때에 마음으로 고소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남이 못되면 그것처럼 고소한게 없어요. 이상하게 남이 안됐다 하면 그것처럼 깨소금 맛이 없어요. 얼마나 고소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요. 범하기 쉬운 죄악이 있습니다. 형통함을 부러워하고 악인의 기세 등등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불의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성공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의로운 실패자가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의로운 실패자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나 불의한 성공자는 일순간 등불처럼 꺼져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20절) 악인의 패망이라고 하는 것은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그러한 때가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누구입니까?
지금 일류대학 입시에 성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직도 많은 일생의 경쟁이 남아 있습니다. 최후의 성공자는 하나님께서 이 만물을 심판하실 때에 '의인이다!'라고 칭해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인정해 주시면서 여러분의 손을 높이 치켜올려 주시는 이러한 승리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의인이 일곱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수 있는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의 성공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세력이 그를 일곱번씩이나 계속해서 넘어뜨려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힘을 주셔서 일으켜 세워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롭게 힘을 공급받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을 실패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줄 압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삶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게 아닙니다. 부모에게 있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경험이나 지식에 달려 있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애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위대한 인생으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했다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절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추악한 성공자로 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처럼 의인으로서 십자가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러한 의로운 실패자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만일 불의와 야합했었더라면 이 세상에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다 누리실 수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몸으로 이 세상의 불의와 죄에 대해서 거부하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의인을 가만 놔두셨습니까? 장사지낸바 된 그 몸을 부활시키셔서 영광의 삶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 속에서 좌절하여 불의한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불의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삶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최후의 승리를 맛보게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다시금 믿음으로 힘있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노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날마다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작은 인생의 고통 앞에서 쉽게 넘어지고 좌절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날마다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저희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시며
고통의 시간들이 오히려 연단과 감격의 시간들로 승화되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참 의인의 신앙을 가지고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