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10강 (최종 피날레)] 아포블레포(Ἀφοράω)와 아살레우토스(Ἀσάλευτος): 최종 피날레, 믿음의 주를 고착하는 시선과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영원한 상속
(본문: 히브리서 12장 1절 - 13장 25절)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13장 전체를 관통하는 최종 결론부는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사명자들이 장착해야 할 시선 고착의 법칙과, 창조주께서 가동하실 우주적 진동 한가운데서 성도가 상속받은 영원한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선포하는 기독교 성화론의 최고봉이자 최종 칙령 헌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구름같이 둘러싼 경원 경기장의 한가운데로 청중들을 초청합니다. 저자는 징계를 통해 아들의 품격을 빚어내시는 아버지를 변증하고, 불붙는 시내산의 공포를 깨부수며 천상의 시온산 지성소 보좌로 입성한 자들에게 영문 밖의 십자가 치욕을 짊어지라고 최고의 지성적 필치로 주해합니다.
1. 아포블레포(Ἀφοράω)와 아나로기조마이(Ἀναλογίζομαι): 모든 시선을 찢어버리고 한 과녁에만 고착시키는 영적 물리학
사도는 12장의 문을 열며,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과감히 유기하고 영원한 경주(아곤)를 감행해야 할 군사적 시선 법칙을 명령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아포블레포)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아나로기조마이)" (히 12:1-3)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아포론테스, ἀφορῶντες)...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아나로기사σθε, ἀναλογίσασθε)!"
원어 '아포블레포(아포라오: 바라보자)'는 기독교 성화론의 유일한 시선 물리학입니다. 이 단어는 '주변의 다른 모든 잡념과 방해 요소들로부터 시선을 가차 없이 찢어 발겨 분리해 내고, 오직 단 하나의 표적과 과녁에만 시선을 완벽하게 고착시켜 독점적으로 주시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신자는 땅의 환경과 박해의 공포에 한눈을 팔지 않고, 믿음을 시작하시고 마침내 완성하시는(텔레이오테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시선을 고정해야(아포블레포) 합니다.
사도는 낙심을 돌파할 전술로 '아나로기조마이(생각하라)'를 투하합니다. 이 단어는 수학적이고 회계학적인 정밀한 용어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십자가 고난의 수치와 무게를 나의 고난 장부 위에 올려놓고 낱낱이 대조하여 정밀하게 계산해 내는 분석 행위'를 의미합니다. 존 피퍼(John Piper)의 통찰처럼, 예수의 고난을 정밀 계산(아나로기조마이)해 낸 자는 지상의 안락을 배설물로 여기며 피 흘리기까지 죄와 대항하는 야성을 회복합니다. 땅의 정황 때문에 피곤하여 낙심하는 종교적 유약함을 도끼로 치고, 오직 과녁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경주자의 기상만을 포효합니다.
2. 파이데이야(Παιδεία)와 아살레우토스(Ἀσάλευτος): 우주적 진동을 깨부수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영원한 상속
사도는 창조주께서 아들들을 대하시는 사랑의 징계(파이데이야) 유익을 논증한 뒤, 마침내 온 우주 공간을 뒤흔드실 종말론적 대심판과 교회의 안전지대를 대변증합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아살레우토스)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히 12:26-28)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아살레우톤, ἀσάλευτον) 나라를 받았은즉!"
원어 '파이데이야(징계)'는 군주가 왕세자를 군사 훈련시키듯 다스리는 신적 양육입니다. 하나님은 이 파이데이야를 통과한 백성들에게 물질세계의 종말을 선언하십니다. 창조주께서 진동(세이오)하실 때, 인간이 쌓아 올린 지상의 모든 물질문명과 권력, 가치관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완벽하게 변동(메타데시스: 해체되어 붕괴됨)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상속받은 영토는 '아살레우토스(흔들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원어 '아살레우토스'는 '그 어떤 우주적 대격변과 진동의 폭풍이 몰아쳐도 단 1밀리미터도 요동하거나 균열이 가지 않는 신적 견고함'을 뜻합니다. 신자는 불타 없어질 땅의 도성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인 천상의 시온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지성소 법정에 이미 입성한 자들입니다. R. C. 스프롤(R. C. Sproul)의 명쾌한 논증처럼, 세상의 흔들릴 물질문명에 목숨을 걸고 평안의 단잠을 자는 세속주의의 정수리를 말씀의 도끼로 사정없이 처단하고, 오직 아살레우토스(진동치 않는)한 나라를 거머쥔 자들의 천상적 품위만을 명확하게 찔러 넣습니다.
3. 에파게리아(Ἐπαγγελία)와 호 아우토스(Ὁ Αὐτός): 변하지 않는 대군주의 신실함과 영원무궁한 제단
사도는 13장으로 진입하며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 그리고 결혼의 정결함과 돈을 사랑치 않는 자족의 실제적 성화 윤리를 선포하며, 교회의 영원한 푯대를 확정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호 아우토스)" (히 13:5, 7-8)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호 아우토스, ὁ αὐτός)!"
사명자의 경제학은 돈에 대한 맹렬한 사랑(필라르귀리야)을 배격하는 자족(아우타르케이야)입니다. 이 자족의 법정적 담보는 창조주의 신실한 '에파게리아(약속)'입니다. 주님은 강한 이중 부정(우 메 세 안노, 우드 우 메 세 엥카탈리포)을 사용하여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고 결코 너희를 무단 유기하지 않겠다" 서약하셨습니다. 세상의 재정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의 담보물은 안전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강단의 푯대가 방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호 아우토스)!" 원어 '호 아우토스'는 '그분 바로 그 자신'이라는 뜻으로, 역사의 사조와 종교적 유행이 아무리 변형될지라도 성자의 신격과 구속의 완전성은 단 1밀리미터의 변개도 없이 영원히 불변함을 뜻하는 천상적 인장입니다. 가레스 코커릴(Gareth Cockerill)의 주해처럼, 강단은 시대의 유행과 청중의 입맛에 따라 복음을 변격시키는 장사 수단의 마케팅 장소가 아닙니다. 오직 영원무궁토록 동일하신(호 아우토스) 그리스도의 통치권만을 선포해야 함을 엄위하게 찔러 넣습니다.
4. 엑소 테스 파렘볼레스(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와 카리스(Χάρις):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진격하는 사도적 피날레
바울은 제10강의 장엄한 대미를 장식하며, 지상의 가짜 성전 체제를 완전히 이탈하여 십자가의 치욕 한가운데로 돌격하라는 사명자들의 최종 행동 칙령을 선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엑소 테스 파렘볼레스) 그에게 나아가자...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카리스)" (히 13:10-12, 13, 25)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엑소 테스 파렘볼레스,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전체 주해의 최종 클라이맥스이자 사자후가 방포됩니다. 구약의 대속죄일 제물은 지성소에 피를 바친 후 그 육체를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 완전히 불살랐습니다. 이 모형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예루살렘 영문 밖(엑소 테스 파렘볼레스) 골고다의 거친 형틀 위에서 자기 피(디아 투 이디우 하이마토스)를 쏟아내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청중들에게 최종 군사 명령을 하달합니다: "우리도 그의 치욕(오네이디스모스)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엑소 테스 파렘볼레스)' 그에게 나아가자!" 기독교는 안락한 성전 종교의 기득권 내부에서 안주하는 종교가 결코 아닙니다. 세상이 멸시하고 거부하는 영문 밖 십자가의 최전선(엑소 테스 파렘볼레스)으로 당당하게 진격해 들어가, 날마다 찬송의 제사(디시안 아이네세오스)를 올리는 참된 군사들의 행동입니다. 온갖 기복주의와 번영 신학의 안락함에 도취한 현대 강단의 가식을 말씀의 도끼로 사정없이 쳐부수고, 오직 "은혜(카리스)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영원한 주권령의 도장을 찍어 누르며, 신약 신학의 난공불락 히브리서 대장정을 장엄하고도 영광스럽게 완결해 냅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