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관심끄는 인생
(레위기 26:1-2)
관심(關心, interest, attention)이란, 정말 고마워서 마음이 자꾸 끌려 못 잊어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만 한 어떤 행위(action)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하고 간증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지혜(智慧)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보십시오. 유대인들 앞에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자들아! 선지자들이 전한 율법을 지킨 게 있느냐? 하나님께서 파송한 선지자들을 핍박하지 않은 선지자가 있었더냐?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보낸 외 아들 예수님의 손발에 대못을 박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죽였단 말이냐?”라고 유대인들의 죄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이를 갈더니,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쳐 돌로 쳤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눈을 감자, 하나님 보좌(寶座)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보좌에서 일어나 스데반 집사에게 관심을 쏟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아무개 장로, 권사, 집사 댁에 그렇게 어려운 문제, 사건 사고를 만났느냐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내 자녀에게, 내 사업장에 관심을 쏟아 주시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데반 집사는 순교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다면, 은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믿는 자만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받는 자만 알 수 있습니다. 은사(恩賜)는 체험한 자만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 최 집사님이 기도하다가 기도 줄에 붙잡혀, 입신(入神, ecstasy)하여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천사가 “최 집사님! 하늘나라에 참 잘 오셨습니다. 올해는 최 집사님이 예수님을 믿은 지 7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7년 동안에 주일예배를 아홉 번 빠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최 집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지금까지 예수님 믿은 지가 몇 년이 됐는지, 주일예배에 몇 번이나 빠졌는지,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하늘나라 와서 보니 천사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묻습니다. 나는 올해 믿은 지 몇 년째 되는 해입니까? 그동안 주일예배는 몇 번이나 빠졌습니까?
그런데 하늘나라 대성전에서는, 먼저 간 성도들, 하늘나라 천군 천사들이 주님 곁에서 주님과 함께 즐겁게 찬양을 부르고 행복해하는데, 대성전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 집사님은 천사에게 “왜 저렇게 하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땅 위에서 살 동안, 너무 예배 생활을 게을리하고 주님을 소홀히 여기다가, 막상 하늘나라에 올라와서 하늘나라에 계신 주님과 마주하고 보니, 하늘나라에 계신 주님이 너무 훌륭하고 위대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럽고 위대한 주님을 내가 왜 그렇게 소홀히 여겼을까? 스스로 주님 곁으로 못 가고 대성전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입신에서 깨어난 최 집사님이 다시는 주일예배에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예배란?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 제일 많이 듣는 단어 중의 하나가 예배입니다. 도대체 예배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만나는 일
예배(禮拜)를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 뜻 가운데 ‘만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러 나온다는 의식이 강해야 합니다. “주님! 지난 한 주간, 너무 힘들었습니다. 형편없이 살았습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주님 만나러 왔습니다.”하고 나오는 것이 주일예배입니다. 실수하고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지은 죄를 용서받고, 상처는 싸매 지며, 기도는 응답받고, 세상을 이길 능력과 새 힘을 얻으며, 하나님의 명령, 지시, 계시를 받습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사는 기독교인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부터 만나 뵙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저녁이면 단잠 자고 새벽이면 벌떡 일어나 새벽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고 일과를 시작하고, 가게 장소를 마련해 놓고 개업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고 가게 문을 열고, 결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고 두 사람이 일생의 첫 발걸음을 믿음으로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싸우고 다투며 분쟁한 곳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몇 명이 모이든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일 날 하나님을 만나 뵈러 나올 때는,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약속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리겠다는 말은, 주일 오전 11시에 하나님을 만나러 오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나와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그러하기에 주일 오전 11시 예배 시간은, 서울특별시장을 만나는 것보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약속 시간을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러 나올 때는, 용모 복장도 단정해야 합니다.
2.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워지고 친밀하면 좋겠습니까? 예배 시간이면 교인들이 교회 나와서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뒷자리만 찾는 교인, 양쪽 기둥에 기대고 앉은 교인, 의자 한쪽 가에 버티고 앉아서 의자 안쪽으로 들어가기 힘들게 앉아 있는 교인, 1층이 비었는데도 2층으로 올라가는 교인도 있습니다. 습관입니다. 기왕이면 앞자리부터, 의자 한가운데 자리부터, 비어있는 자리, 극 노인 옆자리, 새로 나오신 교인 옆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교회 나와서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두 손을 모으고 “주여!”하고 주님을 부릅니다. 그 주여! 한마디 속에 지난 한 주간, 내 근심, 걱정, 고민, 상처, 문제, 실수, 비밀, 죄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주간 동안 큰 손해를 봤습니다. 너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주여!”라고 부르는 소리가 더 간절합니다. 그때 주님이 얼른 달려오셔서 “알았다!”라고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까지 주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알았다!”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 속에는 “지난 한 주간 설령 실수하고 죄를 지었어도 괜찮다. 내가 네 죄를 사하였느니라. 지난 한 주간 설령 손해 좀 봐도 괜찮다. 실패했어도 괜찮아. 내가 너를 붙들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느니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독일의 독재자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600만 대학살의 주모자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 때입니다. 한 독일군 고급 장교 부인이 출산하기 위하여 산부인과 병실을 찾았습니다. 병실을 배정받아 자리에 눕고 보니, 병실 벽에 예수님이 어린양 한 마리를 가슴에 안고 양들이 뒤따르고 있는 성화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 독일 장교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간호사를 찾았습니다. “간호사! 내가 며칠 후면 아이를 출산할 텐데, 무슨 저따위 그림을 병실 벽에 붙여 놨느냐? 우리 아이가 저런 그림을 보지 않도록 치워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간호사는 “죄송하지만, 제힘으로는 저 성화를 뗄 수 없습니다. 저 성화를 떼 내고 붙이는 것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간호 부장을 불렀습니다. “간호 부장, 며칠 후면 태어날 우리 아이가 저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지 않도록 당장 떼어라.”라고 재차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그 간호 부장은 “저 역시 저 성화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독일 장교 부인은 “너희들이 저 성화를 떼어내지 않는다면 내 남편의 힘을 빌려 내가 떼 내겠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성화를 떼 내어 병실 바닥에 내동댕이쳐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이 무슨 경박한 짓입니까? 그리고 며칠 후에 그 부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갓 태어난 아이가 눈을 뜨기는 떴는데,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고 초점이 모여지지 않는, 시력이 전혀 나오지 않는 맹인(盲人)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 부모님을 볼 수 없었고, 성화 안에 계신 예수님이 지으신 이 아름다운 천지 만물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부인의 말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노릇입니까? 가끔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요,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은 하나님께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충청북도 괴산에서 태어나 자유당 시절에 서울특별시장, 국방부 장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지낸 이기붕(李起鵬, 1897~1960) 씨의 숨은 비화입니다. 부인 박마리아(朴瑪利亞) 여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 대통령 가정에 양자로 보내고 세도가 높아지자 예배 생활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신실한 박마리아 여사의 친정어머니는,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딸네 집에 심방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딸 박 마리아가 하는 말 “어머니! 저 목사님 모시고 다시는 우리 집에 심방 오지 마세요. 저 목사님 입은 옷이 미국에서 한국 거지들에게 거저 입으라고 보내준 구호물자(救護物資) 양복입니다. 구두는 찢어진 구두를 꿰매서 신고 왔습니다. 현재 우리 집에는 국제적인 인물들이 드나드는데, 저런 목사가 우리 집 출입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창피합니다.”
깜짝 놀란 친정어머니가 “얘야! 너는 언제부터 하나님이 기름 부어 쓰신 종을 국제적인 인물에 비교했느냐? 목사님이 구호물자 양복 입고 왔으면 너 돈 있으니까 목사님 양복 한 벌 맞춰 드리고, 구두 꿰맨 것 신고 왔으면 구두 한 켤레 맞춰 드려라. 주님의 종을 대접하고 복 받지 못한 사람을 봤느냐? 네가 껍데기 복을 받으려다가 참 복을 차는구나. 주의 종의 기도와 발길이 끊어지면 네 집이 망하는 거야.” 딸 박 마리아가 되받아쳐서 하는 말 “어머니, 망해도 내가 망합니다. 다시는 저 목사님 모시고 우리 집에 심방 오지 마세요”
결국, 심방 가서 예배 못 드리고 되돌아 왔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이기붕 씨를 억지로 부통령에 올리려다가 1960년 3.15 부정 선거가 일어났고 이를 규탄한 학생 의거(義擧)가 곳곳에서 일어나자, 당시 육군 소위였던 장남 이강석이 권총을 들고 들어와 아버지 이기붕을 쏘아 죽였고, 어머니 박 마리아를 쏘아 죽였으며, 이강석 자신도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1960년 4월 28일 새벽 5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3. 인간의 최고 행위
죄인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헌금을 받으시고, 주의 종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두 손을 들어 축도할 때 복을 받는 일에 참여하여 예배드리는 시간은, 내가 하루 24시간을 사는 동안에, 가장 경건한 시간, 정결한 시간, 거룩한 시간, 가장 의로운 시간이요, 내 인생 최고의 행위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식모를 두고 살면서도, 주일을 소홀히 여기는 주인보다는, 비록 그 집에서 식모살이하면서도 주일 지키는데 목숨 건 식모 아주머니가 교회 안에서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가 되어서도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박사보다는, 비록 초등학교 문턱을 넘어가 본 일이 없을지라도, 주일예배에 목숨 건 할머니가 교회 안에서는 훨씬 더 존경의 대상입니다.
영국의 웰링턴(Wellington, 1769~1852) 제독(提督)이 프랑스의 보니파트 나폴레옹 군대를 1815년 워털루(Wsterloo) 전투에서 승리로 이끌고 개선장군(凱旋將軍)으로 돌아올 때, 영국의 황실에서 특사를 보냈습니다. 그때 웰링턴 제독은 “내가 이번 전투에서 너무 많은 적군을 죽이고 피를 많이 흘려 죄를 많이 지었으니, 황실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참회부터 하겠습니다.”하고 하나님의 성전부터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니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안내가 웰링턴 제독을 알아보고 한 교인을 일으켜 세우고 제독을 앉히려 했더니 제독이 뒤따라와서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하나님은 당신 영혼이나 내 영혼이나 똑같게 보십니다.”하고 그대로 서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특사를 따라 영국의 황실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영국의 젊은이들에게 너는 영국의 역대 인물 가운데 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 ~1965) 총리와 웰링턴 제독을 존경한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너무 큰 공을 세웠으니, 여기 국가정보원장(국정원장)을 따라 빨리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것이 뭐가 그리 급합니까? 내가 이번에 너무 많은 실수를 하고 죄를 많이 지어서, 내가 섬기는 교회에 가서 회개부터 하고 그 다음에 대통령실로 들어가겠습니다.”하고 대통령실로 들어가는 것을 뒤로 미루고, 교회부터 찾아와 회개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내 인격과 신앙을 경건하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의롭게 만드는 내 인생 최고의 행위입니다.
4. 구원받은 성도의 영광스러운 의무
헌법(憲法)에 규정된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방(國防), 근로(勤勞), 교육(敎育), 납세(納稅)의 의무입니다. 6대 의무는 4대 의무에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財産權) 행사, 환경보전(環境保全)의 의무입니다. 헌법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기본 방침이요, 대한민국 최고의 법입니다.
국방의 의무, 헌법 제39조 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납세의 의무,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교육의 의무, 헌법 제31조 2항.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근로의 의무, 헌법 제32조 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의 의무, 헌법 제23조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환경보전의 의무, 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십자가 대속(代贖)의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의무 중의 의무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의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의무를 짐승에게도,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고 구원받은 여러분과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주일예배, 주일 찬양예배,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구역예배, 전도 세미나, 부흥회를 통해서, 세상과는 좀 멀어져도 교회와 가까워지고, 세상과는 좀 멀어져도 주님과 말씀, 천국과 바짝 가깝게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둘째. 예배의 대상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나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입니다. 오래된 고목 나무도, 잘 깎아 세운 돌부처도, 훌륭한 부모님도, 총명한 자식도 다 나의 예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 데서나 합장(合掌)하고 시주(施主)하는 것 아닙니다. 나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셋째. 예배의 날
언제 예배드려야 합니까? 주일 날, 성일(聖日) 날 예배드려야 합니다. 일요일이라고 하지 말고 주일이라고 하십시오. 주일은 주님이 주인 되시는 날, 주님이 부활하신 날,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날입니다. 새달이 돌아오거든 주일부터 기억해두고, 그 주일이 돌아올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은 확실히 엿새 동안 세상에서 받지 못한 은혜와 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대한민국을 순방하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대통령이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Plains) 출신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제39대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현 99세) 대통령입니다. 그 바쁜 순방 일정 가운데 주일 날이 돌아오자 1979년 7월 1일 여의도침례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린 대통령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세계적인 대통령 모습입니까?
미국 제40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순방하던 중 1983년 11월 13일 주일날이었습니다. 미 보병 2사단 장병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에게 연설하기 전에 묵상기도를 드리고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경황이 없는 중에라도 기도하고 연설을 시작하는 대통령, 얼마나 멋있고 훌륭한 대통령입니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외국을 순방하다가, 주일 날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드렸다는 말을 아직 못 들어봤습니다. 그 많은 날 가운데 주일 날 출국했다가 주일 날 귀국한 대통령은 많이 봤습니다.
1990년 9월 18일 오후 8시 15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자택에서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정부에서 국장(國葬)을 치르자고 했습니다. 국장을 끝내 거절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공덕귀 권사님이 “우리 영감님,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면, 우리 영감 시신 앞에서 중들도 와서 목탁을 칠 텐데, 우리는 잡교(雜敎)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3일 장, 5일 장, 7일 장, 홀수로 장례를 치르는데, 5일 장을 하고 싶은데, 그날이 주일 날이자 주일 지키려고 월요일에 6일장으로, 당시 권사님이 섬기는 안동교회 유경재 목사님을 모시고 가족장을 치렀습니다. 지금 공덕귀 권사님도 하늘나라 가셨지만, 권사로서 장례 때 주일 지키는 본을 보여줬습니다.
대구, 서현교회 한의사(韓醫師) 정규만 집사님이 있습니다. 어느 주일 날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러 갈 시간인데,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집사님이 한약재 넣어 잉어찜 해 먹자고, 참기름을 큰 프라이팬(fry pan)에 붓고 토도독토도독 소리가 나도록 참기름을 펄펄 끓였습니다. 잠깐 다른 양념을 가지러 간 사이에, 어린 아들이 방문을 열고 아빠를 찾다가, 펄펄 끓는 참기름 속으로 쑥 들어가 펄펄 끓은 참기름을 뒤집어썼습니다.
순식간에 아들이 화상으로 죽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죽은 아들을 땅속에 묻었습니다. 정 집사님이 그대로 교회로 가더니 이틀 만에 나왔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부인에게 하는 말 “집사가 주일 날 잉어찜 좀 해 먹으려다가 아들을 잃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느냐?”라고 탄식한 후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 대리석으로 예배당 짓는데 속죄하는 마음으로 앞장섰다고 합니다. 지금은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계십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 아닙니까?
한참 모내기를 할 때입니다. 어느 시골 농촌에서 주일 날 남자 집사님이 교회에 가려고 새 옷을 입고 교회 가까이 왔는데, 뒷집 사는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오늘 모를 심으려고 모를 심을 인부 21명이 지금 모를 찌고 있는데, 써레질할 사람이 갑자기 병이 나서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갔네. 이렇게 바쁜데 저 모를 심을 인부 21명을 놀릴 수가 없으니, 오늘 우리 논에 써레질 좀 해줘. 품삯으로 쌀 한 가마를 줄게. 교회는 오늘 못 가면 다음 주일 가도 되잖아.” 이 집사님 좀 보십시오. 집에 돌아가서 일복으로 바꿔 입고 황소 앞세워 써레질하러 친구 논바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왜 이렇게 황소가 말을 안 듣습니까?
논 주인 친구가 써레질이 늦었다고 재촉하는데 황소가 말을 안 듣자, 지게를 세워놓은 작대기를 들고 와서 황소 등 짝을 몇 차례 내리쳤는데, 황소가 퍽 쓰러지는 것입니다. 흔들어보니 글쎄 황소가 죽어버렸습니다. 죽은 황소를 모쟁이들 하고 논둑으로 옮기는데, 입이 싼 모를 찐 인부들이 “집사란 게 주일 날 교회는 안 가고 하나님한테 벌을 받은 것”이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재산이라고는 황소 한 마리밖에 없는데 순간적으로 전 재산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전도문을 막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 집사님은 죽은 황소를 붙들고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에드윈 무디와 벧시 무디의 9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하여 복음 전도자요, 부흥사로 활동한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 1899. 62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굶어 죽을지라도 주일을 범하지 말라. 이 시대에 주일을 지키다가 순교자가 나온다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큰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오늘 이런 강한 메시지(message)를 들어보기도 어렵거니와, 주일 지키는데 목숨 건 성도를 만나보기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부인 집사님한테 다음 주말에는 친구 내외와 단풍놀이 간다고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벌어 먹고살기 바쁘고, 주일 지키느라고 단풍놀이 한번 못 간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만, 한편, 집사 내외가 주일예배 안내위원인데 안내를 안 하고 단풍놀이를 하러 가면, 하나님 앞이나, 목사님과 교인들 앞에서 너무 죄송한 것 같아서 한 주간 내내 남편을 설득했으나, 남편이 얼마나 고집을 부리는지 설득 못 하고 할 수 없이 남편을 따라 단풍놀이를 갔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돼지고기 삼겹살 재워 가지고 가서 구워 먹으면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이민 와서 고생하고 고국의 향수(鄕愁)를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주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운전해야 할 남편 집사님이 맥주에 너무 취했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차를 타라고 하는 말을 믿고 차를 탔는데, 액셀러레이터를 얼마나 밟았는지 승용차가 커브(curve)를 못 꺾고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현장에서 집사님 내외가 즉사하고 뒤에 탄 친구 내외는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3일 후에 교회장(敎會葬)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어린 자녀들이 “엄마! 아빠! 이제 우리는 미국에서 누굴 믿고 살아가야 합니까? 이러시려고 미국에 이민 왔습니까?”라고 울어대는데, 장례를 집례하는 담임 목사님도, 조문객들도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교인들 입에서 “야! 술이 원수로구나. 지난주일 날, 주일 지키고 안내위원을 감당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이 나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 ‘이 시계점’이 있습니다. 당시 주인 되시는 이대호 장로님이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열두 살에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고 24살에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지난 50년 동안 주일예배를 본 교회에서 결석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동안이라고요? 저는 이 간증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장로님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세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 “와, 우리 장로님, 건강 축복받으셨구나!” 장로가 병들어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더라면 무슨 재주로 주일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2. 주위 환경을 이겨냈습니다. 한번은 주일날 결혼식을 한다는 청첩장 14장이 왔습니다. 주일날 무슨 결혼식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그러자 장로님은 고객 관리 차원에서 우리가 대 심방하듯 토요일 날 미리 축의금을 다 전달하고, 주일날이면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주일날 낮 12시에 이 예식장 찾아가 기웃거리다가 밥 한 끼니 얻어 먹어 본 일이 한 번도 없고, 오후 1시에 저 예식장 찾아가서 기웃거리다가 차 한잔 얻어 마셔 본 일이 지난 50년 동안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환경을 이겨내신 장로님이 아닙니까?
3.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집사나 권사, 장로나 목사가 한 교회를 50년 섬기다 보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어떻게 은혜스럽고 웃을 일만 있겠습니까? 어떤 때는 낯을 붉힌 일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때는 섭섭한 나머지 교회 창립 멤버(member)를 몰라도 너무 몰라 준다고 장로직을 사직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때는 이웃교회로 옮겨보고 싶은 생각인들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자리를 50년간 지킨 장로님이셨습니다.
장로님은 나중에 한마디 더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주일 밤 찬양예배, 수요기도회 시간까지 지난 50년 동안 본 교회에서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작년까지 교회학교 교사로 49년 동안 봉사하였는데, 올해 제 나이가 75세입니다. 나이가 많지도 않은데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올해부터 교회학교는 못 나가고 있는데, 교회학교 교사로 49년 봉사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초등학교 4학년 수료가 학벌의 전부입니다. 이제는 이대호 장로님의 간증이 내 간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배 생활의 포기는 신앙생활의 포기입니다. 예배 생활의 회복이 신앙생활의 회복입니다. 예배 생활의 성공은 신앙생활의 성공이요, 신앙생활의 성공은 내 인생의 성공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넷째. 예배드리는 장소
주일예배를 어디에서 드려야 합니까? 아들네 딸네 집에 갔을지라도 월요일 갔다가 토요일이면 돌아오시고, 기도원에도 월요일에 갔다가 토요일이면 돌아오셔서, 내가 임직받은 교회, 내가 등록한 교회,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예배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합니다.
다섯째. 예배드리는 방법
한번은 이웃교회 남선교회 헌신예배 설교를 부탁받고 가서, 한참 설교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손톱을 깎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손톱을 깎으며, 그렇다고 설교를 멈추거나 대충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드디어 손톱을 깎는 간 큰 교인을 찾았습니다. 어떤 중년의 남자 교인이 신문지를 무릎 위에 쫙 펴놓고, 손톱 한번 깎다가 설교자 한번 쳐다보다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 기관 헌신예배를 주일 밤마다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에 어떻게 손톱을 깎고 있단 말입니까?
내 집이 없어서 평생 월세, 전세로 전전하는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말년에 권사님이 단독 주택을 지어서 온 교우들과 함께 입주 감사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잘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철에 봄바람 찬송가를 한창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 권사님이 몸을 틀더니 새로 들인 방바닥에 때가 끼었는지 때 벗긴다고 침을 퉤퉤! 뱉더니 치마를 뒤집어서 방바닥에 묻은 때를 뽀독뽀독 벗기는 것입니다. 평생 처음으로 단독 주택 지어 입주예배 드리느라고 교인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데, 방바닥에 때를 벗기고 있는 권사님의 영혼이 왜 그렇게 불쌍해 보입니까?
은퇴하고 나이 80이 넘은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주일 날 아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내 몸이 너무 무거워 교회에 나갈 수가 없구나. 오늘은 네가 우리 집을 대표로 교회를 다녀오도록 하라.” 아들이 예! 하고 얼른 교회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버지! 아버지가 장로지 내가 장로입니까? 아버지가 교회 가셔야지요?” “이놈아, 내가 몸이 무거워서 그래. 오늘만 대표로 다녀와.” 아들은 아버지 등쌀에 밀려 교회에 갔습니다.
평생 주일을 지키던 장로님이 주일을 못 지키고 나니 주일예배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오는 설교 본문이 어디 드냐?” 지각한 아들이 “교회 가니까 벌써 본문은 다 읽어버렸어요.” “그럼, 오늘 목사님이 뭐라고 설교하시더냐?” “그 긴 설교를 어떻게 다 듣고 있어요. 설교시간에 신나게 졸았어요.” 그래도 장로님은 궁금해서 “그럼, 목사님이 오늘 뭐라고 광고하시더냐?” “목사님이 광고 시작하기에 살짝 빠져나와 버렸어요” 그래서 장로님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나!”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예배드리는 자세도 자식은 부모님을 닮습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영(靈)과 진리(眞理)로 드려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는,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나오셔야 합니다. 지각하지 말고 예배 시작 전에 참석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는, 교회 나와서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곡조에 맞춰 소리 높여 감격스럽게 찬송가를 불러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는, 예배 시간에 들어왔다 나갔다 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앉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는, 주일 날 혼자 나오지 않고 지난 주일 날 결석한 사람 챙겨서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빈손 들고 나오지 않고 지난 한 주간 굽이굽이 지켜주신 은혜 감사하여 감사예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는, 예배를 마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날 낮에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한 주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요, 예배 생활로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것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예배 생활 잘하는 자가 받는 은혜와 복
1.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철 따라 비를 내려주십니다.(레 26:4)
2.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거주하게 하십니다.(레 26:5)
3. 대적(對敵)을 쫓아 주십니다.(레 26:8)
4. 번성케 하고 창대케 하며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레 26:9)
5.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동행해 주시므로 복 중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레 26:12)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가장 부덕(不德)한 교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못 배웠고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일 날을 소홀히 여기고 예배 생활을 게을리하는 교인입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서 가장 존경받을 덕 있는 교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일 날이면 예배 생활에 목숨을 건 성도입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승용차를 운전하고 왕복 8차선 도로를 지나가야 하는 침착한 젊은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오던 승용차가 바싹 차를 붙이더니 비켜달라고 상향등을 켰다 껐다 사인을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막무가내로 그대로 그냥 가십니까? 얼른 비켜주십니까?
이 침착한 권사님이 우측 깜빡이 등을 켜고 비켜주었더니, 그냥 얼른 지나갔으면 좋았으련만, 빨리 비켜주지 않았다고 윈도(window)를 내리더니 입에 못 담을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더니 액셀러레이터를 확 밟고 지나가는 순간, 끊어진 성수대교에서 그 기사까지 한강에 빠져서 죽었고, 새벽기도회 참석하고 침착하게 운전하던 그 권사님은 급브레이크를 밟아 살았습니다. 그 사고로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했습니다. 새벽기도회 한 번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 것입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에, 예배 시간을 바꿔서 지금 구역예배를 드리자고 구역장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집사님이 친구들과 약속한 백화점 쇼핑(shopping)을 뒤로 미루고 구역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구역장 속을 너무 썩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중에 내가 구역장 할 때 나보다 두 배나 못 된 구역 식구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한참 구역예배를 드리는 중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했으며 6명이 실종됐습니다. 쇼핑 약속한 친구 가운데 구역예배 드리던 집사님만 유일하게 살았습니다. 구역예배 한 번이라도 빠지지 말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예배를 한창 집례하고 있는데, 제일 늦게 들어 온 여자 집사님이 뒤에 앉아 있는 사모님에게 “사모님! 사택에 들릴 일이 있어서 들렸더니 사모님 외아들이 죽었어요.” 그 순간 사모님과 일부 교인들이 놀라서 일어서려고 하니까, 예배를 집례하던 목사님이 그대로 앉으라고 사인을 보내자 교인들이 술렁거렸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목사님은 주보를 따라 예배를 집례하고, 준비한 설교 원고 그대로 설교하고 나니 1시간이 지났습니다. 축도를 마치자마자 사모님과 교인들이 사택으로 달려가 보니 외아들이 죽어있었습니다.
목사님 좀 보십시오. 뒤따라와서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더니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일예배를 집례하던 중에 제 아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제 귀로 들었습니다. 그래도 예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집례하고 마쳤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창 부흥되어가고 있는데, 담임 목사의 가정에 외아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 아들을 한 번만 살려주시면 이렇게 모인 자 가운데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 부흥이 중단되지 않겠으니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 무려 27분 동안 몸부림치며 절규(絶叫)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죽은 아들이 재채기하더니 눈을 떴습니다. 살아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후에 목사님은 간증했습니다. “만일, 외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주일예배도, 설교도, 내팽개치고 아들 살리겠다고 병원을 찾아다녔다면 아들도 잃고, 예배도 실패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번제(燔祭)를 드리는 정신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독자라도 미련 없이 바쳐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정신이었습니다. 오늘날 주일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십시오. 툭하면 결석하고 습관적으로 지각하며, 심지어 슬리퍼(slipper) 질질 끌고 와서, 껌 짹짹 씹고, 설교 도중에 갑자기 크게 울린 휴대폰(cellular+phone) 벨 소리에 설교 맥을 끊어 놓고, 핸드폰으로 전화 받아 가면서, 예배 시간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주보만 뒤적거리다가, 축도도 마치기 전에 나가 버리고… 이렇게 예배드려도 되겠습니까?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위도(蝟島)로 가는 서해 훼리호로, 부안경찰서 소속 경찰관 세 가족이 야유회를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한 가족의 남편 경찰관이 부인 집사님한테 “여보! 주말에 우리 사무실 세 경찰관 가족이 위도로 야유회를 가기로 했으니 그런 줄 알고 준비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언제 돌아오는데요?” “그야 주일 오후에 돌아오지.” “그럼, 난 못 갑니다. 주일 날은 교회 가야 합니다.” “이 사람아! 세 가족이 다 가기로 했는데, 우리 가족만 빠질 수 있는가?” “그래도 나는 못 갑니다. 주일 날에는 교회 가야 합니다.”
부인 집사님이 말대꾸 두 번 했더니 남편이 말을 딱 놔버렸습니다. “야! 너만 예수 믿어. 거기 예수 믿는 사람도 가. 너만 집사야! 거기 집사도 함께 가!” “그래도 나는 못 갑니다. 나는 다음 주일 날 교회 가야 합니다.” 말대꾸 세 번 했더니 그 억센 경찰관 손으로, 남편이 부인 뺨을 두 번 갈겼습니다. 얼떨결에 뺨 두 대를 맞고 나니 부인의 눈에 눈물이 삥 돌았습니다. 결국, 이 가정만 남편이 약속한 그 서해 훼리호를 못 탔습니다.
묻습니다. 주일 지키는 문제로 남편과 옥신각신하다가 만일, 남편에게 뺨을 두 대 얻어맞았다고 가정한다면, 그래도 다음 주일 날, 지금 그 예배드리는 자리를 지키겠습니까? 요즘 교인들이 왜 그렇게 기분만 찾습니까?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나 오늘, 구역예배 안 가! 교회 안 가!”라고 합니다. 구역예배나 교회가 교인들 화풀이하는 곳입니까? 감정을 구분하십시오. 기분이 나빴으면 거기서 끝내야지, 왜 구역예배, 교회까지 그 감정을 끌고 나오려고 합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저 인간 얼굴은 평생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데도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기분입니까? 의지(意志)입니까?
월급날인지라 온종일 남편 퇴근만 기다리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월급봉투 채 들고 도박하러 갔습니다. 이튿날 출근하지 않았다고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3일 만에 월급봉투 홀랑 다 날려버리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이 부인은 집에서 한 달 동안 어떻게 살림하고 살란 말입니까? 오후 5시 저녁밥을 지어야 할 시간인데 이 부인이 밥 지을 기분이 나겠습니까?
이런 버릇을 못 버린 남편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인 좀 보십시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쌀을 꺼내다가 싹싹 씻어 저녁밥을 짓습니다. 저녁밥을 짓는 부인의 이 심정이 기분입니까? 의지입니까? 어린아이들은 기분 따라 살아도 어른들은 의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도로 가던 서해 페리(Ferry)호는 어떻게 됐습니까? 362명이 승선(乘船)하였는데 페리(Ferry)호가 침몰하는 바람에 292명이 수장(水葬)됐습니다. 그런데 바닷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한날한시에 건져 올릴 수가 없습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가 시체 한 구를 찾으면 이게 내 아들인가? 내 남편인가? 라고 확인해 292명 장례를 치렀습니다.
다음 주일입니다. 부인 집사님이 교회 가려고 일찍 화장(化粧)을 시작했습니다. 출근하지 않은 남편이 화장하는 부인을 쳐다보더니 가까이 와서 화장하고 있는 부인 집사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 손이 무슨 손입니까? 그저께 부인 뺨을 두 대 내리친 손이 아닙니까? 뭐가 반갑겠습니까? 남의 손을 잡은 듯 내버려 뒀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그저께 당신한테 뺨 두 대 내리 친 것 사과할게!”
기억하십시오. 부부간에 나이 들어가며 살면서 “여보! 수고했어? 너무 힘들었지! 사랑해!” 이 말만으로는 못 사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떤 일에 실수했을 때는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실수했어. 당신이 마음을 풀어. 이렇게 사과할게!”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하는 말 “당신이 내 말 듣고 홀랑 위도 야유회 따라갔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이미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고, 다 키워놓은 자녀들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됐을 텐데 생각만 해봐도 끔찍해. 나 오늘 당신 따라서 교회 갈게”라고 했습니다.
믿음 없는 남편이 새 승용차로 바꿨습니다. 부인에게 “여보! TV 보니까 속초 설악산에 단풍이 절정이던데, 딱 한 번만 새 승용차로 설악산 단풍 구경 다녀올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 비위 맞추느라고 금주에는 속초 설악산으로 갔다가, 다음 주일에는 전라북도 내장산으로 단풍 구경 따라다니는 부인치고, 남편 영혼 구원시킨 부인은 없습니다. 남편 비위 맞추느라고 남편 따라다니는 시간 만큼 내 남편이 교회 나오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 것입니다.
뺨을 두 대 얻어 맞아 가면서도 주일 지키는 부인이라야, 물에 빠져 죽을 남편을 살려내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남편의 영혼을 천국으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이 부인 집사님의 모습이 예배 생활로 관심을 끌고 살아갈 여러분과 내 모습입니다.
“내 평생 예배 생활에 성공하리라! 내 평생 예배 생활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리라!”
“하나님! 내 인생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예배 생활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고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밤 내 소중한 소원이 하늘나라에 상달 되고 내 소원이 성취되는 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