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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비가 계시된 분이시다.(2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가 뭔가 표현한다면 어떤 교회를 표현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셔서 자신의 삶을 사시는 겁니다, 여러분은 갇힌 자가 됩니다; 인간적인 지적인
존재에게 갇힌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 그걸 어떻게 아시죠?
여러분은, “난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신을 잃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하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시고, 모든 게 그분임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이 정신을 잃은 게 아님을 보여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영 같은 것을 보고, 나가 정신이상자가 됩니다. 어, 우리는 그게 잘못된 것을 압니다. 그것은
마귀가 진짜가 여기에 당도하기 전에 진짜 것을 모방하려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런 것들은 항상 가짜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사고를 잃어버립니다! 맹목으로 그런 상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 정신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붙들어서 자신을 표현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보기에는, 여러분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정신이상자이면, 실제로 여러분이 제정신이 아니라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완전히 장악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이 말씀에 반대되는 온갖 일들을 하게 할 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붙드시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통해서 바로 그 말씀을 표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그 분이니까. 그는 말씀이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표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환영이나 그런 게 아니라, 진정한 진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바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겁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게 묻습니다,
열 두 제자에게. 그 당시 백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그의 교회인 열둘에게 물으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백만 명 중에서, 하나님은 여덟에게 물으셨습니다. 아-아. 아시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여덟 혼이 구원을 받았던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 여덟 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그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 몇 명이 구원 받을지 모릅니다. 마지막 휴거의 순간에 그 적은 무리가 될 겁니다, 그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구속함 받은 몸(Body)이 모든 시대에서 올라오면, 거기에는 큰 보좌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7장에 그것을 표현하기를,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큰 수가,” 모든 시대에서 올라와, 그들에게 그 빛이
계시되어지는 한도 내에서, 성경의 빛 가운데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웨슬리가 루터보다 더 많은
빛을 가지고 있었음을 압니다. 그리고 오순절교가 웨슬리보다 더 환한 빛을 비추었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점차적으로 풀어놓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내려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로 신격이,” 그게 완벽하게 알려지게 될 때까지.
이제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여전히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브를 남편과 함께
있는 올바른 위치에 데려가 줍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교회의 남편이고, 교회는 그의 아내이며 신부입니다.
자, 베드로는,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자 잘 보십시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 받은 자로다,”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죠?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너에게 계시한 것은 혈과 육이 아니다. 너는 결코 그것을 학교에 다녀서 배우지
않았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분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니라.” 주님이 베드로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이 반석 위에...” 그건 베드로, 이 빛을 받은 하나님의 예정된 씨, 왕국의 열쇠들을 받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에 관한 계시의 이 반석 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충만히 표명한
분입니다. “이 반석 위에...” 아버지, 아들, 성령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중 두 번째 분이 아니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흔들어 부수지 못하리라, 이기지 못하리라.”
아시겠죠?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
보세요,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계시의 생명의 중심으로 만듭니다. 아시겠죠?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분을 계시의 중심으로 만듭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성경을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로 만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모든 것의 완전한 계시로
만듭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것을요.
그러면 새로운 탄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새로운 탄생이 뭐죠?”하고 물을 겁니다.
새로운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개인적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교회 가입하거나, 악수를
하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거나, 신조를 말하거나, 어떤 규율들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성경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계시되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면 누가 뭐라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새로운 탄생은 그리스도입니다; 목사, 제사장, 무엇이 되든지 간에. 새로운 탄생은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시고, 교회는 그 계시 위에 세워집니다.
여러분은, “어, 전 루터교인입니다. 전 침례교인입니다. 전 장로교인입니다.”하고 말합니다.
그건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소리의 의미조차도 없습니다.
새로운 탄생이 뭡니까? 그리스도가 계시되어지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계시되어지면,
말씀은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아시겠죠? 그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율법을 가지고, 그 율법으로 사시는 것이고, ..죽음으로, 자신의 법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육신으로 죽으셨습니다, 육체 안에서 죄를 정죄하시려고, 영광스러운 신부를 자기에게
돌이켜 오시려고, 그 신부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을 겁니다;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지적인 개념들을
취하려고 말씀을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그리스도의 생각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탄생은 이 사실을 계시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는 거듭났다고 말하면서, 이 마지막 날들의 그리스도의 약속들을 다른 시대의 것으로
여기려고 하면, 오늘의 그리스도가 아닌 어제의 그리스도를 만들려고 하면, 그 남자는 아니 그 사람은 사탄의
미혹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통해서 말씀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마가복음16장에서, “이런 표적들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리라; 모든 세상에, 모든 시대에.”
마귀들을 내쫓고, 방언으로 말하며, 은사들의 온갖 표명들이 따르리라,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이런 표적들이 어쩌면; 이런 표적들이 마땅히”가 아닙니다.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탄생은 그리스도께서 그 개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시는 겁니다, 그 사람이 지식인이든 일자
무식인 사람이든. 사도들의 절반가량이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베드로와 요한을 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신학교도 나온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말하길,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음을 알아보더라,” 했습니다. 그들이 절름발이를
고쳤을 때, 아시겠죠? 그 미문에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녔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탄생은 그리스도입니다,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신비를 여러분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게 새로운 탄생입니다. 여러분이 그 무리를 다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러분이 하게 될 일은, 계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하여, 동일한 행동들로 표현하실 겁니다,
이전에 행하셨던 동일한 일들을, 말씀이 표명되게 하실 겁니다! 오, 교회가 자기의 위치를 알기만 한다면
너무나 좋겠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휴거는 가게 될 겁니다,
교회가 자기의 신분을 알게 될 때에. 자 보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건 아닙니다...”하고 말할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건 진리입니다. 보셨습니까? 바울은 육신의 예수를 본 적은 없습니다. 예수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아는 유일한 길은 계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환상에 의해서. 그게 맞습니까? “아멘.”
바울은 예수를 계시로만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을 육신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말하길 “혈과 육이 이것을 네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이 그것을 너에게 계시한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에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계시해 주었다,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는 육신으로 예수를 알지 않았습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그를 만지고 그런 식으로.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뭔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말했습니다, “바울, 난 당신보다 계시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난 주님과 함께 생활을
했기 때문이에요. 난 어느 날 주님과 고기도 같이 잡았어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고. 같이 배에 앉아
계시다가, 내게, ‘여기로 가서 이 속에서 고기를 잡자, 그러면 고기를 더 많이 잡을 거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그렇게 했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주님이 여러 가지 역사를 행하는 것도 봤어요.”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신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을 이끄셨던 불기둥으로 자신을
나타냈을 때 보았습니다. 유대인인 바울은 불기둥인, 그 표징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불기둥을 “주여”하고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겁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 달리 말하자면, 주님은, “바울아, 나는 어제와
동일한 오늘의 하나님이다. 여기에 나는 동일한 빛 가운데 있도다, 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가 얘기하던
그 불기둥이다.” 바울이, 저기 히브리서에서, 율법을 은혜에서 분리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는 그 동일한 불기둥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일한 방법으로, 동일한 불기둥으로, 오늘날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시고 동일하게 자신을 입증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후로 감춰져 있던 하나님의 신비를 계시하면서. 아시겠습니까?
바울은 오직 계시로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도 오직 계시로 주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걸었고,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말했듯이 그는 말씀이셨습니다. 어느 학자는 앉아서 그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기 생각에 얽힐 수 있습니다, 그가 그것을 원한다면, 왜냐하면 그는 영리하고 명석하기 때문입니다.
카톨릭 사제를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연구하는 훈련을 많이 받은 신학자를 만나보면.
형제님, 침례교인이든지, 장로교인이든지, 아니면 다른 교인, 그와 얘기하다 보면, 그는 여러분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 겁니다. 뭐죠? 아시겠죠? 그는 육체로 주님을, 말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계시로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교 교리를 가지고 여러분 오순절교인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침례교 교리를
가지고 여러분 오순절교인에게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수백만 가지를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건 그분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건 그분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분의 교회는 계시된 그분 자신입니다, (아멘! 그걸 이해하십니까?),
말씀만을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말하고는 그것으로 세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까?
이교도들이죠! 맞습니다! 그는 말씀이시고, 성경에는 한 군데도, 어느 누구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 한 군데도 없는데, 여러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오직 예수교 사람들이 계실텐데, 침례를 베풀 때 “예수” 이름만을 사용하시죠!
전 개인적으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네댓 명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교파들이 여러분을
어디로 이끄는지 아시겠죠? 그건 흑암이고, 피 대신에 땅의 열매를 가져 왔던 가인의 예표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계시는 보혈을 통해서 옵니다,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혈이십니다.
마리아의 태에 창조된 보혈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계시로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계시로 예수를 압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난 감리교인이야” 말하는 게 아니고. 그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난 침례교인이에요.” 그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 카톨릭 교인이에요.”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계시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계시하시는 걸로! 그는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여러분은 말씀이
어떻게 계시되었는지 아시죠? 그 말씀은 여러분을 통해서 스스로 삶을 살아내고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그 위대한 계시를 잊은 지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관한 계시를, 그들은 그걸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간 곳은...
자, 루터가 일어났을 때,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죠?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름 리키(Ricky) 같은, 머리 윗부분을 납작하게 하는
이발을 한 리키들이 들어왔고, 리케타(Ricketta)들도, 그들 모두가, 그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그리고-그리고, 제일 먼저, 그건 거기에 들어섰습니다.
그 표현. 여러분이 성경의 수를 알기만 한다면, 엘비스나 리키가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안다면!
아-아. 마치, 왜 예수께서... 사람들은, “이름은 별 상관이 없어요.”하고 말합니다. 상관이 없다구요?
그 이름은 이 마지막 날에만 올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 가질 이름이죠?
왜, 예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셨죠? 왜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죠?
왜 시몬을 베드로로 바꾸고 그러셨죠? 아시다시피, 분명히 그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은 이 시대까지는 말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이런 지옥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와 같은 것들 때문에. 전 인류가 부패되었습니다. 아주 끝장이 났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런 겁니다. 자 보세요, 루터는 괜찮았습니다, 루터는 그의 시대에는 괜찮았습니다, 그는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떠나자마자,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웨슬리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떤 일을 했나 보십시오. 옛날 초기의 오순절교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떤 일을 했나 보십시오. 그들은 여러 사람을 조직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은, 은혜로, 이스라엘에게 불기둥과, 선지자와, 희생제물을 보내셨고, 그들 가운데서 자신을 보여 주시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원했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고관을 가지기 위해서, 그들이 뭔가 해 볼 수 있도록 하려고. 그들이 뭘 했죠? 그들은 광야에 남겨져 사십 년
간을 방황했고, 그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 가입한 사람은 한 사람도 건너가지 못했습니다. 칼렙과 여호수아,
단 두 사람만이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능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영원히 끝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시대에 있어서 그분의 축복들과 권능을 보여 주신 다음에, 루터, 웨슬리, 등등의 사람처럼. 그러셨죠?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그들은 전부 다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시체는 광야에서 멸절되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죽었다... 나는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빵이다.”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교회는 계시를 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인 메시지를, 지식인들을, 교인 자격을,
지식은 받아들이지만, 말씀의 진리에 관한 계시는 안 받아들였습니다.
자 여길 보세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 세상에 나가서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며 마귀들을 내쫓으라는 사명을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오, 그럼요.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보셨죠? 며칠 전에 여자분이 제게 말하다가, “어, 모든 교회들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전, “어느 교회도 다른 교회와 화목하게 지내고 있지 않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카톨릭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은 어때요? 당신은 감리교인이고 저 사람은 카톨릭 교인인데, 두 분이 서로 화목하게
지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교황은 그들 모두를 연합시키려 할 겁니다, 그건 그런 사람들 모두에겐
좋은 일이죠.”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전혀. 다른 무리 전체에게서 나와 따로 있는 상태입니다. 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하나로 연합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한 쪽은 다른 걸 믿고 다른 쪽은; 감리교는 물을 뿌리고,
침례교는 물에 잠기는 침례로 하고, 그런데 둘 다 권능의 충만함으로 있는 성령은 부인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믿을 때에(when) 성령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가 믿은 이후로(since)
성령을 받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은, “우리는 카톨릭 교회입니다. 우리가 일찍 시작했어요. 우리는 이런 일을 했어요.”하고
말합니다. 감리교인들은, “우리는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하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그 표적은 어디 있죠? 아시겠죠?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라,” 그분을 믿는 모든 피조물은, 모든 사람은 다. 그런데 그게 어디에
있죠? 그건 주님의 말씀들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그게 어디 있죠? 아시겠죠? 오, 그것은 그대로 보입니다! 그게 뭐죠? 그건 잡종 상태입니다.
여기 보세요, 여러분 크고 좋아 보이는 잡종 옥수수 알을 가지고, 잡종 옥수수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예쁜
옥수수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심어 보세요, 뭘 얻을까요? 조그마한 옥수수 대가 이렇게 올라오다가는 노랗게
변해서는 시들어 버립니다. 모든 교파가 그렇게 됩니다, 그게 잡종이니까? 하나님의 말씀들에다 인간의 말들을
섞어 놓았기 때문이죠? 그건 표적들과 기사들에까지 올라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믿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시자, 그건 노랗게 변해서는, “우리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는 돌아가 버렸습니다.
건너가서 카나안 땅을 봤던 나머지 정탐꾼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는, “오, 우리는 그들과 비교하면
메뚜기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 땅을 취할 수 없어요! 아말렉 사람들은, 그들 모두는, 그들이 할 일들은!”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칼렙과 여호수아는 순종들이어서, 아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그
땅을 주노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 땅을 능히 취하고도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태어났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교회 안에서 으뜸됨을 차지합니다. 그 교회를 위해 주님이 돌아가신 겁니다. 그게 주님의 목적입니다,
주님이 그의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으뜸됨을 성취하기 위하여,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어떤 것이 어떻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빛을 내게 하십시오. 지식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뭐라고 말한다고
해도 전 개의치 않습니다, 그 말은 말씀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했으면,
우리는 그걸 능히 취하고도 남습니다!
“내가 그걸 내 교회에서 설교한다면,” 어느 목사님이 제게 말한 겁니다,
“전 교회에 있는 네 기둥에 대고 설교하게 될 겁니다.”
전, “나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네, 사람들은 이것으로 핑계를 댑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들이 이 마지막 시대의 메시지에 눈이 먼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명하시는 이 마지막 날들에. 그들은 메시지를 어떤 심령술이나 뭐 그런거, 오,
(제가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어떤 정신적인, 환영, 뭐 그런 의미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은-사람들은 메시지를 잘못된 뭔가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엘세불; 점쟁이”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사람들은 그게 정신감응(텔레파시) 같은 거라 말합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예수께서 거기서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 마음 안에 있는 생각들을 그대로 분별하실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히브리서4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양 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 빠르고 예리하고, 마음의 생각들까지도 판별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으뜸된 자리에
있으면, 동일한 일이 다시금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그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앞으로 여러분 어떻게
이것에 대해서 걸려 넘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분명한 데 말입니다. 그렇죠? 좋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눈이 먼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와 똑같습니다. 오, 세상에! 그들은 똑같이
비틀거립니다. 그들은 “그는 바알세불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사생자로 태어난 사람이고, 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마귀 들린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저기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는 마귀 들린 사람이죠.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 말을 하는 것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역사를, 악한 영이라고
부른 것을. 예수님은, “내가 그 말은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성령이 오실 텐데, 성령을 거슬려 하는
말은 이 세상이나 장차 올 세상이나 그 위대한 날에도 한 마디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말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그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시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시대에 이르면, 아무리 지적인 사람이고, 아무리 큰 교파에 그들이 속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정죄를 받습니다. 정죄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성령을 “홀리롤러(holy-roller)”라고 부르면서,
듣기 거북한 이름으로, 그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성령을 모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실한 교회는
항상 그런 일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바울도, 아그립파 왕 앞에서, “나는 ‘이단’이라 불리는 도에서,”
이단은 ‘미쳤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상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지적인 학자는
그 자리까지 이르러야 했습니다, “‘이단’이라 불리는 도에서.” 왜죠? 그건 바울에게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 매달려 있는 그 불기둥이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라, 모세와 함께 광야에 있던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한 그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그니라, 가시채를 걷어차는 것이 네게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 서서, 목숨이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단’이라고 불리우는 도로,
나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숭배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위대한
진리가 그에게 계시되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우리 교파에만 진리가 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진리란? 여러분에게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탄생을 가져다줍니다.
그분의 말씀들을 표현하시려고 주님이 으뜸됨을 차지하는 거죠. 주님이 이 마지막 날에 약속하신 것은 뭐든지,
주님은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의 몸을 통해 성취시킬 수 있습니다. 아멘! 그건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된
겁니다. 보십시오.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대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이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의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신학교들은 결코 그것을 찾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마태복음11장25~27절을 읽고 싶으시다면. “오 아버지, 하늘들과 땅의 하나님,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기들에게는 계시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전 개의치 않습니다. 그 당시의 학자들을 보세요, 그 유대인들,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 등등의 조직들. 아시겠죠? 그들의 커다란 조직들은 다, 예수님은, “너희는 눈이
멀었고; 너희는 눈먼 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말하였도다, ‘너희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영 안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너희의 눈을 멀게 하였다. 너희는 이브가 한 것처럼 하고 있다, 지적인 면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는가,
지도자나 눈 먼 사람들이 다?” 지도자는 소경과 함께 떨어질 것입니다, 지도자도 눈이 멀었기 때문이죠?
소경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눈이 멀어서 떨어지고, 그들은 둘 다 구덩이에 떨어집니다.
하나님만이 이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아까 읽었던 말씀에서 동일한 것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이 인자인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혈과 육이 이것을 너에게 계시한 게 절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계시한 것이다! 여기 이 계시 위에, 거기에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이제 아시겠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뭔가 아는 학교나, 신학자들이나, 성경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건 그들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는 감각들을 그 선택받은 성경 교사들과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감추셨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계시되는 것은, 그 사람과의 개인적인, 사적인 관계의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는 나에게 계시되어졌어요,”하고 말하고는, 여기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산출해낸 생명,
그 분 안에 있던 동일한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산출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계시를 받은 겁니다.
제가 배나무에다 호박의 생명을 집어넣으면, 그 나무는 호박을 맺을 겁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정확합니다. 만일 처음에, 여러분이 나무에, 포도나무에, 그건 포도를 많이 내는 나무인데, 첫 번째 가지는
포도를 맺는데, 다음 번 가지는 레몬을, 그 다음 가지는 배를, 그 다음 가지는 사과를 맺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접붙이는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각자의 생명을 맺고 있는 겁니다. 모든 교파는 교파의 생명을
맺을 겁니다. 하지만 원 포도나무가 다른 가지를 낸다면, 그건 처음과 똑같이 포도를 맺을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들의 또 다른 몸을 낸다면, 그건 처음 몸이 맺었던 동일한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뒤에다 계속 덧붙인 내용을 기록하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일한, 동일한 생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습니다. 그건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사심으로써, 여러분 안에 주입된,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눈 먼 자들을 이끄는 눈먼 지도자들!” 보세요, 하나님만이 이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신학자도 여러분에게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그들에게는 감춰진 겁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학교들은, 여러분들이, “난 철학박사, 법학박사 학위를
가졌어요.”하고 말할 때, 여러분은 다만...제게는, 제가 믿기에는, 하나님과 진짜 진정한 신자에게는,
그것은 여러분이 그만큼 더 멀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더욱 뒤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육으로 알려지는 분이 아니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을 설명하는 가로 알려지는 분이 아니니까.
하나님은 단순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씀에 의하면 가장 어린 아이에게 알려지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가진 신학으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어떤 다른 반석도 아니고, 어떤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떤 로마 반석도 아니고, 다른 개신교 반석도 아니고,
어떤 학교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니고, 정확히 새로운 탄생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위에 세워집니다.
그는 거기서 태어나고,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입시키면, 여러분의 생명은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을 통하여 으뜸됨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면; 사람들은 동일한 생명을 보게 되고 주님이 하셨던
동일한 역사들, 표적들과 기사들을 보게 되고, 여러분을 통해 주님이 동일한 일을 하는 걸 보게 됩니다. 그것
밖에 있는 것은, 나머지 것들은 다 불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시가 펼쳐지는 것을 잘 보십시오!
이 계시의 부족으로 우리 가운데 너무나도 많은 분열과 너무나 많은 조롱이 있는 겁니다. 너무나 많은 분열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계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은, 그 계시가 부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은 후에 고린도전서2장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을 적으시는데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잘 보세요! 오, 바울은, “내가 지혜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지혜를 정말로 많이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을 보십시오, 정말로 학문을 가졌던 그 사람을 보십시오,
“나는 결코 여러분에게 그러한 말들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2장입니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아무개 박사요” 하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시겠죠?
2.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3.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며 4.또 내 말과 내 설교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설득)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그게 복음입니다. 아시겠죠? 예수님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가르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능력을 나타내라, 그러면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런 표적들을 나타내는 실제적인 성령이 필요한 겁니다.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5.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오, 세상에! 보세요,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제가 말씀을 잘 설명해서가 아닙니다, 아니면 주님은 동일한
분이신데도, “주님은 동일하지 않아요.”하고 말하는 건. 제가 그렇게 한다면, 그게 알려 주는 건, 제게는,
그건--그건... 분명히, 어떤 분이 제게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제게 그가 그 계시를, 하나님의 삼중 계시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말일 겁니다. 아시겠죠?
6.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7.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보셨죠, 하나님의 삼중 신비입니다)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제사장이나 서기관, 랍비들)...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여러분은, “형제님은 그 랍비나 목사들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누가 주님을 죽였습니까? 아-아. 바울도 그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소”하고 있습니다.
오, 계속, 계속해서 우리는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을 계속 읽어보십시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이 늦어지지 않으면,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지금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여기서 말할 게 충분히 있습니다.
바울은, 이 위대하고 지적인 사람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진 거창한 신학 용어들을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주의 말씀을 받아 들였고, 그 말씀이 그를 통해 표현하도록 말씀을 살아냈습니다.
바울은 너무나도 경건하게 살아서 사람들은 그 안에서 너무도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래서 바울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놓기를 원했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통로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 보세요, “오, 글쎄, 엘리야가 오래 전에 그런 일을 했어요, 지팡이를 놓았었죠;
하지만, 오, 그건 엘리야의 시대 일이었습니다.” 자, 세상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적인 제사장들과 그들,
그 당시 교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믿는 자들에게는, 그들은 다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에게 있었던 그리스도의 계시가, 동일하게 바울에게 있고, 동일한 생명을 표현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정확히 그대로 일어난 일들을 예고했고, 그들은 그게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증명하심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그들이 믿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베드로가 일어난 일을 예고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들은, “그의 그림자로도 내 위에 덮이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멘! 그게 교회입니다.
그게 믿는 무리들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건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계시되어 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바울이, “내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그들이 날 믿을까?”하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난 인간의 지혜를 다 잊어버렸다.”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죽어야만 했다, 나는 주님을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냄을 가지고 너희에게 온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게 뭐였죠?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게 만드는 겁니다. 예수께서 하셨던 일들을,
바울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 나타냈던 위대하신 아버지께서,
그것을 바울에게 나타내셨고, 또 여기에서 그것이 나타내지고 있습니다.
그는 매 시대마다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삼중 방식,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히.” 뭐죠? 구속주이시고;
그분의 교회 안에서; 장차 올 왕국에서 으뜸됨. 아멘! 이해하시겠습니까? 완벽할 대로 완벽합니다!
오, 보십시오! 성령만이 그리스도에 관한 신성한 계시를 계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학교도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도 못합니다. 어느 인간도,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았어도,
아무리 경건해도, 다른 어떤 것이라도, 어떤 사람도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전 여기서 아프게 찌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거듭나고,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손 좀 들어 보십시오, 몇 분이나 되는지? 좋습니다. 됐습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그런데 성령은 예정된 자들에게만 계시할 겁니다. 정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다 오리라,
아버지께서 먼저 내게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아시겠죠?
그들 제사장들을 보세요, “이 사람은 바알세불이요. 그는 점쟁이요. 그는 마귀요.”하고 말합니다.
여섯 남편을 가진 그 여자는 거기로 걸어왔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그때 당시는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서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맞다, 너는 여섯이 있다.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너의 남편이 아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뭐죠? 빛이 그 씨를 비췄던 겁니다.
그 빛이 그들 제사장들을 비췄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은 점쟁이야.”하고 말했습니다. 보셨죠?
거기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었던 겁니다. 잡종, 조직까지는 올라왔지만, 그 뒤로는 죽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잡종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알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크고 예쁜 두
눈이 반짝거리고, 두 볼엔 눈물이 흘러내렸을 겁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저는 메시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야가 오면, 그는 이와 똑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말할
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주님! 그녀는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여기 그분이 계세요! 와서, 제게 이런 일들을 말했던 사람을 보세요.”
그게 뭐였죠? 그 빛이 그 씨를 비춘 겁니다. 그 생명이 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 생명은 밖으로 나옵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신학자는, “자 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만일 아무개가, 무디 목사님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보고,...”하고 말할 겁니다. 오늘날, 무디 목사가 이것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무디 목사는 그의 시대를 살았지, 지금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루터도 그의 시대를 살았지, 웨슬리의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웨슬리도 그의 시대를 살았지, 오순절 시대를 살지 않았습니다. 오순절도 그들의 시대를
살았지, 이 시대의 이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들의 조직들과, 온갖 혼잡함들, 그게 거기 없음을 증명합니다. 말씀은 결코 정확하게 입증 받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힘과, 씨들, 교파들 안에서만이. 그들은 교파들을 만들고, 그 진짜 밀과 함께 집섬(gymsum) 잡초
씨를 한데 섞었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집섬 잡초는 수확기에 이르렀고, 푸른 엉겅퀴와 쐐기풀들도,
아-아, 아시겠죠, 그 자리에서 수북이 올라올 것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그 밭을
갈고 다시 시작합니다, 진짜 씨들을 뿌리면 그 잡초들이 또 올라와서 그것을 질식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지막 날들에 한 백성을 데리고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보혈로 씻겨진 백성,
거기에 있기로 예정되었던 사람들을. 그들은 거기에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보혈로 씻겨진 백성을, 원래 있기로 예정되었던 그들은 그 빛 가운데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독수리의 날개로 그들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말라기4장5~6절에 “보라..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자녀들의 (이방 신부들)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초대
오순절의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리라.(회복시키리라.)” 바울이 받았던 동일한 계시를 가져올 겁니다.
그것을 계시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똑같은 것을, 불기둥이 표명될 것입니다; 동일한 표적들, 동일한
기사들, 동일한 예수가 있게 하고; 예수를 동일한 분으로 만들며, 예수를 동일하게 전하고, 예수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분으로 입증할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요엘2장25절에서 “내가 회복하리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카톨릭 메뚜기가 먹은 해를 따라, 루터교 자벌레가
먹은, 침례교가, 모든 벌레들이 먹은 대로, 그 믿음을 먹어치워 내려가다 마침내는 그 안에 아무런 씨도 남지
않을 교파적인 그루터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모든 햇수를 따라 다시 회복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구요? “그들이 버린 모든 표적들과 기사들을. 내가 그것을 다시 그 원래의 나무에다
돌이켜서, 그것을 회복시키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선지자는 입증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말들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멘.
성령이, 성령만이 그리스도의 신성한 계시를 계시할 수 있고, 지금까지 모든 시대에서 그렇게 해오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시대에서! 주의 말씀이 누구에게 왔습니까? 선지자에게 옵니다. 맞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그런데 그 선지자는 먼저 입증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가 자기가 선지자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그는 선지자로
태어나고, 선지자라고 증명을 받고, 그가 말한 것은 말씀과 정확히 맞아야 하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다른 모든 의심들은 사라집니다. 아시겠죠? 주의 말씀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왔습니다.
성경은, “옛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아시겠죠, 말씀을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보세요. 침례요한은 성령이 예수를 지적해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예수를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맞습니까?
요한은, 그 위대한 선지자는 나와서 말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 한 분이 서 계십니다. 여기 어딘가에
서 계신 평범한 한 남자, 그 분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요한이 말하길, “전 증거했습니다. 전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그 분 위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음성이 나와서, ‘이는 내가
기뻐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뭐였죠? 성령께서, “내가 그를 지적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주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도 그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삼중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이. 그런데 그것도 여러분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예정이 되어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정이 안되어 있으면, 여러분은 절대 그걸 볼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예정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걸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빛이 비추는데 여러분은 멀리 가버리고 그것을
비웃고, 그리고 그것을 지적인 개념으로 장황하게 설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표명하시고 그것을 증명하실 때에도, 아시겠죠?
그럼에도, 여러분에게 그것을 볼 뭔가가 없으면, 여러분은 그것을 보지 못할 겁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은 택하고, 저 사람은 택하지 않으리라”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미리아심으로 아셨습니다. 그가 예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끝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작 때부터 끝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못한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십니다. 좋습니다.
요한은 성령께서 지적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결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혜롭고, 교육을 받고 그런 모든 것들에게 자신의 신비를 감추시는지 보셨습니까? 보세요,
그 사람들 모두가...?... 단순함이 하나님께서 보도록 예정하신 사람들에게 그것을 계시합니다. 여길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옆에 서 있으면서도 그 비둘기를 보지도 못했는데, 아무런 음성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예정된 한 씨에게만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예정된 겁니다! 분명히, 예정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분이 태어나기 712년 전에, 영 안에서 이런 인간적인 감각들을 초월하여 일어나 말하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대로를 곧게 하라.’고 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자, 이사야가 그것을 볼 수 있었다면, 말라기가 예정된 마지막 선지자를 똑같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을
인치고 마감하는...그 시대의 끝에서 거기에 서 있는 그 위대한 선지자를 보지 못했을까요? 아시겠죠?
말라기는 그게 예정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는 예정되었습니다. 말라기도 역시 그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는 내가 ‘내 앞에서 내 길을 예비하라고 내 면전에 내 사자를
보낸다’고 말했던 자니라, 말라기3장이죠.” 아시겠죠? 정말입니다, 그는 그 메시지를 보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요한이 저 멀리 보고 그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있었던 그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이는 내가 거하기를 기뻐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죠.
요한은 “내가 증거하노니, 나는 그분을, 아버지의 독생자를 보았다. 나는 그 일의 증인이다.” 말했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단순함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인데; 아버지는 위대한 신학자인데, 알다시피,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교파로 돌아갈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듯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옛날에 그가 탄생할 때 그를 만지셨을 때, 요한은 태어나기 삼 개월 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그 위에 올라갔을 때, 요한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육 개월 되었었는데,
전혀...그 조그만 근육들이 아직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걱정이...그 조그만 근육이
자라는데, 그녀는 아무런 생명의 태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가 아니라 엘리사벳이었죠.
그런데 마리아가 올라와 그녀를 붙들고 껴안고, 팔을 둘러 그녀에게 안수하자. 아시겠죠? 그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도 아기를 가지리라고 말씀하셨어요.” “너 요셉과 결혼했니?” “아뇨.”
“마리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니?” “성령이 저를 덮을 것이고, 제 안에 창조될 거예요. 전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를 거예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일 거예요.”
‘예수’라는 말이 발설되자마자, 어린 요한은 어머니 뱃속에서 뛰고, 소리를 지르고 마구 뛰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주 하나님은 복되시도다! 내 주의 모친이 오시다니? 내 주의 모친이!” 오, 세상에!
“내 주의 모친이 오다니? 너의 문안하는 음성이 내 귀에 들리자마자, 내 자궁 안에서 아기가 기뻐서
뛰었도다.”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신학교나 자기에게 교리로 채울 뭔가를 원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는 중대한 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인(野人)이었고, 광야에 나가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거기로 데리고 나가셨고, 그에게 계시했습니다. 오, 다시 여러분이 받을 계시가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그가 누군지 말해주겠다. 너는 선지자이다. 말씀이 너에게 있다. 너는 네가 누군지 안다. 너는
와야만 한다.” 그건 지난 주 일요일에 있던 질문에 답이 됩니다. 아시겠죠? “너는 네가 누군지 안다, 요한.
그러나 잠잠히 있어라;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계속 하던 일을 해라. 네가 이 사람을 보게 되면, 하늘에서
빛과 같은 비둘기가 내려오는 표적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그를 만나게 될 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로 걸어오셨을 때, 요한이 보니까? 그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저분이 바로 그분이다! 그는 세상 죄를 제거하실 분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곧 바로 걸어오셨습니다, 요한에게. 요한의 두 눈이 예수의 두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따지자면, 육촌 간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사촌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서로 만났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가, 아멘, 거기 서 있었습니다.
요한은,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겁니다. 어째서 주께서 내게 오시나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허락하라, 하지만 명심해라,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왜 그렇게 했죠? 예수님은 희생제물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생제물은 바쳐지기 전에 씻겨야만 합니다. 오! 오! 요한은 허락했고, 주님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보라, 하늘이 열렸습니다, 오, 세상에, 그 비둘기가 주님 위에 내려왔고, 한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 안에서 거하기를 기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그 안에서 내가 거하기를
기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식으로 말하든지, 의미는 똑같습니다. “안에 거하든,” 아니면...
“이는 내가 그 안에서 거하기를 기뻐하는 사랑하는 아들이니라.”나 “안에서 거하기를”이나, 어떻게 말하든지,
똑같은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그게 그에게 계시되었음을 압니다. 거기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걸 듣지
못했습니다. 성령이, 성령만이 그것을 계시합니다.
또 다른 예정된 씨인 바울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사람들 잡기만 해 봐라, 내가 뿔뿔이 갈라놓고 말겠다,
나는 사울 박사니까. 나는 가말리엘 수하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나는 무디 신학교에 다녔고...” 아니면 다른
데에, 아시겠죠. “난, 난 학자다. 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그 광신자들을 뿔뿔이 흩어놓고야 말겠다.
위대하신 신부님, 제게 거기에 내려가게 허락하는 공문서를 주십시오, 제가 그리로 내려가서 소란을 피우는
그들을 체포해 오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병고침이니 뭔지 하는 것, 그런 것은 입을 막아놓겠습니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는, “저 갑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세상에, 오전 11시경에, 빛 한 줄기가 그의 얼굴에 비췄고, 그는 땅에 엎드렸습니다.
왜죠? 그는 예정된 씨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를 선택하였다. 네. 내가 그에게 앞으로 내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을 보여 주겠다. 나는 그를 이방인들에게 보내 그들에게서 온갖 방법으로 그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나, 그래도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다닐 것이다.”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내려갔습니다, 그의 모든 종교적인 것들이 다 끊어질 때까지, 저기 사막의 뒤편에서 삼 년 반 동안
있었습니다. 거기 아라비아에서, 그가 말씀을 배울 때까지, 말씀이 그가 될 때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갇힌 자가 됩니다; 여기 그가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 돌아왔습니다! “나의 모든 신학교 경험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갇힌 자입니다. 아멘! 나의 형제, 빌레몬이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입니다. 나는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만 얘기하고 말할 수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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