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의 2~30대는 혼란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사회는 급격하게 위축되었고, 외환 위기 이전까지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기회가 줄어들자 사람들은 제한된 기회를 얻기 위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경쟁에서의 어려움이 커지자 전략적으로 졸업을 미루는 이들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다행이라면 이전의 활력을 다시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희망이 무너진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것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압력이 매우 커졌다는 것이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히 반복되는 좌절을 경험할 것이라는 점이다. 졸업장만으로 대기업에 취업하던 선배들과 다르게, 스펙 경쟁이 과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좁은 기회의 문을 열기 위해서 시작을 준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부담되는 경쟁을 강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2025년을 살아가는 2~30대의 삶도 나의 청년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해도 허언이 아니다. 공채를 비롯한 정규직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비정규직조차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엄습하였다.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위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2000년대 이후 정신질환의 진단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울증과 불안을 주요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 환자가 많이 늘었고, 그 중 하나가 공황장애이다. 다수의 연예인이 앓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 통계 조사가 구체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약 5만여 명이 진단을 받았다고 하고, 23년 4월 13일 보도된 KBS 뉴스에 따르면 2017년 138,736명, 2024년에는 200,540명으로 5년 간 4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가 23.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다음은 50대(19.2%)였다. 이들 세대는 바로 10대 후반과 20대 청년 시절을 외환 위기와 함께 시작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연령대가 가족을 꾸리고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인 책임을 가장 많이 지는 이들이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가장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30대가 18.3%, 20대가 14.3%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10대가 2.4%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공황장애가 7~8배이상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상담 중에 청년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대부분 직업에서 오는 심리적인 불편함을 호소했다. 상사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 급여와 직급에 대한 불만, 친구나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말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들에게 신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신념은 개인이 특정한 사실, 가치, 또는 생각을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신념은 단순히 사실에 대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행동, 감정, 그리고 인지적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내적 틀로 작용한다.
불편감을 느낄수록 사람들과의 소통의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SNS를 통해 소통의 공백을 채우려 하지만, 고립감을 더 느끼고 외로워졌으며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졌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비난하거나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밀려올수록, 성공을 목표로 달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연애나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고, 자기 계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현실을 이해하고 평가할수록 자기 가치는 떨어지고 신념은 왜곡된다. 그 결과 재앙화가 더 쉽게 일어났다. 실패가 반복될수록 점점 더 인내력이 떨어졌고, 타인과 비교할수록 자기 비난은 더욱 강해질 뿐이다. 그 결과 우울과 불안감은 더 심해지고 다시 대인관계를 회피하게 된다. 이 현실의 어려움은 경제적 위기로 연결되고, 그럴수록 사회적 열등감이 더 선명해지고, 자기에 대한 인식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신념에 반하는 결과들이 반복될 수록 이들에게는 심리적 고통이 가중될 뿐이다.
엘리스(Ellis)의 합리정서행동치료(REBT)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 사건이나 외부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신념 체계에 의해 감정적 반응을 결정한다. 그래서 엘리스는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이 인간의 고통과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정적인 감정은 비효율적이고 부적응적인 행동을 일으키며, 이는 실패나 갈등을 낳고 결국 왜곡된 비합리적인 신념을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REBT)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신념을 전환하여 긍정적인 감정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신념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며, 개인의 심리적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신념은 고정적이고 강한 경향을 보이지만, 경험과 학습을 통해 변화할 수도 있다. 비합리적인 신념을 합리적인 신념으로 바꾸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지만, 결국 합리적인 신념으로의 전환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중요한 일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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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최용원 .서호준 .한상우 .홍진표,.이경욱 .김세주 .임세원, 이상혁 .양종철 .이승재 .박선철 .김민숙 .채정호 (2019) 증상의 발현부터 치료의 시작까지 : 한국인의 공황장애 인식도 변화가 치료적 접근에 미친 영향, Anxiety and Mood Vol 15, No 2 / pISSN 2586-0151 / eISSN 2586-0046 https://doi.org/10.24986/anxmod.2019.15.2.61
공황장애 환자 한 해 20만 명 넘어…40대가 가장 많아 | K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