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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자
1972.05.08 (월), 한국 구리 중앙수련원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5월 8일, 당신이 보호하시어서 멀고먼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이제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을 위해 부족한 저희들은 당신의 경륜과 더불어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많은 일을 벌여 놓고 왔습니다. 이일은 당신의 가호와 당신의 무한하신 격려가 없이는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돌아오면서 당신 앞에 절실히 기도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이제 본국에 돌아오니 또다시 남은 싸움의 노정 위에 가해야 할 발걸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모든 섭리의 경륜은 당신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 와야 되겠사오니, 부디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성사하시옵소서. 불쌍한 이 민족을 통하여 당신이 소원 하시는 승리의 한 날을 맞게끔 저희들은 부족한 정성을 모아 아버지를 따라가고,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려고 맹세하고 다짐할 뿐이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제 고립되어 가는 세계정세 앞에 있어서 저희들은 하늘을 붙들고 최후의 절정의 싸움을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의 시대적인 사명이 이 한국에 있는 것을 알고 한국 땅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정성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하고 왔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일치단결하여야겠사오니,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바라옵니다. 최후의 결정을 다짐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이 정상에서 하늘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게끔 심신을 가누어 아버지 앞에 다시 맹세하고 다시 결의하고,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다시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어린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만 156일간 당신은 여러 가지 사연을 통하여 저희들이 가는 길을 증거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엮어 놓은 심정적 인연이 당신이 이 민족을 찾아오셨던 슬픔을 풀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제단이 되게 하시사 당신이 바라던 뜻이 성취되게 저희들을 인도하시옵소서. 민족과 수많은 교회가 아버지 앞에 책임하지 못했던 수치스러운 흠을 아버지께서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을 기념하는 모든 행사가 당신의 사랑과 승리의 요건이 될 수 있게끔 직접 주도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과 영계와 땅 위의 인류가 합하여서 통일의 세계를 성취하는 데에 협조하게끔 아버지께서 그 중심이 되시어 인도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그간 본국에 있는 여러분들이 우리 일행을 위해서 심신을 다 기울여 정성들인 것을 서신을 통해서 들을 적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고, 또 이 자리에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156일이라는 이 기간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기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일과 부딪쳤고, 여러 가지 사연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무사하게 돌아온 데 대해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힘 입은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나가게 되면 기필코 하나님의 승리가 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회노정에 대한 사연들은 딴 기관을 통해서, 혹은 여러 사람을 통해서 보고가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본국에 돌아와서 이 시간 새로이 느껴지는 바는 '하늘이여, 불신의 씨를 빼소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의 세상, 불신의 인간
우리 한반도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자랑해 왔습니다. 그 역사 가운데에는 선악의 투쟁의 역사가 계속되어 왔고,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과정에 선이 승리해서 우리 민족이 선한 결과에 처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선악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선이 승리적인 입장에 서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악이 우세할 수 있는 그런 때에 다다른 것을 우리는 지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 온 근본 동기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 거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민족이 정의라든가 하나님이라든가,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공적인 정의의 노정을 중심삼고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일관된 목적을 다짐해 나왔더라면 비참한 과거의 역사를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가는 도중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부정이라는 옳지 못한 것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세상의 실상인 것을 보게 될 때, 결과는 반드시 악한 불신의 결과로 열매 맺히는 실정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근본 동기는, 물론 우리 한민족에서 뿐만이 아니라 역사과정에서도 그러한 사실들이 연이어 가지고 발전돼 나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이것은 우리 인류의 시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해와는 참다운 신의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불신의 한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역사는 그릇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바입니다. 그 불신의 한 날로 말미암아 불신의 씨를 품고 불신의 역사를 엮어 와 가지고 불신의 세계로 발전해 나온 인류사인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信義)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
이러한 시점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 세상을 대해서 불신의 세계를 어떻게 제거시키고 신의의 세계를 어떻게 확립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된 한 사람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찾아진 그 한 날이 참되어야 되고 찾아진 그 한 날로부터 그 한 사람이 참되어야 됨과 더불어 그 사람의 생활이 참되어야 되고, 그 사람의 생애가 참되어야 되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상이 참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한사람에 한한 전통이 아니라, 하나의 가정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 하나의 국가 형성에 필요한 전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바라며 지도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4천년이라는 기나긴 불신의 역사를 하나님은 하나의 공의의 법도를 세워 가지고 신의의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고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세워 하나님이 섭리해 나온 역사적인 사실인 것을 우리들이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그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는 신의만이 전통이 되어야 하고 신의만이 인간 개개인의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신의로써 엮어진 사회와 신의로써 엮어진 소망을 가지고 참된 믿음의 중심이 되는 예수에게로 귀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바라는 신의의 기준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신의의 기준은 엇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그렇게 고이 길러 나왔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님을 대신해 오시는 예수를 맞아 가지고 그와 더불어 영원불변의 하나의 신의의 기틀로 세워지기를 바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의의 중심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님을 불신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한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참한 역사 가운데에서 예수는 죽음길을 갔지만, 예수가 끝까지 품고 나간 것은 무엇이냐? 불신의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신의의 한 실체로 남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싸움의 노정에서 최후에 맞은 것이 십자가의 길이요, 십자가의 도상에서의 최후의 운명길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의미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무대에 세운 예수를 중심삼고 새로운 신의의 역사를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에서 신의의 한 개인을 찾아 나오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가정과 종족적인 기대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비참한 순교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 끝날이라는 이 시점에 당도해 있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특별히 택한 제 2이스라엘의 선민권을 이어받는 하나의 특정 국가를 키워 나오시기에 노심초사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믿어 주기를 일삼았고, 세상 사람은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는 자리에서 믿어 주는 역사를 참고 참으면서 가려 나온 것이 기독교 문명권이요, 기독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독교문명권 내에서 하나님이 고이 축복해 주어 자유세계의 선두에 선 미국, 그 미국에게 하나님이 바라던 것은 미국이 기독교 역사를 찬란히 빛낼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세계적인 국가로서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고이 키워 왔지만, 지금 이때에 와 가지고 미국은 하나님이 바라는 입장과 반대의 입장으로 나가는 것을 우리는 또다시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의 인연을 따라 찾아오던 기독교 문명권의 결실체와 같은 이 미국마저도 하나님이 믿을 수 없는 불신의 결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불쌍한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의 세계 위에, 불신의 자유세계 가운데, 불신의 기독교 문화권 가운데 바라던 소망의 터전이 무너져 들어가는 이때에 있어서 과연 하나님이 신의의 입장에서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불쌍한 분인 것을 우리들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의 결실체가 되어야 할 통일교회
이러한 심정으로 미국을 역방하였고, 구라파 일대를 역방하면서 이 자리까지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김포 공항에 착륙하기 20분 전에 착륙 예고를 듣고 한국 땅을 보기 위해 상공에서 내려다 보았으나 우천(雨天)이었으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15분 지나서야 김포의 근방 지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100년 이상의 역사적인 터전 위에 하나님의 가호를 받아 어떠한 나라보다도 축복받을 수 있었던 이 나라, 이 땅이 어찌하여 신의의 자리에 서지 못하였으며, 불신의 한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또 금후에 있어서는 국민 자체나 주권 자체도 누구를 믿을 것이며, 누가 신의의 터전 위에 이 국가를 세울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나라의 장래의 운명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이와 같은 입장에 선 것도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귀일된 결과로서 이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섭리를 아는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나라의 반대를 받아 왔고, 수많은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아 왔습니다. 반대를 받아야 할 입장에서 반대를 받았다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세기적이요, 역사적이요, 천주사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민족과 수많은 교단은 불신으로 대했습니다.
2차대전 때의 그렇게 어려운 전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가호를 받아 폭탄세례를 받지 않았던 이 나라가 양단이 되어 가지고 피폐한 역사적인 운명을 거쳐왔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아다시피 불신의 운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우리의 사회적인 터전, 국가적인 터전, 종교적인 터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 이러한 나라와 종교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무리나마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기대가 되지 않게 될 때는 하나님이 불쌍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이제 자유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둘 수 있는 한 개인의 터전이 무너져 나갔고, 가정도 물론이요, 어떠한 특정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지금 그 기틀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불신의 씨를 심었던 역사가 하나님이 끌고 나오는 세계까지 불신의 결실을 맺고 마는 이 실정을 직시하는 차제에, 오늘날 이 자리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고 나오는 것은 불신의 결과가 아니라 신의의 결실을 바라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소망 앞에 과연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슬픔을 청산짓고 불신의 씨를 제거시키고 나설 수 있는 개인은 누구이며, 혹은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교단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늘이여, 그러한 무리는 몰리고 피폐해 있는 통일의 무리밖에는 없사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김포 공항에 내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김포 공항에 모인 여러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승이 돌아온다고 환성을 지르며 맞아 주는 환영도 좋지만 이 가운데 흐르고 흘러 나오던 역사적인 불신의 씨가 우리의 틈바구니에도 이 가운데에도 싹을 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스러운 세계사적인 운명 앞에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무리는 우리밖에 없다는 이런 결론을 짓고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과 나, 혹은 여러분끼리끼리의 그 사이에 역사적인 한을 가져왔던 불신의 씨가 싹트고 있다면 이 무리는 어디로 갈 것이며, 이 모임은 무엇을 위하여 모이는 것이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분석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느껴 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와 같이 환영하는 것도 좋고 축하하는 것도 좋겠지만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있어서 역사적인 불신의 씨를 제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신의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이 시간 참석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많은 무리가 모이는 것보다도 이 많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혹은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영원불변의 신의를 가지고 참다운 신념에 불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 믿어 주는 것도 물론이겠지만 내 스스로가 내 스스로를 확실히 하고 또 하나님이 확실히 믿어 줄 수 있는 자신을 다시 한번 확정짓고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결정지어 놓는 문제가 여러분과 내가 만나는 이 시간에 있어서의 중요한 책임인 것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의 씨를 제거하고 신의의 씨를 심으려면
여러분, 오늘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20여 년의 역사 가운데는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 하고 믿고 나섰던 수많은 사람이 흘러간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세히 알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책임을 지고 있는 나는 숱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맹세하는 사람도 보았고, 결의를 하는 사람도 보았고, 그 결의를 표시하기 위해 혈서를 쓰는 것도 보았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키겠다고 각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많은 결의도 했지만 한때의 불신의 씨가 그의 가슴속에 감돌고 휩싸게 될 때 하나님을 저버리기 일쑤였던 것을 많이 보아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남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받기를 신의를 가지고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불신의 인연을 통하여서 그 씨를 이어받았습니다. 뿌려진 씨는 기필코 거두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게 될 때는 그 불신의 씨가 여러분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불신의 씨를 제거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불리워졌고, 홍수와 같은 역사적인 이러한 사망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믿는 무리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불신의 씨를 제거시키고 영원한 신의의 씨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오늘날 신앙계에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통일의 무리, 혹은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이날을 축하하는 여러분 자신들 가운데에서 그러한 신의의 씨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환경에서, 평범한 자리에서 다짐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더불어 다짐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신은 사망과 더불어 출발되었기 때문에, 신의가 결정되기 위해서는 사망을 넘는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제시해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신의가 인연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의 역사를 이어받은 온 인류 세계 앞에 있어서 하나님은 종교를 세워 가지고 신의의 터전을 가려 나오기 위해서 언제나 생명을 걸고 다짐시켜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불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결정되어 있어야 하고 스스로가 불신의 씨를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탕감된 제물의 입장이 되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신의의 씨를 심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알아야야만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들, 그간 3차 세계순회노정을 위하여 정성들인 것도 고맙습니다만 이제 여러분과 나 사이에 있어서, 혹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어서,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있어서 삼각 관계를 중심삼고 신의로만 맺어질 수 있는 새로운 결정이 오늘부터 시작 된다면, 수많은 불신의 한의 역사도 방어할 수 있으며 민족적인 불신의 모든 수난도 방어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의 세계를 이룩하는 전통을 남기는 교회가 되자
이제 여러분 마음속에 신의의 씨를 심어 가지고 이 삼천리 반도에 있어서 통일교회 무리를 중심삼고 다시 한 번 신의의 씨를 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서 핍박을 받고 수난을 당하면서 신의를 다짐하던 그것은 하나의 피가 얼룩진 신의가 될는지 모르지만, 수난의 탕감노정을 지나고 수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수난시대 이상의 신의를 다짐하여 새로운 개인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 형성과 국가형성에로 향진(向進)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진다면, 여기서부터는 불신의 역사의 기틀을 갈아치우고 신의의 역사의 기틀을 새로운 무대에 심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다시 한 번 생사지경(生死之境)을 결정지어 가지고 과거를 청산짓고 오늘부터 신의의 씨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이날의 환영이야말로 세계사적인 환영이 될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환영이 뒬 것이요. 또 불신 가운데에서 절망하던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소망의 기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불신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한하시던 하나님 앞에 이것은 하나의 자랑의 터전이 되고 봉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출발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개인의 불신의 한의 역사를 걷어치워 버리고 신의의 하나의 조상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여기에 모인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너요, 나요, 그러한 무리의 모임이요, 그러한 무리의 종족이요, 그러한 교단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교단을 확대시켜 민족과 국가에로 전진하게 된다면, 역사시대에 불신의 한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으신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우리로 말미암아 그러한 시대를 잊어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불신의 시대 앞에서 절망을 대하고 선 하나님은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의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면, 여기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역사야말로 인간 세상에 길이길이 전통으로 남아져야 할 역사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활이 연장되어 새로운 세계의 문화 창건을 위한 현실적인 생활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생활의 터전이야말로 미래의 전통으로 고이고이 이어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과 땅 앞에 내세우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전통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에게 있어서의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자는 것입니다. 내 가정에 있어서의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의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그러하고, 우리 인류가 그럴 수 있는 때가 된다면, 육천년 한의 역사를 겪어온 하나님도 그러한 시대를 바라보고 비로소 한을 풀 수 있을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창조이상세계의 사랑의 동산이 출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내 자신이고 그 다음에는 내 가정이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내 교회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 교회가 어디로 가느냐? 불신의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더라도 신의의 방향으로 가야할 교회가 되어야 되고 그런 교회를 남겨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로서는 심각한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이 환영식에서 여러분은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다시 한 번 가다듬어 그 마음에, 그 환경에, 교회에 남길 수 있는 결의를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렇게 갖추지 못하고 단장하지 못한 한반도의 땅을 바라보면서, 어찌하여 당신은 이와 같은 비참한 민족에게 발걸음을 멈추어 찾아 오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인연을 가졌던고 하는 것을 생각하며 불쌍한 아버님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았습니다.
아버님, 이 삼천리 반도는 두 동강이가 나 있습니다. 북에는 원수들이 뒤끓고 있고 남에는 정의의 도리가 그 자취를 감추려 하는 이러한 현시점에 있어서, 당신이 바라보는 우리마저도 그 절개를 잃고 처신을 못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이 시간 저희들은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불신의 역사를 이어받은 원한의 역사를 걷어차고, 신의의 세계를 이루지 못한 불신의 세계를 제거시켜 버리고, 이제 다시 저희들은 몸 마음으로 다짐하고 하늘 앞에 맹세해야겠습니다. 용솟음치는 결의와 더불어 불신에 대해서는 무한한 증오를 느끼고 신의에 대해서는 새로운 통쾌감과 희망을 느끼면서 절개를 지킬 줄 아는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유세계를 지도해 나오는 미국이, 하늘이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택하여 200년 동안 축복을 해주었던 그 미국이, 금후에 저 미국의 갈 길이 암담한 것을 저는 보고 돌아왔습니다. 미국 땅에서 아버지 앞에 호소한 내용을 당신께서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이 미국 땅이요 자유세계이기 때문에, 우리만이라도, 나만이라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결의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각오하고 나섰던 싸움의 길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길을 거쳐와 156일간을 당신이 지도하는 길을 따라 구라파를 거쳐 이곳까지 다시 돌아왔습니다. 출발도 그러했거니와 돌아와서도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앞에 놓고 바라보게 될 때에 이들 앞에 안위(安慰)의 권고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함이 원통하고 분한 것을 느끼옵니다. 황폐한 이 땅과 식구들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이들을 바라보고 믿어야 하고 이 땅을 바라보고 믿어야 하는 아버지가 과연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얼굴을 돌이켰던 아버지의 그 심정을 과연 알 만하옵니다. 그러나 돌이켰던 얼굴을 눈물과 더불어 아픈 가슴을 억제하고 다시 돌이키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을 더듬어 보게 될 때, 아버지여 불쌍한 한민족을 다시 한 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여, 땅을 떠나지 마시옵소서. 이 민족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이 민족과 수많은 교단은 버리게 되더라도 이 민족과 수많은 교단을 위해 제물이 되고자 하는 통일의 교단만은 버려서는 안 될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님이여. 불신의 상처가 심한 당신의 마음 앞에 우리도 마찬가지의 무리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10년, 20년 두고 보아 주기를 바라며 이 시간 결의하오니, 아버지, 저희를 다시 한 번 믿어 주시옵소서. 불신의 자식이 되었던 과거를 회개하오니 신의의 자식으로 믿어 주시옵소서. 비록 얼굴은 거칠고 몸은 남루한 누더기를 걸쳤을망정 마음과 절개만은 잃어버리지 않았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보시사,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비참상을 하늘과 더불어 수많은 땅을 거치면서 눈물 흘리고 이 땅까지 찾아오게 될 때, 말 그대로 위로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권고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망하는 길을 가서는 안 될 것이요, 하늘이 저버리는 길을 가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붙들고 아침 저녁으로 당신 앞에 불신의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예고해야 되겠고, 싸움의 도상에서 배신,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에 저희들은 아버님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당신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았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내가 나를 확실히 믿어야겠습니다. 천지가 변하더라도 나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불신의 역사의 터전 위에 당신이 신의의 실체의 씨로 내세워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믿을 수 있고 일생, 백년, 천년까지 믿을 수 있는 무리가 남아 있다고 할진대는, 그 무리들을 통해서 하늘은 새로운 역사를 엮어 갈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아들부터 그러한 자리에 서기를 이미 맹세했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도 이 시간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를 맹세하오니, 아버님이여, 이들의 마음에 불신으로 말미암아 유린당한 모든 흔적을 제거시키고 당신이 빚어 만드신 신의의 씨를 그 가슴에 안고 신의의 터전으로 돌아가 신의의 세계를 향하여 달음질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다시 한 번 당신 앞에 부탁드리옵니다. 부디 부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이익을 위해 죽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죽음길에 있어서 어떠한 개인과 가정과 국가의 한계선 내에서 죽어 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국가를 넘어 세계 인류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죽음길을 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공의의 천국이 이 땅위에서 햇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기에, 오늘 여기 모인 저희들도 그러한 무리가 되기를 결의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도 이와 같은 자리에서 결의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자리에서의 만남을 감사하오며, 다시 한 번 아버지께서 서글픈 자리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과 은총으로 흠 많은 저희들을 덮으시사 미래에 상상하던 새로운 옥동자의 모습을 가꾸어 신의의 조상이 되고, 신의의 봉화를 들고 어두움의 세계를 밝힐 수 있음과 동시에 어둠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고, 정의의 군대가 될 수 있게끔 스스로 마음속에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각자 각자를 살피시어서 미래에 약속한 무리로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후손들이 되게끔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들은 여기에 서 있는 아들과 더불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적인 불신의 터전을 제거시키는 신의의 실체들로서, 영원하신 당신의 신의의 새로운 싹을 그 스스로 갖고 있음과 동시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틀림없는 자체들로서 아버님의 확고부동한 소망의 실체가 되겠사옵니다. 세상 나라가 이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로 바뀌어져 하늘의 안위의 터전이 남아지는 날에는, 이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문화가 창건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런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허락하신 뜻과 소원이 저희와 더불어 아버지의 신의의 터전 위에서 승리로 거두어지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신의의 조상들이 될 것을 마음으로 다짐하고, 모두 결심하기를 다시 한 번 바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 일어서서 만세 삼창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통일교회 만세! 만세! 만세! 통일의 용사 승리 만세! 만세! 만세! 참부모님 만세! 만세! 만세! 「참부모님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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