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공파적공쌍거법(共把寂空雙去法)
동서운학일간암(同棲雲鶴一間菴)
이화불이귀무이(已和不二歸無二)
수문전삼여후삼(誰問前三輿後三)
한간정중화염염(閑看靜中花艶艶)
임령창외조남남(任聆窓外鳥喃喃)
능금직입여래지(能今直入如來地)
하용구구구역참(何用區區久歷叅)
부설거사<浮雪居士>
공적(空寂)의 오묘한 법 함께 잡고서
구름 속에 암자 하나 짓고 사노라
이미 불이에 화하여 둘없는 곳으로 돌아갔거늘
뉘라서 전삼삼 후삼삼 물어오는가?
고운 꽃 바라보며 한가로이 졸고
창밖에 새 소리도 때로 듣는구려!
능히 곧바로 여래지에 들어간다면
구차하게 오래오래 닦아 무엇하리.
이 게송(偈頌)은 부설거사(浮雪居士)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오도송(悟道頌)이다. 압운(押韻)은 세 운통(韻統)으로 작게(作偈)다, 암(菴), 남(喃), 참(叅)은 하평성(下平聲) 담통(覃統)이고, 법(法)은 입성(入聲) 흡통(洽統)이고, 삼(三)은 거성(去聲) 감통(堪統) 운(韻)이다. 근체시(近體詩) 작시(作詩)로 보면 부합(符合)하지 않는다. 운통(韻統)은 그렇지만 게송(偈頌)이 오도송(悟道頌)인 만큼 문자(文字) 언어(言語)에 구애(拘礙) 되지 않는 것이 선문(禪門)게송이다. 부설거사(浮雪居士)는 우리나라 거사(居士) 중에 대표적인 거사다. 출생은 경주(慶州)이고 때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이다. 불국사(佛國寺)로 출가(出家)해서 원정(圓淨) 스님의 제자가 된다. 부설거사는 도반(道伴)들과 함께 오대산(五臺山)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려고 행각(行脚)을 떠나 전라북도 김제로 가던 중에 불심(佛心) 신심(信心)이 깊은 구무원(仇無寃) 불자(佛子) 집에서 유숙(留宿)하게 된다. 구무원거사(仇無寃居士)에게는 묘화(妙華)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다. 그런데 부설거사를 보자마자 말문이 열렸다. 전생(前生)에 숙연(宿緣)인가? 부설거사 법문을 듣고부터는 부설거사와 부부인연을 맺겠다고 구무원 거사 부부에게 졸라된다. 이런 난처할 때가 있나? 불심이 깊은 두 부부(夫婦)는 출가수행(出家修行)하는 스님을 파계(破戒)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걱정이 태산이었다. 묘화가 스님과 부부인연을 맺지 못하면 죽겠다고 목을 매니, 어쩔 수 없이 부설거사(浮雪居士)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 사정(事情)을 말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환속하지 않으면 묘화가 죽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영조 영희 도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묘화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두 도반을 보내면서 환속(還俗) 결심(決心)을 말한다. 도(道)는 먹물에도 속 복에도 있지 않고, 도는 화려한데도 조잡 한데도 있지 않다. 모든 부처님의 방편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道不在緇素 道不在華野 諸佛方便 志在利生>라고 환속게송(還俗偈頌) 말하고, 묘화와 부부연(夫婦緣)을 맺고 아들(登雲)과 딸(月明)을 두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날 옛 도반인 영희(靈凞), 영조(靈照) 스님이 부설거사(浮雪居士) 집을 찾아오게 되었다. 환속(還俗)한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어떻게 지내는지 측은한 마음으로 찾아왔다. 부설거사(浮雪居士) 설화(說話)에 보면 아들딸이 다 성장한 후로는 부설거사는 부인 묘화보살(妙華菩薩)에게 부탁하기를 이젠 환속(還俗)한 후로 수행(修行) 정진(精進)을 하지 못했으니, 지금부터는 용맹정진(勇猛精進)하려고 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방해가 되니, 중풍(中風) 중병(重病)에 걸렸다고 소문을 내고 불철주야(不撤晝夜) 6년간 정진을 하여 득도(得道) 깨닫게 되었다. 도안(道眼)이 열리고 난 후로 두 도반(道伴)이 찾아오게 된다. 두 도반과 함께 그동안 수행한 수행력을 겨뤄보자고 하여 부설거사(浮雪居士)가 병 세 개에 물을 가득 담고 줄에 매달고 각자 병을 쳐서 병이 깨져도 병 속에 물이 쏟아지지 않게 하자고 제안을 하고, 각자 병을 힘껏 쳐서 깨뜨렸다. 영조(靈照), 영희(靈凞) 스님의 병에 물은 다 땅바닥에 쏟아지고, 부설거사(浮雪居士) 병에 물은 공중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는 선화다. 환속한 부설거사 도력이 두 도반(道伴)보다 우위(優位)에 있음을 증명했다는 선화(禪話)다. 부설거사가 환속할 때 말한 도(道)는 승복(僧服)에도 속복(俗服)에도 있지 않다고 한 말이 입증(立證)된 셈이다. 그리고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 방편(方便)은 중생(衆生)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는 것도 입증이 된 셈이다. 만약 그때 부설거사가 환속(還俗)하지 않았다면 묘화(妙華)가 말대로 죽었다면, 사람 하나도 살리지 못한 편협(偏狹)한 마음으로 수행(修行)을 해서 어떻게 중생을 이롭게 할 수가 있겠는가이다.
화옹은 45년전에 부안(扶安) 내소사(來蘇寺) 산내(山內) 암자(庵子)인 월명암(月明庵)을 가보았다. 그곳 암자는 사불(四佛)이 나온 곳이라 해서 사불선원(四佛禪院)도 있다. 부설거사(浮雪居士) 식솔(食率) 네 명이 다 성불(成佛)했다는 기록이다. 묘화보살(妙華菩薩)도 아들 등운(登雲)도, 딸 월명(月明)도 다 득도(得道)했다고 전한다. 부설거사(浮雪居士)도 묘화보살(妙華菩薩)도 세연(世緣)이 다되어 입적(入寂)하고, 두 남매(男妹)만 암자에서 살게 되었다. 신라불교(新羅 佛敎) 구전(口傳) 설화(說話) 부록(附錄) 자료집 황패강(黃浿江) 저(著) 373페이지를 보면 월명암 암자(庵子)에 마흔이 넘은 부목(負木) 총각(總角)이 함께 살았다. 거사와 보살 두 어른이 세상을 떠나자, 18세 꽃같이 아리따운 월명(月明)을 보고 노총각이 그만 상사병(相思病)이 났다. 시름시름 앓던 노총각이 하루는 월명(月明)에게 하룻밤만 자자고 통 사정을 했다. 그래서 등운 오빠에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등운 오빠 어쩌냐 정 그러면 상사병으로 죽으면 되겠느냐? 하룻밤만 자주라고 했다. 부목총각(負木總角) 하룻밤 월명과 잤다. 등운 오빠가 아침에 월명에게 어제밤 부목과 잔 느낌 감정이 어떻던고? 물었다. 월명이 하늘 허공에 장대 휘젓는 것 같았소, 했다. 부목 총각 하룻밤 자고 나니, 또 색정 욕정이 솟아나서 날마다 월명에게 하룻밤만 더 자자고 통사정이다. 월명이 등운 오빠에게 또 물었다. 오빠 어찌하면 좋겠소? 정 그러면 어쩔 수 있겠느냐? 하룻밤만 더 자 주거라, 월명이 부목과 하룻밤 잤다. 등운 오빠 아침에 또 월명에게 어제밤 어떻드냐고 물었다. 월명 물속에 장대 후빈 격이었소. 부목 총각 이쯤 해서 그만두면 좋지만 한번 색정을 맛본 총각이라 또 월명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딱 한 번만 더 자자고 졸라된다. 월명이 등운 오빠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이번에는, 마지막이다. 딱, 한 번만 더 자주어라. 오빠 말 듣고 월명이 부목과 하룻밤 또 잤다. 새벽에 등운 오빠가 월명에게 또 어제밤 잔 기분을 물었다. 월명이 어제 밤엔 진흙에 작대기 후비는 격이었소. 월명이도 색정에 빠져들고 있다. 처음에는 허공에 장대 후빈 것 같다고 했고, 두 번째는 물속에 장대 후빈 것 같다고 하였는데, 세 번째는 진흙에 작대기 후빈 것 같다고 한 것은 색정의 맛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렇게 놔두면 수행은 물 건너간거나 다름이 없기때문에 등운(登雲)은 단단히 결심하고 월명아! 오늘 저녁에 부목(負木)에게 화로(火爐) 불을 좋은 숯을 담아달라고 하고 부목이 아궁이 깊숙이 숯을 낼 때 발로 밀어 염라국(閻邏國)에 보내라 했다.
월명이 오빠 말을 듣고 부목(負木)에게 좋은 숯불을 화로에 담아 달라고 하고 부목을 아궁이에 넣어 버렸다. 부목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서 등운이 월명에게 이르기를 부처님은 불살생계(不殺生戒)와 불음행계(不淫行戒)를 설하셨다. 우리는 부목을 저세상으로 보냈으니, 이젠 성불(成佛)을 하지 못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등을 맞대고 앉아서 성불(成佛)하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앉아서 죽을 때, 까지 정진(精進)하자 하고 남매는 용맹정진(勇猛精進)에 들어갔다. 이때 저승에 간 부목이 염라대왕 앞에 갔다. 너는 인간(人間) 세상(世上)에 가서 무엇을 하다 온 놈이냐? 예, 염라대왕님 저는 억울 합니다. 평생 노총각으로 부설거사 절에서 부목으로 나무꾼 노릇만 하다 왔습니다. 그럼 지는 죄도 없이 착하게 살았단 말이냐? 예, 절 나무만 하고 일만 하다 왔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네 놈은 올 때가 아닌데 왔으니 묻는다. 정말 지은 죄가 하나도 없느냐? 그것도 죄가 됩니까? 부설거사 딸 월명(月明)과 딱 세 밤 잤을 뿐인데, 그 오빠 등운이란 놈이 저를 아궁이 불구덩에 쳐넣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네놈 말만 듣고 처벌을 할 수가 없으니, 저승사자들은 남섬부주 월명암에 가서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을 잡아오라. 명이 떨어졌다. 저승사자가 등운 월명 처소에 왔으나 보이지 않았다. 삼천대천 세계를 다 뒤져 찾아보아도 등운과 월명은 찾을 수가 없어서 저승사자는 빈손으로 염라국에 가서 등운, 월명을 사바세계를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40년 전에 불교 설화 부설거사 가족 나오는 줄거리를 화옹이 실감 나게 윤색을 했다. 부설거사 설화는 양면성(兩面性)을 지닌 설화다. 부설거사는 출가했다가 환속 후에 세속 생활을 하면서도 도를 깨달았다, 생활불교를 제창한 것이다. 부설거사의 아들, 딸들은 세속에 살면서도 철저하게 출가(出家) 수행자(修行者)의 면모로 용맹정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행에 장애가 되는 부목을 저승으로 보내면서까지 속단(俗斷)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염라국 사자 귀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성불(成佛)했다는 선화(禪話)다. 부모(父母)는 생활불교(生活佛敎)를 자식(子息)들은 출가불교(出家佛敎)를 제창한 선화(禪話)다.
부설거사가 도반 스님들에게 도력을 겨루고 나서 설한 게송을 옮겨 보면 마음 법문 자귀의(自歸依) 법문을 설파(說破)하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소리 없음을 들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분별과 시비를 다 놓아버리고 다만 마음 부처를 보고 스스로 귀의해야 하리라<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分別是非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부설거사는 많은 글과 게송을 남겼다. 팔죽시(八竹詩)와 사허부구시(四虛浮漚詩)는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명문(銘文)이다. 팔죽시(八竹詩)와 사허부구시(四虛浮漚詩) 보면,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불면 부는 대로 물결치면 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사는 형편대로,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보이는 그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세상 물건 사는 대로 파는 대로 그때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러면 그런대로 그렇다면 그런대로 세상 따라 살자.<茶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粥粥飯飯生此竹 是是非非看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또 사허부구게(四虛浮漚偈)도 보면 명시(名詩)다. 거느린 처자 권속 삼대 밭 같고, 쌓여진 금은 옥백 산더미 같아도, 임종에 당하여 외로운 혼만 떠나가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날마다 힘들여서 살아온 세상 길에 벼슬길 올랐어도 머리는 백발이라, 염왕은 벼슬과 영화를 두려워 않거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재주가 뛰어나서 말로는 요설 변재 천 글귀 시를 지어 만호 후를 경멸해도, 다겁 생에 아만의 근본만 늘게 하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가사 비구름 몰아치듯 설법을 잘하여 하늘 꽃 감동하고 돌멩이 끄덕여도, 껍데기 지혜로는 생사를 못 면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로다.<妻子眷屬森如竹 金銀玉帛積似邱 臨終獨自孤魂逝 思量也是虛浮漚 朝朝役役紅塵路 爵位纔高已白頭 閻王不怕佩金魚 思量也是虛浮漚 錦心繡口風雷舌 千首詩輕萬戶侯 增長多生人我本 思量也是虛浮漚 假使說法如雲雨 感得天花石點頭 乾慧未能免生死 思量是也虛浮漚> 오늘은 우리나라 대표적(代表的) 환속거사(還俗居士)인 부설거사(浮雪居士) 가족 선화(禪話)와 부설거사(浮雪居士) 시세계(詩世界)를 반추(反芻) 해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