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이웃 할머니께서 부르셨습니다.
보일러 온도조절기 알려드리고 옛날 이야기 들었습니다.
오늘은 24년생 쥐띠 신랑 이야기입니다.
신랑이 남들이 겪는 고생은 다 겪으면서도 무던하게 살았다고요.
1. 남편은 반팔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 일입니다. 일제 해방 직후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한겨울 바닷바람에 동상을 입었습니다.
치료한 자리가 얼룩덜룩해서 여름에도 긴팔만 입었습니다.
2. 발목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해군 제대하고 국내 정세가 불안하니 살려고 경찰이 되었습니다.
이웃에 공무원 공부하는 형제가 있어 그 덕에 공부했습니다.
그 사람은 면장으로 은퇴했고 남편은 경찰 수사과장까지 했습니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태백산 초소에서 한 달 넘게 지냈습니다.
신랑 없이 지낼 때, 집 뒤 철도관사 자리에 군경 막사가 있어서 밤이나 새벽에 군화 소리가 척척 나면 '공비가 왔구나' 하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공비들이 울진 고포해변으로 들어와서 삼척 가곡을 넘어 철암 매산골로 넘어왔습니다.
거기서 군경과 공비 사이 싸움이 났는데 누가 총을 맞고 실려 갔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신랑이었습니다. 총알이 발목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장성병원에서 발목을 잘라야 한다는 걸 경찰서장이 막은 덕에 치료해서 나았습니다.
3. 총알이 무릎에 스쳤습니다.
어디 경찰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한 사람이 성이 나서 총을 빼들었습니다.
모두 겁을 먹고 도망갔는데 신랑이 그 뒤로 살며시 들어가서 총 든 손목을 내리쳤습니다.
총알이 신랑 무릎을 스쳤습니다. 화약 감입으로 발부터 허벅지까지 한 해 치료했습니다.
출근할 땐 꼭 경찰 정복을 입고 사무실에서는 파자마 차림으로 지내면서 약을 발랐습니다.
남편이 지은 죄가 없어서 그런지 깨끗하게 나았다고 합니다.
4. 국립묘지에 누웠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한테 국가보훈처에서 받은 공문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떠나면 당황하지 말라, 정한 자리가 있다.'고요.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셨습니다. 그 옆에 빈 비석이 있습니다.
"엄마, 누구 자리인지 알아요?" 딸들이 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아무 말 않고 끄덕이셨습니다.
신랑 이야기, 아들딸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 손자 이야기...
그 모든 추억과 사진을 가지런히 놓아 두신 진열장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홍명계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