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원생금(元生金) - 미리 아시고 미리 부르시고
4. 통일교회에서 받은 은사
1 도학 연구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했다. 집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기도 생활을 하게 됐다. 그날 밤 남편의 몽시에 크고 아담한 양옥집 앞에 장교복을 입은 키도 크고 뚱뚱한 분이 서 계시고 남편도 그 곁에 나란히 서 있는데 교황이라고 생각되는 분이 그 앞에 와서 절을 하며,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할 때 ‘이 분에겐 무언가 큰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2 내 몽시엔, 손이 나타나 뱃속에서 나온 태를 꼭 쥐고 있었는데 “저게 접니까?” 하였더니 “어린애 태다.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자라다가 세상 밖에 나오면 태를 자르듯이 너도 잘라 버리고 나오너라! 도학 연구소는 이제 적그리스도가 다 되었다”라고 하였다.
3 그래서 “그럼 나는 어디로 갑니까?” 하고 또 물었더니 “문화회관으로 가라. 거기에는 땅 위에서 천국을 이루어 영원한 천국까지 가는 길이 있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4 그때에 된 일이나 받은 계시는 너무도 많아 다 적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특히 다른 신령한 분들이 우리 집에 대하여 받은 계시 또는 증거가 더 많았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통일교회를 찾아보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부흥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5 그때 또 묘한 일은 같이 믿다가 함께 나온 부인이 있었는데 잡지책 하나를 들고 와서 “김선생님! 이것 보시고 통일교는 가지 마시고 천주교로 나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6 남편은 그때 이런 말씀을 하였다. “내겐 그런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 근성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습관 때문인지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모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7 나는 내 발로 걸어가서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어서 판단하겠으니 미안하지만 그 책 도로 가져가시오” 그러나 그는 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래서 “두고 가시오, 내가 볼 테니……” 하고 남편이 말을 하자 그 부인은 가버렸다.
8 남편은 그날 밤새워 보시더니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책을 바깥에 팽개치며 보기 싫으니 당장 갖다 버리라고 하였다. 그날 우리는 부흥회 장소를 찾아갔다. 남편과 나, 그리고 부인 식구 두 명과 함께 종로 예식장에서 이틀간 말씀을 듣게 됐다. 다음날부터는 명동 문화회관으로 옮겨 나머지 강의를 듣고 난 뒤 몽시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9 강의를 들은지 5일 만에 입회원서를 냈다. 첫 예배는 1958년 12월 21일, 일요일에 보았다. 그때 마음은 꼭 신방에 드는 신부의 마음이었고,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님을 만날 때 느끼는 그런 두근거림과 같았다. 나는 선생님을 뵙는 순간 ‘이분이 어떤 사명을 갖고 오신 분이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어 눈물이 흘러내려 감당을 못했다.
10 말씀하시는 가운데 선생님에게서부터 햇살 같은 빛이 내게로 막 밀려왔다. 그때에 남편도 세상에 태어나서 신앙을 가진 후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단다. 남편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써달라’라고 기도하기 3년, 그동안 모진 핍박이 나를 몰아쳤다.
11 남편, 자식, 형제 그리고 교우들이 일면 나의 신앙길에 방해도 되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묵묵히 참고 견디며 항상 살아 있는 믿음을 갖게 했다. 핍박이 있을 때마다 이제 또다시 시작하는 거다, 아니 하나님 앞에 더욱 굳건히 서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한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