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굿간에서 시작된 천국
말 씀: 누가복음 2:1-20
설교일: 2023. 12. 25(성탄절 예배)
시골의 어느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아멘
그런데 이 설교를 들은 한 여집사님이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에 나와서 아주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 목사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 우리 집에 산이 하나 있는데, 아무 쓸모없는 돌산입니다.
제발 그 산을 옮겨 주셔서, 밭이 되게 하시고, 우리 집 양식이 부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목사님이 그 기도를 듣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 기도의 제목대로 돌산이 옮겨진다는 것이 보통일입니까?
그래서 그날부터 목사님도 함께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집사님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얼마 후 그 집사님이 사택으로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 정말 산이 옮겨지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어요!”
그리고 그 사연을 설명하는데,
그 산의 돌과 모래를 쓰려고 어느 레미콘 회사가 방금 집사님과 계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산이 없어지고 얼마는 도로가 되어 보상도 밭고,
얼마는 택지가 되어 집도 짓고, 얼마는 기도대로 좋은 밭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완전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 예수님 탄생 과정이 그렇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 말씀대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하여 아이를 미국에 가서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가 아무 연고도 없는 베들레헴에 가서 애를 낳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만삭이 된 몸을 이끌고 그 먼 여행을 할 이유도 없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호적명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말씀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절묘하게 시간을 맞추어 호적명령을 내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신고를 하러 베들레헴으로 가고,
그리고 거기서 미가서 예언대로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방법이나 과정 같은 것들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이 옮겨지기도 하고,
오늘 말씀대로 나사렛에 살고 있는 마리아가 갑자기 베들레헴에 가고,
그래서 미가서의 말씀이 성취되는 놀라운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냥 말씀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취요, 하나님의 약속은 곧 이행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6-7절을 보십시오,
(눅2:6-7)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아멘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왕궁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어느 부자의 저택에서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인정하는 마굿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지저분하고 죄 많은 곳에 오시고, 또 그런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보면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깨끗하게 산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모두가 다 믿어야 합니다.
스스로 의롭고, 깨끗하다고 하는 사람도 믿어야 하고,
죄가 많아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도 믿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그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그의 가정도 다스리시고, 그가 사는 세상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마굿간과 구유는 꾸민데가 없는 곳입니다.
소박한 곳입니다. 겸손한 곳입니다.
성령은 이런 소박한 마음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이 임하시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임하시면 천국은 그 사람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구유라는 말이 세 번씩이나 나옵니다.
7절을 보면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했고,
12절을 보면 “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했고,
16절을 보면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을 세 번씩이나 강조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토록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만삭의 마리아에게 작은 방하나 양보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왔다는 거지요!
그들은 먼저 왔다거나 이미 예약하고 왔다는 기득권을 주장하고,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가난한 임산부를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 놓으시고,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지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대조 되는 모습입니까?
그렇게 예수님이 하늘보좌에서 마굿간의 구유에까지 낮아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높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려면
우리도 겸손하게 낮아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음 말씀하십니다.
“나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느니라”
이 말씀은 스스로 낮추고 겸손해야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배푸시고,
반면에 스스로 높이고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10-11절을 보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
“곧 그리스도시오 주시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구원자의 자격을 주어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그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비록 말 구유에 누우셨지만, 그 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두움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주” 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비록 마굿간에 누워계시지만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온 백성을 구원할 구주이십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온 백성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이 지금 마굿간 구유에 뉘여 있습니다.
이것이 목자들에게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표적입니까?
예수님이 자기가 만드신 자기 땅에 오셨고, 온 백성의 구주로 오셨음에도 누구하나 기뻐하고 찬양하고 환영하지 않았다는 표적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 하였으나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1-12) 아멘
그렇습니다. 온 백성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거부 현상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사람들의 냉대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는 수 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은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늘 성탄절을 기점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같은
모든 환난이 물러가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