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죽자고 혁명했다…5·16 설계자, JP의 고백 (1)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014년 10월부터 '김종필 증언록'을 위한 인터뷰를 했다. 그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 반세기 먼 세월이 어제 같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불편하다. 왼손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중앙포토
JP(김종필)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유골함이 무덤에 들어간다. 외아들(김진)이 멈추게 한다. JP는 한쪽 손으로 유골함을 어루만진다. 눈물이 뺨을 적신다. 포근한 겨울. 그의 안경 너머는 언덕 위다. 백로가 날갯짓을 한다. 2015년 2월 25일 부인 박영옥 여사의 하관식이다.
유택(幽宅, 묘소)은 한 해 전 JP가 마련했다. “내가 먼저 가려고 준비했는데···.” 그 언덕에 다섯 형제들도 잠들어 있다. 고향인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그 선산에 꾸민 가족묘원이다.
반공 국시 처음 본 박정희 “이거 나 때문에 썼겠구먼” (2)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5·16 군사혁명은 구질서를 붕괴시킨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의 지휘자라면 JP는 5·16의 설계자다. JP의 현대사 증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밤이 깊어가던 1961년 5월 14일(일요일). 나는 아내에게 군복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석 달 전 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하극상(下剋上)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면서 벗어뒀던 카키색 군복이다. 중령 계급장은 달려 있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나는 이 군복을 입고 먼 길을 나설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가슴 온 구석을 채웠다. 이미 벗었던 군복을 다시 꺼내 들 정도로 나는 그해 그 봄, 그렇듯 결연(決然)했다. 사생(死生)의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절박함이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1961년 8월 최고회의 회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김신 공군참모총장, 박정희 의장, 박병권 국방장관(테이블 건너). 박정희 뒤는 김종필 정보부장(사복 차림), 박병권 뒤는 장성환 공군참모차장.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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