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왕의 초대 (35)
깨달음을 이루신 후 2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 일이다.
아들 싯닷타가 위대한 성자가 되고,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는 소식이 멀리 까삘라까지 전해졌다.
허전한 가슴을 기약 없는 눈물로 채우던 까삘라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아버지의 기쁨은 더할 수 없었다.
‘나의 아들이 친족과 나라를 버렸다’ 는 생각에 누구보다 괴로워하던 숫도다나왕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사꺄족의 명예를 세상에 드날린 아들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모든 이들에게 찬탄과 존경을 받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가슴속 응어리진 슬픔을 풀어주길 고대하였다.
숫도다나왕은 라자가하로 사신을 파견하였다.
“아비는 네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뜻을 이루었으니 이젠 까삘라로 돌아오라.”
기대와 달리 자랑스러운 아들은 한걸음에 달려오질 않았다. 파견한 사신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다시 사신을 아홉차례나 파견하였지만 남쪽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북쪽을 등지고 앉은 부처님은 좀처럼 돌아앉지 않으셨다.
샤꺄족의 태자 싯닷타를 초청하러 간 사신들은 위대한 성자 부처님을 만나고 나서는 모두들 출가해 버렸다.
그들은 거친 베옷과 진흙 발우만으로 행복해하는 비구가 되었던 것이다. 기대로 절망으로 바뀐 숫도다나왕은 사명을 잊지 않을 믿음직한 사람을 찾았다.
‘사꺄족의 안위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깔루다이(Kaludayi)라면 이 일을 충분히 수행하리라.
어린 시절 흙장난하며 자란 친구의 말이라면 태자도 귀를 기울이겠지.’
숫도다나왕은 깔루다이를 불러 명하였다.
“그대는 태자와 형제나 다름없다. 이 일을 할 사람은 그대밖에 없다. 나에게 약속해다오. 태자를 꼭 데려오겠다고.”
누구보다 왕을 잘 아는 깔루다이였다. 슬픔이 가득한 왕의 눈빛은 명령이 아니라 애원이나 다름없섰다.
처진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숫도다나왕의 옷자락을 받쳐 들며 깔루다이는 맹세하였다.
“제가 꼭 모셔오겠습니다.”
라자가하에 도착한 깔루다이는 강물처럼 성을 드나드는 비구들의 행렬에서 옛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를 쫒아 죽림정사로 들어섰지만 에워싼 비구들은 좀처럼 부처님에게 다가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칠 일 동안 꼬박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다. 부처님의 모습은 커다란 코끼리처럼 위엄이 넘치고, 부처님 목소리는 보름달처럼 밝고 상쾌했다. 깔루다이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고 있었다.
그제야 부처님은 옛 친구에게 손짓하셨다.
“가까이 오리, 깔루다이, 부왕께서는 안녕하신가?”
“부왕께서는 늘 아들 걱정만 하십니다.”
“그대는 나의 가름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닙니다. 저 또한 기뻐하고 있습니다.”
깔루다이 역시 비구가 되었다. 세간의 즐거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몸소 맛보고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숫도다나왕과의 약속도 잊지 않았다. 늘 남쪽을 향해 앉던 부처님이 간간히 북쪽을 향해 돌아앉기 시작했다.
기회를 엿보던 깔루다이는 한가한 시간에 부처님께 다가가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아래 예배하고 여쭈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말하라, 깔루다이.”
시 쓰는 재능이 뛰어난 깔루다이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노래하였다.
태어나 태를 묻은 곳
승리의 땅 까삘라
낳아주신 아버지 숫도다나
황금같은 야소다라와 심장 같은 라훌라
한 줄에 꿰어진 꽃목걸이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기다리는 이들
너무나 보고 싶은 당신을
오래 오래 그리워하다
저더러 전하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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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아침이면 달콤한 이슬 맺히고
저녁이면 시원한 북풍이 부는 때
당당하신 분이여, 로히니강을 건너소서
사꺄족과 꼴리야족이 당신 모습 보게 하소서
부처님은 말이 없었다. 깔루다이는 애달픈 곡조로 거듭 노래하였다.
농부들 밭을 갈고 씨앗 뿌리며
풍성한 수확을 꿈꾸는 계절
거친 물살 헤치고 바다로 가는 상인들
항아리 가득 보석을 담고 돌아올 꿈을 꿉니다.
지혜의 주인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부디 저의 꿈을 이뤄주소서.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촉촉해진 깔루다이의 눈가를 바라보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까삘라로 가리라.”
깔루다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삼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 부처님
붉은 연꽃 같은 두 발을 옮기시면
울퉁불퉁 먼지 나던 험한 저 길도
우리 님 편히 가시게 고운 모래 깔리리라
깔루다이는 곧장 까삘라로 향했다. 그는 맨발로 달려 나오는 숫도다나왕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칠 일 뒤 부처님께서 까삘라로 오십니다.”
“오 내 아들이 드디어 돌아오는구나, 싯닷타는 어떻게 지내고 있더냐?”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분, 천이백오십 명의 제자를 거느린 그분의 위엄과 지혜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습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그분을 위해 시원한 대나무 숲에 정사를 지었고 라자가하 백성 모두가 그분께 예배하며 공경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린 숫도다나왕은 이내 깔루다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았다.
“깔루다이, 너도 사문이 되었느냐?”
“저도 부처님의 가름침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못마땅한 표정을 거두지 않는 숫도다나왕과 사꺄족 사람들에게 깔루다이는 생기 있는 음성으로 노래하였다.
인간세계에서 온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
바른 선정에 들어 평안을 즐기시는 분
일체법을 초월한 집착 없는 참된 분
사람들은 물론 신들조차 예배하는 분
일체의 탐욕에서 해탈을 즐기시네
................
................. 중략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에 살면서도
어떤 욕심에도 물들지 않는 분
새하얀 저 연꽃과 같답니다.
부드러운 향기에 사랑스런 빛깔
더러운 물에서 나고 그 물에서 자라도
물과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