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씻김소리
제20회 작품상
채선후
어둠이 죽었다. 간밤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며칠 흐리더니 바람이 분다. 이른 새벽녘인데 바람은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처럼 분다. 바람소리를 듣는다. 휘이익 사르르. 지전이 흔들릴 때에도 이랬다. 바람은 죽음을 아는가 보다.
진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씻김굿을 한다. 망자의 넋을 씻어 주어 이승을 털고 저승으로 잘 가라 빌어주는 굿이다. 지전은 씻김굿 할 때 쓰는 무구巫具*다. 당골네(무당)가 지전을 양 손에 들고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춘다. 창호지로 만든 것인데 길게 늘어진 것이 내가 보기에는 먼지털이처럼 생겼다. 당골네가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스르르 흔들렸다. 오늘 바람소리는 지전이 흔들리는 소리다.
* 굿할 때 필요한 도구. 굿악기, 무복, 지전, 신칼, 넋당석, 질베, 손대, 등등.
굿이라 해서 어떤 이는 무속신앙이다, 미신이다, 상스럽다 하며 뭔가 잘못 전해진 전통인 양 낮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전통은 긴 세월 속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됨을 하늘과 땅, 산과 물, 바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터득해 얻은 깨달음이 삶에 배어 이어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전통을 옳다 그르다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분명 긴 세월 동안 몸으로 터득하여 얻은 깨달음은 머리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늘, 땅, 산과, 물, 바람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는 우리에게 있다. 씻김은 이제껏 고되게 살아온 몸과 영혼을 위한 맑은 휴식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말이다. 죽은 망자의 넋을 왔던 곳으로 다시 가라고 영혼의 때를 씻겨 준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몸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는다. 넋을 물이 아닌 소리로 씻겨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철학이며, 생전 풀지 못한 고苦를 풀어 주는 당골네의 소리는 얼마나 큰 자비행慈悲行인가.
생사고락生死苦樂이라는 말이 있다. 넋이 더럽다는 것을 불교에서는 ‘고’苦라 한다. 흔히 고를 마음이 괴롭다는 의미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고는 순방향이 아닌 역방향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말한다. 순방향의 감정은 따뜻하고, 착하고, 행복하고, 보람되고, 즐겁고, 유쾌해서 나와 내 주변에게 좋은 감정을 낳게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역방향, 즉 고는 차갑고, 나쁘고, 들뜨고, 질투, 불만, 두려움, 무서움, 한 등 부정적인 감정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 하거나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고가 된다. 만약 잘 가고 있거나, 잘 살고 있다면 맑게 산다고 한다. 또, 즐겁다 하여 락樂이라 한다. 곧 순방향인 락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왔던, 원초가 되는 길은 어디인가. 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길게 수 십 년 책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겨우 건진 몇 줄 지식을 우리 조상은 너무도 쉽게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가지 못하고 있는 이 세상은 고의 세상이다. 그래서 고였던 이 세상을 원래 왔던 저 세상으로 잘 돌아간다는 것을 고를 풀었다 하고, 또 고를 씻긴다 하여 순방향인 ‘맑음’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즉 씻김굿은 가지 못하고 있던 길, 넘어 서지 못하던 이 세상인 고의 길을 잘 벗어나 원래 왔던 길로 잘 되돌아가라고 마음을 다해 빌어 주며, 괴로움을 달래 주고, 못다 푼 한을 풀어 주는 멍석의 장이 되는 것이다. 진도의 씻김굿에서는 당골네의 소리로 판을 편다. 당골네 소리에 의해 씻겨 씻김이 되는 것이다.
씻김굿에는 여러 굿거리 마당이 있다. 각 마당을 ‘거리’라 하여 굿에서는 굿거리라 부른다. 손님굿은 손님굿거리가 된다. 굿을 시작하기 전에 망자의 가족이 제사를 지내고 나면 초가망석*이라 해서 망자의 조상을 위해 소리를 하고, 손님굿, 다음은 제석굿을 한다. 제석은 살아 있는 자손의 행운을 빌어주는 굿거리이다. 제석굿거리에서 당골네는 머리에 고깔을 쓴다. 본격적인 씻김 마당은 넋 올리기를 하며 시작된다. 넋은 사람의 혼을 나타내듯 한지로 남자나 여자 모양으로 오려 만든 무구다. 당골 네는 넋을 누군가의 머리에 올려놓고 소리를 한다.
* 이경엽, 논문<진도 씻김굿 무구의 특징>, 『진도 씻김굿의 무구』,국립남도국악원, 2010, 10쪽
당골네가 소리를 한다. ‘넋이로세 넋이로세 넋인 줄을 몰랐더니 오늘 보니 넋이로세. 사적이나 있건마는 우리 같은 초로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육진장포 일곱상하로 질끈 묶어 소방산 대뜰 우에 덩시렇게 올려매고 북망산을 행할 적에 산토로 집을 짓고 송죽을 울을 삼아 두견 접동 벗이 되어 산은 첩첩 밤 깊은데 처량한 것은 넋이더라.’ (채정례*, 진도씻김굿 소리 중에서)
바람이 분다. 넋의 바람이 분다. 당골네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바람이 인다. 지전이 흔들리면서 당골네의 소리는 점점 망자가 되고 있다. 큰놈, 작은 놈, 시바가 술을 올리고 절한다. 동네 사람 누군가가 절한다. 남은 거 다 씻겨 드리니 모두 털고 가시라. 넋이 올라가면 씻김굿을 하고 고를 풀고 길을 닦아 망자의 넋을 보내는 것으로 씻김굿은 마무리 된다.
당골네의 소리는 서럽다. 갔어야 되는데 가지 못한 서러움, 했어야 되는데 하지 못한 서러움, 말했어야 되는데 하지 못한 아쉬움의 소리는 서럽다. 서러운 세상, 서럽다 말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당골이 고한다. 땅에 맺힌 아픔을 소리로 고하고, 그 땅 위 하늘에 고하며, 다녔던 길에 고하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고한다. 살면서 맺힌 고를 풀어 주고, 고苦로 힘들었을 넋을 씻겨주는 씻김굿을 어찌 하찮다 하겠는가.
어둠이 죽은 오늘도 바람은 분다. 씻김굿 하듯 분다. 진도의 바람은 매일 맞이하는 죽음 속에서 또 다시 태어난다. 바람이 때로는 나를 휘감았고, 나를 때리며, 나를 붙들고 곡哭을 한다. 나는 그런 바람소리를 따라 어제 묻었던 고를 씻어본다. 바람을 따라 가다보니 팽목항이다. 팽목은 해무로 비누칠을 한 듯 부옇다. 바다가 옅게 비누 거품을 내고 있다. 오늘, 바람은 바다를 씻김하고 있다.
* 채정례(1925~2013) 진도 씻김굿 원형 보유자. 세습무 당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