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달린 경주競走
지금 내가 나가고 있는 어느 테니스 클럽에서는 나이로 따지면 내가 제일 고참이다. 어느새 나이만 주워 먹은 샘이지만 그래도 운동하는 덕분에 아직도 기분은 젊어서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양버팀을 해본다.
언젠가 ‘수집취미’에 대해서 글을 쓴 일이 있지만 밖으로 드러난 나의 취미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가지 구기 종목은 젊은 시절부터 일관해온 나의 취미인 것이다.
말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은 운동과 경기를 구별하고 있다. 운동은 사냥, 등산, 낚시 등 주로 혼자 즐기는 위락의 대상이며 경기는 일정한 규칙 밑에서 승부를 겨루는 경우라고 말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운동은 sports로, 경기는 game으로 구별해서 쓰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의 경우는 ‘운동 취미’ 보다는 ‘경기 취미’가 더 적절할는지도 모른다. 다만 오죽잖은 글줄을 쓰면서 굳이 낱말의 정의에 구애할 생각이 없어서 편한 대로 ‘운동’으로 해두는 것이다.
운동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굵직한 대회를 몇 번 치르면서 스포츠 강국으로 등장했다. 선수들에 대한 처우도 나무랄 데 없으며, 거액의 상금이나 연금, 장학금, 장려금 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예전부터 고약한 속담이 하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그런데 앞으로는 ‘사촌이 메달 따면 배 아프다.’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날에는 운동선수에 대해서 지금 같은 시상제도는 거의 생각도 못했었다. 대개 상장이나 상패 정도 안겨주는 명예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가는 월계관을 씌워주는 경우도 있었고.
무엇에 매력을 느꼈는지 내가 한평생 운동을 즐기며 살아 온 것은 앞에서 잠깐 비춘바와 같다. 자랑 같아서 다소 겸연쩍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 종목에서는 아마추어로서 수준급일는지도 모른다고 자부해 본다. 한때는 체육 담당교사로 오인 받은 경우도 없지 않았다. 지방에서 운동경기가 열릴 때마다 운동복 차림으로 설치고 다닌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나는 공립학교에서 국립으로 전출한 일이 있었다. 요즘 표현을 빌리면 스카웃의 대상이 된 셈인데 순전히 직장의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린 때문이었다. 담당 교과목의 실력을 인정받은 스카웃이 아니어서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가 처음 운동에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5, 6세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자 달린 운동회’니 ‘혼자 달린 경주’라는 그럴듯한 회상으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늙은이의 운동이야기만으로도 구성이 없는데 어린 시절까지 들먹이게 되니 쑥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그때 일이 자주 머리에 떠올라서 회상에 잠기게 된다. 노년기에 흔히 나타난다는 일종의 향수 현상인지도 모른다.
어느 해 가을 나의 삼촌이 다니던 보통학교의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몇 해 뒤에는 나도 결국은 그 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구경거리가 적었던 시대여서 어린 학생들의 운동회는 지방의 큰 흥미 있는 행사였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와 나만을 남기고 온 집안 식구들이 거의 다 운동회 구경을 떠났던 것 같다.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 손자를 할머님이 달래느라고 애를 쓰셨을 것이다. 집에는 마침 삼촌이 놓고 간 수기가 하나 있었다. 그때는 일제 식민지 시대여서 일본의 탄압이 한창이던 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 따져보니, 28, 9년경이다. 여느 집안에서나 우리 태극기를 내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므로 그 수기가 일장기가 틀림없었을 것 같다.
일장기면 흰 바탕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린 기다. 그 기를 마당구석에 꽃아놓고 나는 혼자서 그곳을 돌아오는 경주(?)를 한 것이다. 운동회 기분을 내기 위해서 할머니가 착안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날은 청명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해마다 그러했으므로 가을걷이를 위해서 마당은 판판하게 고르고 그 위를 끙게질을 해서 잘 다듬어 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쟁자가 없었으므로 그 위를 나는 마음 놓고 혼자 달렸다. 번번히 “일등!” 이라고 환호하면서, 할머니는 옆에서 응원하셨을 것이 분명하여 나는 더 신명이 나서달렸던 것 같다.
나의 운동취미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던 것인데 그때의 일본 국기가 아무래도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일본 국기가 적성국가의 기라는 것을 알 리도 없었다. 그저 그 국기 덕분에 한층 더 신명나서 달린 것을 생각하면 어이없이 느껴진다. 그 뒤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해서 일장기를 모조리 내동댕이쳤다. 더러는 태극기로 개조해서 그동안 억압당한 분풀이를 모지락스럽게 흔들어댔다. 그리고 나는 그답 훈장의 길을 걸어서 40여년에 이르렀다. 숨차게 달린 멀고도 험난했던 세월이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어린 시절에 혼자 달린 그 경주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생애는 모두 혼자 달리는 경주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성실하며 인내와 노력없이는 완주할 수 없는 혼자 달리는 인생경주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