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1) 본가에 다녀온 손주에게 ‘할머니 건강하게 잘 계시더냐.’라고 했더니 ‘o' 이라는 답장이 왔다. 순간 잘못 표현된 것인가 해서 갸우뚱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o ㅋ 또는 ~ ~하셈, 안녕하삼?, '어쩔티비'(어쩔래, 티비나 보셔)로 표현되는 초등학생 손주의 문자는 귀엽기도 하지만 약간의 소통력 저하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화두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하다.
2) '완소'(완전 소중한) 또는 '쩝'(어이가 없다)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으로까지 여겨질 때가 있다. 말 줄임이 시간을 얼마나 절약한다고?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는 여러 줄임말에 문해력 논란까지 우리 언어가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다. 어느 초등학교의 ‘중식 제공’이라는 공지에 한식으로 바꿔주면 안 되겠느냐는 여러 학부모의 건의에 당황스러웠다는 말이 웃어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3) 문해력은 문맹의 반의어로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2020년 조사에서 성인 4,400만 명 중 200만 명이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는 되지만 일상생활 활용이 쉽지 않은 사람도 180만 명(4.2%)이나 된다고 한다. 또 500만 명은 가정, 여가 등 단순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경제 활동 등 복잡한 일상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해력이 낮아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셈이다.
4) “내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려는 마음... . 상대가 모르면 ‘그 단어는 이런 뜻이다’라고 알려주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문해력 저하가 아니라 소통력 저하가 더 큰 문제가 아닌지... .
5) 최근 우리사회에서 ‘심심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를 놓고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일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음’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공지 글을 올린 업체에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항의를 한 것.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이 문제 제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동조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6) ‘유네스코와 유럽연합은 문해 능력을 사회경제적 발전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 ’ ‘문해력이 높으면 정치에 관심이 높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성원들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사실과 의견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이런 사고를 하기가 어렵다.’
7) 문해력 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외식하러 가도 키오스크 사용법을 모르면 돈이 있어도 밥을 사 먹지 못한다. 한마디로 눈뜬장님 신세이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인원 등록과 식사 종류를 선택해야 하고 휴대전화에 남겨진 순번을 확인해야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 오셔서 무작정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현대판 문맹자이다.
8)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 탈 문맹자가 되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려고 구청 학습관에 신청했다. 수업 때 이해는 했어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린다. 나이 탓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이것도 일종의 문해력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집에 오는 즉시 메모해 둔 것을 중심으로 복습해보지만 떨어진 기억력으로 들어가는 방법부터 막히기 시작하니 마음과 달리 복습조차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중요한 내용들을 삼인학습으로 친구에게 전달을 하니 나의 깨우침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9) 돌아가신 어머니는 글자도 모르고 숫자도 모른 채로 한평생을 사셨다. 서울, 부산, 울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식들 집을 잘도 찾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아마 헛걸음도 많았을 것이고 끝없이 묻고 또 물으며 다니셨으리라. 옛 어른들은 배움의 기회가 없어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더 큰 불편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배우는 계층과 안 배우는 계층 간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
10) Mz 세대하면 신조어! 신조어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나 기존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말을 의미한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특권의식으로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신조어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들과 소통하려면 이러한 신조어의 남발을 나무라기보다는 이해하는 대열에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사바사’ (사람마다 다르다)라는 말처럼 더 나이 들기 전에 언어적 문화에 동참하는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독서활동이 숙제로 남았다 |
첫댓글 정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