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대구십영(大丘十詠)-속명승보 15 (2020. 12. 31)
-서거정 한시에 대한 화운(和韻) 시조
제1영. 금호범주(琴湖泛舟, 금호강의 뱃놀이) 동구·수성구·북구·서구·달성군 금호강
제2영. 입암조어(笠巖釣魚, 삿갓바위에서의 낚시) 중구 침산 동편바위
제3영. 귀수춘운(龜峀春雲, 거북산의 봄 구름) 중구 대구제일중학교, 연귀산
제4영. 학루명월(鶴樓明月, 금학루의 밝은 달) 중구 객사(달성관) 북편
제5영. 남소하화(南沼荷花, 남소의 연꽃) 달서구 성당못
제6영. 북벽향림(北壁香林, 북벽의 향림) 동구 도동 측백수림
제7영. 동화심승(桐華尋僧, 동화사의 중을 찾음) 동구 동화사
제8영. 노원송객(櫓院送客, 노원에서의 송별) 서구·북구 팔달교
제9영. 공령적설(公嶺積雪, 팔공산에 쌓인 눈) 동구 팔공산
제10영. 침산낙조(砧山落照, 침산의 저녁 노을) 북구 오봉산 침산공원
개요; ‘대구십영(大丘十詠)’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증보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한시 칠언절구 10수를 이른다. 대구십경(大丘十景), 달성십영(達城十詠), 달성십경(達城十景)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위키백과). 당시 대구분지에 산재한 승지를 읊었는데, 533년 만에 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정격 단시조’로 화운한다. 경관이 크게 바뀌지 않은 한, 당시 선현의 시의(詩意)를 최대한 존중했다. 대구는 필자의 제 2고향이다.
서시
분지(盆地)는 크고 넓어 백경(百景)을 다 껴안아
석학(碩學)이 읊어내니 십영(十詠)은 빛나건만
그늘에 가려졌으니 옛 명성만 귓전에
제1영.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푸르오 거문고 강 한 때는 더러웠지
돛단배 띄웠더니 물새들 놀러오고
물결 위 별 내려앉자 뱃노래는 흥겨워
* 第一詠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서거정 작 이하 같음.
琴湖淸淺泛蘭舟(금호청천범난주)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取此閑行近白鷗(취차한행근백구) 한가히 오가며 갈매기와 노닐다가
盡醉月明回棹去(진취월명회도거) 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風流不必五湖遊(풍류불필오호유) 오호가 어디더냐 이 풍류만 못하리
蘭舟(난주): 木蘭(목란), 木蓮(목련)으로 만든 조각배
取此(취차, 또는 次): 차츰, 점차
五湖(오호): 중국의 큰 호수로, 陽湖(파양호), 靑草湖(청초호), 洞庭湖(동정호), 丹陽湖(단양호), 太湖(태호) 또는, 격호, 조호, 財湖(재호), 貴湖(귀호)를 말함.
* 琴湖江은 발원지가 둘이다. 하나는 慶州(경주)의 母子山이고, 다른 하나는 新寧(신녕)의 普賢山(보현산)이다. 永川(영천) 雙溪(쌍계)에서 合流(합류)하고, 河陽(하양), 半夜月(반야월)을 지나면서 구비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니, 蛾洋樓(아양루)가 있는 東村유원지 일대가 그렇다. 檢丹(검단)의 蒼壁(창벽)과 花潭(화담)의 진달래, 砧山 落照(침산 낙조)와 櫓院(노원)의 白沙場(백사장), 臥龍山(와룡산)의 玉沼岩(옥소암), 江倉(강창)의 절벽을 둘러, 江停(강정)나루에서 洛東江(낙동강)으로 流入하는 大邱의 젖줄이다, 江岸(강안) 곳곳에 樓臺亭舍(누대정사)와 景勝地(경승지)가 많아, 詩人墨客(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2영. 입암조어(笠巖釣魚)
-삿갓바위에서의 낚시
이슬비 흩뿌려도 삿갓이 덮어주니
할배가 건진 고기 매운탕 끓여볼까
만약에 금자라 낚으면 일약 갑부(甲富) 되겠지
第二詠 笠巖釣魚(입암조어, 삿갓바위에서의 낚시)
烟雨空濛澤國秋(연우공몽택국추) 이슬비 자욱이 가을을 적시는데
垂綸獨坐思悠悠(수륜독좌사유유) 낚시 드리우니 생각은 하염없네
纖鱗餌下知多少(섬린이하지다소) 잔챙이야 적잖게 건지겠지만
不釣金驚鉤不休(부조금오조불휴) 금자라 낚지 못해 자리 뜨지 못하네
空濛(공몽): 이슬비가 보얗게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어둠침침한 모양
垂綸(수륜): 낚시 줄을 늘어뜨림, 낚시질을 함
纖鱗(섬린): 작은 고기
金驚(금오): 금자라
* 笠巖(입암)은 新川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15번지에 있는 속칭 ‘건들바위’를 말한다.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건드리면 건들건들 한다고, 이름 하였다 한다. 높이 3m, 너비 1.6m의 이 바위가 영험하다 하여, 지금도 매년 정월초가 되면 부인들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치성을 드리고 있다. 그런데 新輿覽(신여람)에 「在新川中 其形如笠故名 世傳星隕爲石」즉 新川 가운데에 있고, 그 모양이 삿갓 같아서 이름을 삿갓바위라 한 것까지는 수긍이 가나, ‘별의 운석이 된 돌’이라 하는데서, “지금의 건들바위는 운석이 아닌 까닭에, ‘삿갓바위’가 아니다”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설에는 지금의 新岩橋(신암교) 건너 북쪽에 西洋月山이 있는데, 이 山 아래 新川 쪽에 큰 바위가 높이 솟아 ‘사람이 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삿갓바위등’이라 이름하고, 山 밑에서 옛날 羊을 많이 먹인 연유로 양지동이라 칭하였다 하나 알 길이 없다. 이 바위는 왜정시대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공사를 하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버렸다 하니 아쉬운 일이다. 여하간 新川과, 이 삿갓바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제3영. 귀수춘운(龜峀春雲)
-거북산의 봄 구름
농번기 닥쳤는데 봄 가뭄 심하구나
거북이 토한 구름 단비로 만들거니
청산은 곱사춤 추고 옥답(沃畓) 물도 장타령
第三詠: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龜岑隱隱似驚岑(귀잠은은사오잠) 거북뫼 아득하여 자라산 닮았고
雲出無心亦崙心(운출무심역유심) 구름 토해냄이 무심한 듯 유심한 것이
大地生靈方有望(대지생령방유망) 온 땅의 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可能無意作甘霖(가능무의작감림) 가뭄에 단비 만들어 주려 함이네
鰲岑(오잠): 鰲山, 자라산, 中國에 있는 神仙이 산다는 山
生靈(생령): 生民, 百姓
甘雲(감운): 오랜 가뭄 뒤에 내리는 장마
* 龜岑(귀잠, 거북산)은 運龜山(운귀산), 午砲山(오포산), 자래방우산 등으로 불려온 대구광역시 봉산동의 제일여중이 있는 連龜山(연귀산)을 말한다. 純宗(순종)때 大邱府民에게 午正을 알리기 위해, 이 곳에서 포를 쏘았기에 午砲山이라 했다. 新輿覽(신여람)에 「連龜山 在付南三里 鎭山 諺傳建邑初 作石龜 藏于山春 南頭北尾 以通地脈 故謂之連龜」라 하여 대구의 진산이 되는데, 산등에 돌거북을 만들어 지맥과 통하도록 머리는 南쪽, 꼬리는 北쪽으로 하여 묻고, 이를 連龜(연귀)라 하였다. 막상 현재의 돌거북은 언제부터인가 머리는 東으로, 꼬리는 西로 하여, 地脈(지맥)과 관계없이 제일여중 교정 한 모서리 철책 속에 갇혀 있다. 학교 건축 시에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라도 바로 잡았으면 한다. 또 이 連龜山을 지금의 大德山(대덕산)이라 하고, 安逸寺(안일사)가 있는 ‘안지랭이골’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또 돌거북을 만들어 둔 곳이 옛 ‘서낭당’이라는 기록도 있고 보면, 이곳에서 祈雨祭(기우제)를 지냈던 것 같다. 徐居正의 詩도 기우제의 祈禱詞(기도사)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처럼 大邱十景은 거의가 景勝(경승)과 風光(풍광)을 노래하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國泰民安(국태민안)의 祈願(기원)을 담고 있어, 四佳亭(사가정)의 愛民精神(애민정신)을 엿보게 한다.
제4영. 학루명월(鶴樓明月)
-금학루의 밝은 달
선선한 갈바람이 속진(俗塵)을 쓸어가니
거문고 청아한 곡(曲) 두루미 춤을 추고
학루에 앉은 추석 달 앞산만큼 크다네
第四詠: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一年十二度圓月(일연십이탁원월) 일 년에 열두 번 둥근 달이야 뜨지만
待得中秋圓十分(대득중추원십분) 기다리던 한가위 달 한결 더 둥그네
更有長風秋雲去(갱유장풍추운거) 긴 바람 한바탕 불어 구름 쓸어내니
一樓無地着纖紛(일루무지착섬분) 누각엔 티끌 한 점 붙을 자리 없구나
纖紛 : 먼지, 티끌, 흉한 기운
* 鶴樓(학루)는 琴鶴樓(금학루)를 말한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50번지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던, 舊 達城館(달성관, 客舍) 東北쪽 모퉁이에 世宗 7년(1425) 당시 大邱邑知軍事(대구읍지군사)였던 琴柔(금유)가 세우고, 慶尙道都觀察黜涉使(경상도도관찰출섭사)였던 拙齋(졸재) 김요가 記文(기문)을 썼다. 『옛사람이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地名에 따르거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된다. 巴陵(파릉)의 岳陽樓(악양루, 중국 악양현에 있고 洞庭湖(동정호)의 아름다운 경치를 俯瞰(부감)할 수 있는 누각)는 그 地名을 땄으나, 醉翁亭(취옹정)은 저주지사인 醉翁(취옹, 宋나라 歐陽修의 別號)의 이름을 땄듯이, 이제 琴候(금후)가 邑에 부임했고, 邑에 琴湖(금호)의 이름도 있고 보니, 그 이름과 樓의 모양이 鶴(학)이 춤추듯 하여, 樓에 오른 즉, 一琴(일금)에 一鶴(일학)이라, 世俗의 티끌을 털어내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상쾌한 氣象이로다. 거문고 소리에 은은히 和答하고 南風에 세상의 시름 풀어주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이름을 琴鶴樓(금학루)라 함이 可하도다.‥‥‥』라 하여, 樓의 이름이 지어진 경위를 말해주고 있다. 이를 두고 읊은 詩, 姜進德의 〈日僧龍章 琴柔〉에서 樓高(루고), 鈴閣(영각), 朱欄(주란), 明月(명월), 雲鶴(운학), 淸香(청향) 등의 詩句로 미루어, 그 규모와 情趣(정취)를 짐작할 수 있다.
제5영. 남소하화(南沼荷花)
-남쪽 연못의 연꽃
재목이 너무 크면 쓰일 데 별로 없나
고질병 고친다면 언제든지 환영하이
성당못 솥두껑 만한 련(蓮) 청향 한껏 뽐내요
第五詠: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쪽 연못의 연꽃)
出水新花疊小錢(출수신화첩소전) 새로 나온 연꽃 포갠 동전 같더니
花開畢竟大於船(화개필경대어선) 꽃 다 피고 나니 배(船)보다 더 크네
莫言才大難爲用(막언재대난위용) 감(才) 커서 쓰기 어렵다 말 것이
要遣深痾萬姓悛(요견심아만성전) 고질병에 긴히 써서 온 백성 고치리
小錢(소전): ①청나라 때 쓰던 黃銅錢(황동전) ②얇은 날의 작은 가래
深痾(심아): 고질병. 沈痼(침고).
萬姓悛(만성전): 만백성의 병을 고침
* 南沼(남소)란 남쪽 못이란 뜻인데, 聖堂池(성당못)를 가리킨다. 지금 靈仙市場(영선시장)이 들어선 靈仙池(영선지 또는 靈信池)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옳지 않다. 영선지는 일제시대인 1923년에 넓이 10,017평으로 판 貯水(저수) 灌漑用(관개용) 못이었다. 따라서 聖堂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東北쪽에 있는 第六景 道洞(도동) 香林(향림)을 『北壁林(북벽림)』이라 한 것과 대칭되게, 南沼(남소)라 한 것으로 여긴다. 聖堂池는 ‘성댕이못’이라고도 불렀는데, 땅골(당곡)이라 하여, 성당동에서 으뜸 되는 마을에 八聖堂이 있어서, 八聖堂里 즉, 이를 줄여서 聖堂, 聖堂里라 하였다. 그 뒤 八聖堂을 헐고, 대구 判官 金魯가 못을 팠으니, 이것이 현재 花園(화원) 방면으로 나가는 大路邊에 있는 주위 약 2Km의 못이다. 한 때 그 부근의 도축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로 오염되었으나, 지금은 두류공원의 경내가 되었으므로, 南沼荷花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또한 위 詩에서도 백성의 무병을 바라는 四佳亭의 소망이 역력하다.
제6영. 북벽향림(北壁香林)
-북쪽 절벽의 향나무 숲
절벽에 바람 불면 상록(常綠)은 파도 일고
옥으로 솟은 창은 하늘도 찌르는데
코끝에 감돈 측백향 시회(詩會)마저 앗아가
第六詠: 北壁香林(북벽향림, 북쪽 절벽의 향나무 숲)
古壁蒼杉玉槊長(고벽창삼옥삭장) 옛 벽에 푸른 측백 옥창같이 자라고
長風不斷脚時香(장풍부단각시향) 그 향기 바람 따라 철마다 끊이지 않네
慇懃更着栽培力(은근갱착재배력) 정성들여 심고 가꾸기에 힘쓰면
留得淸芬共一鄕(유득청분공일향) 맑은 향 온 마을에 오래 머물리
玉槊(옥삭): 옥으로 된 창
淸芬(청분): 맑은 향기, 깨끗한 德行
* 北壁(북벽)의 香林(향림)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道洞) 180번지 일대의 절벽산에 자생한 側柏樹林(측백수림)을 가리킨다. 대구천연기념물 제1호이기도 한 이 수림은 常綠僑木(상록교목)으로 원래 중국의 특산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의 丹陽(단양), 英陽(영양), 蔚珍(울진) 및 安東 等의 山地에서도 자라고 있다. 측백이 자랄 수 있는 분포지역의 南方限界地(남방한계지)로 植物地里學(식물지리학)상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이후 이 산을 香山이라고도 하였는데,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詩會를 기리는 후손들이, 중국 白樂天(백락천)의 香山九老會(향산구로회)를 본떠 1933년 3월에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3樑 맞배집을 짓고, 九老亭(구로정)이라 하여 지금도 남아 있다.
제7영. 동화심승(桐華尋僧)
-동화사의 중을 찾음
절 오른 돌계단은 푸른 등(藤) 가려주고
흰 버선 검지팡이 가지런히 놓였어도
찾는 중〔僧〕오간데 없이 벽산 혼자 흥이나
제7영: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찾음)
遠上招提石逕層(원상초제석경층) 멀리 절로 오르는 좁은 돌층계 길
靑藤白襪又烏藤(청등백말우오등) 푸른 등나무 하얀 버선 검은 지팡이
此時有興無人識(차시유흥무인식) 지금의 이 흥은 아무도 모르리라
興在靑山不在僧(흥재청산부재승) 흥은 청산에 있고 중은 간 곳 없네
招提(초제): 절, 사찰
靑藤(청등): 푸른 등나무
白襪(백말): 흰 버선
烏藤(오등): 검은 등나무, 검은 꼬부랑 지팡이
* 여기서 承句(승구)의 靑藤(청등)이 新輿覽과 英祖年間에 편찬된 大丘邑誌(대구읍지)에는 靑藤(청등, 푸른 등나무)으로 되어 있고, 純祖 32년(1832)의 慶尙道邑誌(경상도읍지) 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와 高宗 32년(1895)의 嶺南邑誌(영남읍지) 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에는 「靑鞋(청혜)」(푸른 짚신)으로, 日帝下 1924년에 나온 大邱府邑誌(대구부읍지)와 達城徐氏派譜(달성서씨파보)에는 靑衫(청삼, 푸른 적삼)으로 나와 있다. 新輿覽(신여람)의 靑藤(청등)대로함이 마땅하나, 「푸른 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등나무」 또는, 「푸른 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보다는 ‘푸른 적삼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가 보다 形(형)의 具象化(구상화)를 위해 더 좋을 것 같은데, 고증할 길이 없다. 그리고 桐華寺(동화사)는 大邱의 東北쪽 18km 지점인 道鶴洞(도학동) 八公山 기슭에 있는 新羅(신라)의 古刹(고찰)로, 炤智王(소지왕) 15년(493)에 極達和尙(극달화상)이 創建(창건)하여 처음 瑜伽寺(유가사)로 하였다. 340년 후인 興德王(흥덕왕) 7년(832)에 憲德王子(헌덕왕자) 心地王師(심지왕사)가 重建(중건)할 때, 簡子(간자) 8개를 던져 그 떨어진 곳에 佛堂을 이룩하니, 지금의 籤堂(첨당) 뒤 작은 우물이 있는 곳이다. 때마침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피었다 해서, 桐華寺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비로암, 양진암, 염불암 등의 부속 암자는 물론, 동화사입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극락전 삼층석탑(보물 제246호),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제254호), 도학동 석조부도(보물 제601호) 등 보물 6점과, 金剛杵(금강저), 泗溟大師(사명대사)의 眞影(진영)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 밖에도, 경내에 1992년에 완공된 統一藥師大佛(통일약사대불)의 위용(높이 33m, 둘레 16.5m)이 동화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다.
제8영.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에서의 송별
서울 길 버들잎은 주막에 드리우고
이별가 끊어지자 뿔뿔이 흩어진 객(客)
술병만 내 짝이 되어 모래밭에 나뒹궈
第八영: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에서의 송별)
官道年年柳色靑(관도년년류색청) 한양 길 버들잎은 해마다 푸르고
短亭無數接長亭(단정무수접장정) 줄지은 주막들이 길게도 늘어섰네
唱盡陽關各分散(창진양관각분산) 이별의 노래 그치고 객 흩어진 뒤에는
沙頭只臥雙白據(사두지와쌍백거) 빈 술병만 짝이 되어 모래밭에 뒹구네
短亭長亭(단정장정): 작은 숙사와 큰 숙사, 옛날에 五里마다 단정을, 십리마다 장정을 두었음.
陽關(양관): 중국의 關門名(관문명)으로 지금의 甘肅省(감숙성) 敦煌縣(돈황현)에 있고, 王維(왕유)의 渭城曲(위성곡)으로 有名하며, 送別의 상징으로 쓰임.
* 櫓院(노원)은 大櫓院의 약칭이다. 당시 大邱의 북쪽 關門(관문)인 이 곳 大櫓院에서 惜別의 情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로 연변에 행인들이 쉬어가게 해 놓은 곳을 院 또는 亭(정)이라 하였는데, 거리가 먼 곳을 長亭(장정), 가까운 것을 短亭(단정)이라 했다. 이곳이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첫 나루터여서 길손들이 쉬어 감은 물론, 이별과 만남의 哀歡(애환)이 교차하던 곳이다. 앞이 八達津(팔달진, 팔달교가 놓이기 전의 금호강 나루)이어서, 그 곳이 大邱의 關門(관문)으로 되어 있다.
제9영. 공령적설(公嶺積雪)
-팔공산에 쌓인 눈
공산(公山)은 가파르지 마천루(摩天樓) 솟아있고
쌓인 눈 산길 가득 등산객 땀이 흠뻑
겨울엔 서설이 내려 풍년 점지 한다네
第九詠: 公嶺積雪(공령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公山千丈倚峻層(공산천장의준층) 팔공산 천길 높이 가파르게 솟아 있고
積雪漫空沆瀣澄(적설만공항해징) 쌓인 눈 하늘 가득 이슬 되어 맑구나
知有神祠靈應在(지유신사영응재) 사당 모시니 신령님 응감 있어
年年三白瑞豊登(연년삼백서풍등) 해마다 서설 내려 풍년을 점지하네
沆瀣(항해): 이슬 기운
三白瑞(삼백서): 정월에 오는 서설
豊登(풍등): 오곡이 많이 잘 여묾, 풍작
* 八公山은 大邱盆地(대구분지)의 東北部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산줄기이다. 新羅 때는 아버지의 산, 즉 父岳(부악)이라 하였다가, 나라의 중앙에 있다 해서 中岳(중악)이라고 불렀다. 또 여기서 나라의 公的儀式(공적의식)인 祭天壇(제천단)을 설치함으로서 公山이라 하였다. 그 후 후삼국시대에 王建(왕건)과 甄萱(견훤)의 이곳 공산 전투에서, 王建이 포위당하여 죽게 된 것을 申崇謙(신숭겸), 金樂(김락) 등의 여덟 공신이 장렬히 전사하고, 王建을 구했다 하여 八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정상인 비로봉(1,192m)이 중앙에 우뚝 서 있고, 좌우로 염불봉, 삼성봉이 양어깨로 펼쳐진다, 東西로는 동봉, 서봉이 東南으로 관봉, 노적봉, 인봉, 수봉, 북으로 시루봉, 西로 파계봉을 너머, 가산에 이르는 環狀山脈(환상산맥)을 이루어 영천, 달성, 군위, 칠곡을 깔고 앉은 靈山(영산)이다. 동화사, 파계사를 비롯하여, 부인사, 송림사, 갓바위 등의 크고 작은 사찰, 암자와 기암절벽 및 계곡, 폭포로 사시사철의 절경을 이룬다. 또한 정상 바로 아래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등, 대구 시민에게는 가장 큰 휴식처와 등산로를 제공한다.
제10영. 침산낙조(砧山落照)
-침산의 저녁노을
산정에 닿은 물은 가을 빛 정취 뿜고
바람 탄 절구 소리 아낙네 꼬장주로
노을에 젖은 나그네 시름조차 애끓어
* 꼬장주는 고쟁이의 방언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몬뻬(もんぺ)는 여성용 작업바지인데 더 실용적이다.
第十영: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노을)
水自西流山盡頭(수자서류산진두) 물줄기 서쪽으로 흘러 산머리에 닿고
砧巒蒼翠屬淸秋(침만창취속청추) 침산의 푸른 숲은 가을 정취 더하네
晩風何處舂聲急(만풍하처용성급) 저녁 바람 타고 오는 방아 소리는 *(필자 보완)
一任斜陽搗客愁(일임사양도객수) 노을에 젖은 나그네 시름 애끓게 하네
蒼翠(장취): 푸른빛, 푸른 물총새
舂聲(용성): 방아나 절구 찧는 소리
* 제3구 제5자는 절구 용 ‘舂’ 자가 맞는데, 봄 ‘春’ 자로 적혀있다. 글자가 하도 비슷해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한상철)가 바로 잡는다. 3구 전체 풀이도 매끄럽지 못해 함께 보완한다. “저녁 바람 어디 메요 방아소리 급하거니”
* 砧山은 대구의 新川河口(신천하구)를 지키는 속칭 ‘水口막이 山’이라 하고, 방망이를 닳았다 하여 일명 ‘방망치산’이라고도 하였다. 높이 144m의 平地에 솟은 獨山(독산)으로, 조선시대 때는 大丘府의 女祭壇(여제단)이 있었다 하는데 없어지고, 지금은 침산공원이 되었다. ‘白沙부리’라 하여 북쪽에 있는 마을 앞에는 흰모래가 많았다. 침산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푸른 숲에 물든 단풍과,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노원 나루에서 팔달교로 흘러 들어가는 금호강의 금빛 물결과 어울러,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女祭壇이란 동네 수채나 水溝(수구)쪽에 돌이나 흙으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방아를 Y자 모양으로 거꾸로 세운 뒤, 여자의 속곳을 뒤집어 입혀 놓고, 묽은 팥죽이나 수수밥을 올려, 문둥병이나 못된 돌림병을 퍼뜨리는 女鬼, 惡鬼(악귀)를 쫓는 액막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 곳에 女祭壇이 있었던 것은, 新川(신천)이 琴湖江(금호강)으로 流入(유입)되는 水溝가 있은 까닭이다.
* 이상 한시 자료 출처: 대구마운틴. 글쓴이: 마락 원글 보기. 장수한의원. 문원장 (2015. 12. 2) 인용 수정함. 끝.
-------------------------------
* 게재일 현재 지면 미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