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
[제1장] 조선 창업의 정당성
해동에 육룡이 나시어 일마다 천복이시고. 고성이 동부하시니
해동(海東)에 여섯용(六龍)이 나시어 일마다 하늘이 내려준 천복(天福)이십니다 이모습이 옛성인(古聖)과 똑같이 일치(同符)하십니다
[제2장] 조선 왕조의 무궁한 발전 염원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쎄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세미 기픈 므른 가뭄에 아니 그츨쎄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물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냇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제4장] 조상 때부터 천명이 내림.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가) 북쪽 오랑캐 사이에 가셔서 살 때, 북쪽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 밑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입니다.
(익조가) 여진족 사이에 가셔서 살 때, 여진족들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입니다.
[제7장] 이성계(태조)가 임금이 될 상서로운 징조
붉은 새가 글을 물고 와서 (주나라 문왕의) 침실 문 앞에 앉으니, 무왕(武王)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데에 있어 하늘이 내리신 복을 보인 것입니다.
뱀이 까치를 물어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것은 태조가 장차 임금이 되려하는 데 있어 경사스런 징조가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배경(고사)주나라의 문왕 때 어느날 문왕의 침실 문 앞에 붉은 새가 '경승태자길 태승경자멸(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 부지런한 자는 길하고 게으른 자는 망한다)'이라고 붉은 글씨로 쓴 문서를 물고 왔었다.
도조(度祖)가 큰 나무에 앉은 까치 두 마리를 활로 쏘아 한번에 다 떨어뜨렸는데, 큰 뱀이 물어다가 다른 큰 나무 위에 얹고 먹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였다.
[제48장] 이태조의 초인적인 지략과 용맹함
(금태조가) 골목으로 말을 지나가게 하시어 (높은 언덕으로 뛰어 넘어가니, 뒤쫓던) 도적이 다 포기하고 돌아가니, 반 길 높이의 언덕을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태조가) 석벽에 말을 올라가게 하시어 도둑(왜적)을 다 잡으시니, 몇 번 뛰어오르게 한들 다른 사람이 (그 절벽을) 오를 수 있겠습니까?
배경(고사)금 태조가 적에게 쫓겨 골목에 들어 길을 잃었는데, 급하게 한 길이나 되는 언덕을 뛰어 넘어가니, 적이 더 이상 쫓아 오지 못했다.
이 태조가 지리산에서 왜적을 토벌할 때, 왜적이 절벽 위에서 대치하거늘 장수들이 모두 올라갈 수 없다고 하는데도, 이성계가 칼등으로 말을 쳐서 한달음에 올라가니, 군사들이 그를 뒤쫓아 적을 섬멸하였다고 한다.
[제109장]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의 정절
말이 병이 깊게 들어 산마루에 못 오르거늘, (주나라 왕비가 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지 못하여) 군자를 그리워하시며 술잔에 (술을) 부으려 하셨습니다.
말이 화살에 맞아 마구에 들어오거늘, (태종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태종의 비 원경왕후가) 성종을 모시고 저승에 가려 하셨습니다.
배경(고사)주나라 문왕의 후비가 남편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래를 지었다. "저 산 언덕에 올라보고 싶으나, 내 말이 이미 병들었도다. 금잔에 술이나 가득 기울여, 깊이 이 시름 잊어 볼까나"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군사가 타고 나갔던 태종의 말이 화살을 맞고 들어오므로, 원경왕후는 태종이 전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전장에 나가서 태종과 같이 죽으려 하였다. 여러 사람이 말려도 듣지 않고 가다가 전승의 소식을 듣고 비로소 돌아왔다.
[제125장] 후왕들에게 경천근민을 권계함
천세 우희 미리 정하샨 한수북에 누인개국 하샤 복년이 가업으시니
성신이 이으샤도 경천근민 하샤아 더욱 구드시리이다
임금하 이우로쇼셔 낙수예 산행 가이셔 하나빌 미드니잇가
천 년 전에 미리 정하신 한양에 인덕(仁德)을 쌓아 개국하시어 왕조의 운이 끝이 없습니다. (비록) 성자신손(聖子神孫)이 대를 이어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 다스리기를 부지런히 하셔야 더욱 (왕조의 기반이) 굳으질 것입니다. (후대의) 임금들이여 아십시오. (하나라 태강왕이) 낙수에 사냥을 가 있으면서 할아버지(우왕)를 믿었던 것입니까?
125장 → 이 장은 국도(國都)를 찬양하고, 국운을 송축하는 데 이어서, 후대 왕에게 하나라의 대강왕의 고사를 인용하여 '경천근민'의 위정자의 자세를 당부하고 있다(他山之石). 용비어천가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장으로서,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등의 궁중음악으로도 활용되었으며, 형식상 특징은 특별히 절의 구분은 되어 있지 않으나, 내용상 3절로 구성되어 있어 1장과 더불어 파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고사)신라 때의 중 도선의 비결(秘訣)에 의하면, 삼각산 남쪽 곧 한수의 북쪽인 곳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부흥하리라고 하였다.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손자 태강왕이 정사에 게으르고 또 사냥에 절도가 없어서, 낙수 남쪽까지 가서 백 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유궁 후예가 이것을 참지 못해,하북(河北)에서 태강왕을 막아 오지 못하게 하여 그를 폐위시켜 버렸다.
[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조선 건국을 찬양한 송축가로서, 건국 영웅 서사시로서의 조건을 구비한 장편 서사시로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의 시조들을 찬양하고 조선의 건국이 천명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임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등장 인물의 탄생과 성장 과정, 사업 등에 영웅적 성격을 부여하고 사건 중심으로 서술한 서사시라는 점에서 고대의 건국 신화와 일맥 상통한다.
<용비어천가>는 총 12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의 배열을 고려하여 의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천복(天福)을 강조한 1장은 하늘에 해당하는 장으로 한 줄이고, 나무와 샘을 통해 왕조의 영원성을 그려낸 2장은 땅에 해당하는 장으로 두 줄이다. 3장 이하는 사람의 일을 다루었으므로 인(人)에 해당된다. 인(人)은 계속 겹쳐지는 여러 줄로 계속되다가 맨 끝 125장이 세 줄로 되어 있다. 이렇게 형식을 통해 <용비어천가>는 형식적 구성으로도 왕조의 창업이 '천지인' 삼재와 일치함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제목은 세종 자신이 직접 지은 것으로, "용이 날아서 하늘을 덮었다"라고 풀이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용'은 임금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건국신화적인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민간 전승되는 설화까지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당시는 신화가 통용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일관된 줄거리에 입각한 영웅의 투쟁이 나타나지 않아 긴장감이 없고, 단편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이 작품은 무조건의 사대주의(事大主義)적인 시필(詩筆)이 드러난다. 전구가 중국의 고사요, 후구가 조선 창업의 사실인데, 중국 하(夏), 은(殷), 주(周), 수(隨), 당(唐) 등의 고대 사회의 기자이적을 들어 놓고, 여기에 덧붙여 14세기의 이조적 전설과 고사를 창작해 내려고 했으니 어색한 신화를 만들어낸 듯하다. 목조를 비롯한 대조(代祖)의 신화는 거의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같고, 사실 장엄하다거나 흥미있는 줄거리가 없이 극히 빈약하다. 이것은 이 작품 제작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유학자이기 때문에, 신화를 만들어낼 만한 상상력과 필치가 부족했고, 중국 고사의 지식만을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작품을 위대한 영웅서사시로 승화시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 요점정리 ] ◆ 성격 및 갈래 : 악장, 장편 영웅 서사시, 건국 서사시, 송축가
◆ 연대 : 세종의 명을 받들어 세종 27년(1445)에 집현전 학자들이 편찬해서, 1447년에 간행됨.
◆ 작자 : 노래 가사 → 권 제, 정인지, 안 지 한문 주해 → 최항,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현로, 성삼문, 신숙주, 이개, 신영손 등 서문 → 정인지. 발문(跋文) → 최 항
◆ 구성 ⑴ 서사 (1~2장) → 조선건국의 정당성과 왕조의 무궁한 번영과 발전 송축 <개국송(開國頌)> ⑵ 본사 (3~109장) → 육조의 사적을 예찬함으로써, 건국의 합리성 찬양 <사적찬(事蹟讚)> ⑶ 결사 (110~125장) → 후대 임금들에 대한 교훈과 경계 <계왕훈(戒王訓)>110장~124장 : "무망장(毋忘章)" 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한결같이 마지막 구절이 '이 뜻을 잇지 마소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형식 및 표현 ① 2행 4구체의 연장체. →1행(전절)은 중국의 고사, 2행(후절)은 조선 창업의 주역들에 대한 내용으로 대구가 이루어짐. ②'우리말 노래(국문가사) - 한역시 - 한문 주해(역사적 사실이나 전설에 대해서)' 순서로 이루어짐 ③ 전 10권 5책. 총 125장의 연장체
◆ 창작 동기 ①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널리 밝히기 위해서
② 훈민정음의 문자로서의 가능성과 실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③ 후대 왕들에 대한 훈계를 위해서
◆ 주제 ⇒ 조선 건국과 왕조 창업의 정당성
◆ 국문학사적 의의 ① 한글로 씌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한글이 반포되기 1년 전에 지은 것임) ② 15세기 국어의 표기법이나 옛말본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 ③ <월인천강지곡>과 더불어 악장 문학의 대표작이며, 역사 연구의 보조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음.
◆ 궁중음악 ① 여민락(與民樂) : 1~4. 125장의 한역시 ② 취풍형(醉豊亨) : 1~8, 125장의 한글시가 ③ 치화평(致和平) : 1~16, 125장의 한글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