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9
1998년 생겨난 한국 최초의 컴퓨터 '게임팀'은 한 PC방 소속이었다. 특정 PC방에서 게임을 하면 월급을 받는 방식이었다. '프로게이머'란 말도 이때 처음 선보였다. 당시 게임 대회 하나가 우승 상금 1000만원을 내걸자 '천문학적'이란 반응이 나왔다. 당시 프로게이머 수입은 불로소득으로 분류돼 높은 세율이 매겨졌다.
▶ 지금 한국은 세계 최고의 게임 환경과 프로게이머를 갖춘 나라다. SK텔레콤과 KT 같은 대기업이 프로 게임팀을 운영하며 스타 선수에게 수십억원 연봉을 지급한다. 6조4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게임 전문 채널도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탄생했고 전 세계 게임팀 코치의 30%가 한국인일 정도다.
▶ 프로게이머 92명이 소속된 미국 최대 게임팀 선수들이 한국에 전지훈련을 와서 하루 10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 환경에서 한국 팀들과 붙으려고" 왔다고 한다. 서울의 전망 좋은 50평대 아파트 두 채에 선수 10명이 나눠 지내며 내년 1월 시즌 개막을 준비 중이다. 한국 선수들을 닮겠다고 매끼니 김치도 먹는다. 포브스가 추산한 이 팀의 가치는 3500억원이다.
▶ 국내 컴퓨터 게임은 IMF 외환 위기가 키웠다는 말이 있다. 당시 PC방이 고소득 창업 아이템으로 꼽히면서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침 출시된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달인들이 이 PC방들에서 탄생했다. 이때 임요환이라는 게이머가 때맞춰 출범한 게임 채널 덕을 보며 프로게이머 최초의 스타로 떠올랐다. 근래 몇 년간 세계 최고 스타 게이머는 올해 스물두 살 한국 선수 이상혁이다. 그의 연봉은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 팀에서 105억원에 스카우트를 시도했을 정도다. 그가 인터넷으로 개인 방송을 하면 500만명가량이 동시 시청한다.
▶ 중국 게임 업계에서 그를 데려가려는 것도 방송에 광고를 붙이고 이벤트나 캐릭터 상품 판매로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두 달 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게임대회는 누적 인원 4억명 이상이 시청했고 결승전 시청자만 1억명이었다. 이 대회에 미국 스포츠 구단들이 투자하고 방송사와는 3년간 3500억원짜리 중계권 협상이 진행 중이다. 오락실에서 동전 넣고 외계인 무찌르던 게임과 본질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실력이 월드컵이나 메이저리그 못잖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아직은.
한현우 논설위원 hwha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