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평범한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외면할 수 없었을까? 히틀러와 나치는 1933년 권력을 장악한 뒤 1945년 패망할 때까지 12년 동안 독일을 지배했다. 그 사이 독일은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으며, 수천만 명을 죽음과 기아, 강제노동으로 내몰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토록 범죄적인 정권이 어떻게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답은 대체로 이렇다. 게슈타포와 친위대의 공포정치, 히틀러를 추종한 소수의 인종주의적 광신도들, 그리고 나치와 결탁해 막대한 이윤을 챙긴 대기업과 은행들. 실제로 많은 독일인들은 이 질문의 답이 산업계와 금융계의 거물들에게 집중되길 바랐는데, 이는 나치의 야만성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소수의 개인들에게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괴츠 알리는 《히틀러의 복지국가》에서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 독일을 떠받친 것은 소수의 광신도와 자본가만이 아니었다. 수천만 명의 평범한 독일인들이 체제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았고, 바로 그 때문에 정권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그 범죄를 묵인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괴츠 알리
저자 : 괴츠 알리
괴츠 알리Götz Aly
제3제국과 홀로코스트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만 상Heinrich-Mann-Preis(2002), 루트비히 뵈르네 상Ludwig-Börne-Preis(2012) 등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왜 독일인인가? 왜 유대인인가? 평등, 시기, 인종 혐오 1800-1933Warum die Deutschen? Warum die Juden? : Gleichheit, Neid und Rassenhass 1800-1933》(2011)와 《부담스러운 자들. 안락사 1939-1945. 하나의 사회사Die Belasteten. ‘Euthanasie’ 1939-1945. Eine Gesellschaftsgeschichte》(2013), 《유럽, 유대인에게 등 돌리다 1880-1945Europa gegen die Juden 1880 -1945》(2017) 등이 있다. 2025년에는 나치 정권이 어떻게 평범한 독일 대중을 범죄의 공범이자 동조자로 만들었는지 그 ‘미세한 통치 메커니즘’을 파헤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 독일 1933 -1945Wie konnte das geschehen? Deutschland 1933-1945》를 출간했으며, 나치의 통치 기법(정보 조작, 대중 선동, 소수자에 대한 증오 유발)이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권 및 극우 포퓰리즘의 행태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작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했다. 행정부(문화체육관광부), 입법부(국회입법조사처)를 거쳐 법무법인 율촌에서 일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유튜브 채널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폭풍이 온다》(2026), 《21세기 지정학》(2026), 《두 개의 인도》(2024)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2025)가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서론
1부 여론 정치가의 등장
1장 ‘인민의 제국’이라는 꿈
2장 순응하는 독재
2부 지배와 약탈
3장 흔들림 없는 효율성으로
4장 인민을 위한 이익
5장 버팀목: 서유럽
6장 확장의 공간: 동유럽
3부 유대인 수탈
7장 국가 원리로서의 약탈
8장 독일 국방군을 위한 자금 세탁
9장 독일과 동맹국 간의 보조금
10장 금의 행방
4부 인민의 복지를 위한 범죄
11장 악의 열매
12장 투기적 정치
13장 나치 사회주의
계산에 관한 참고사항
독일이 정한 환율(1939~1945)
약어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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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실제로 많은 독일인이 나치 독일의 약탈 정책으로부터 이익을 얻었기에 저항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결국 나치의 범죄를 내부에서 저지할 수 있는 운동이 성장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나치 정권을 일종의 인종주의적·전체주의적 복지국가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나치의 인종 학살 정책과 한 세대의 독일인들이 전쟁을 “무사히 견뎌냈다”고 회상하는 수많은 가족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게 해준다.
_13쪽, 서론
인민국가라는 이상, 즉 인민의 국가이자 인민을 위한 국가란,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올바른 인종적 혈통을 갖춘 독일인들만을 위한 복지국가였다. 히틀러는 자신의 핵심 선언 중 하나에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국가의 건설”을 약속했으며, “모든 [사회적] 장벽을 계속해서 제거해 나갈” 모범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_25쪽, 1장 ‘인민의 제국’이라는 꿈
1939년 9월 3일, 당시 독일 병사이던 [197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하인리히 뵐은 쾰른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25마르크라는 엄청난 급여”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얼마 후 뵐은 당시 사치품이던 커피 반 파운드를 로테르담에서 “단돈 50페니히”에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커피를 집으로 보내며 그는 평범한 병사인 자신에게는 “주당 500그램짜리 한 봉지만 허용된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복무하던 때에는 “어머니가 더 많은 커피를 원하시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돈이든 보내주세요. 커피를 더 구해보겠습니다. 독일 돈이라도 괜찮습니다. 매점에서 바꿀 수 있어요”라고 썼다.
_123쪽, 4장 ‘인민의 제국’이라는 꿈
독일이 프랑스로부터 직접 얻은 수입은 8,000억 프랑, 즉 400억 마르크를 초과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국은행 이사 하틀리프의 냉정한 평가에 따르면, 이러한 약탈은 “제국 예산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경감해주었고, 궁극적으로 독일 정부가 중앙은행에서 차입해야 할 필요를 덜어주는 한편, 프랑스의 재정과 통화에는 막대한 부담을 주었다.”
_183쪽, 5장 버팀목: 서유럽
식량 배급제와 전쟁으로 인한 식생활 변화에도 불구하고 식량은 부족했다. 그러나 독일 지도부는 1차 대전 때와는 달리 그 부담을 점령지 주민과 사회적 약자 집단, 소련 포로들에게 전가했다. 그 결과 폴란드, 그리스, 특히 소련에서 기근이 발생했으며, 정신병원, 게토, 강제수용소, 포로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괴링은 정부의 태도를 요약하듯 “누군가 굶어야 한다면, 그건 독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게 하라”고 단언했다.
_210쪽, 6장 확장의 공간: 동유럽
이런 복잡한 계산을 통해 두 가지 분명한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독일의 전쟁 수입 가운데 적어도 3분의 2는 외국 또는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으로부터 조달되었다.ㆍ 둘째, 나머지 3분의 1의 비용 역시 독일 사회 내부의 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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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갈 때
독일인들은 전쟁 전에 비해 나쁘지 않은 생활수준을 누렸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인들은 나치 정권의 감시 및 폭압,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는 행정 직원도 포함해도 겨우 7,0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외에 훨씬 더 적은 규모의 보안 경찰만을 운용했을 뿐이다(훗날 공산주의 동독은 1,700만 명의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19만 명의 공식 감시 요원과 비슷한 수의 “비공식 협조자”를 운용했다. 나치 독일의 국민은 6,000만 명이었다). 1945년 4월 쾰른에 들어온 한 연합군 장교는 시민들이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옷도 잘 갖춰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전쟁 중 독일인의 생활수준은 1차 대전 당시보다 훨씬 나았고, 2차 대전 전보다도 나쁘지 않았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은 극심한 식량난과 인플레이션, 생활고를 겪었다. 히틀러는 그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독일 국민이 다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3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국민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핵심 정책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전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재무 관료들이 수차례 증세를 건의했지만 노동계층에 대한 직접 증세는 최소화되었다. 부득이 증세가 필요한 경우에는 부유층에 과세하거나 부동산 소유자에게 과세했다. 군인 가족 수당은 확대했다. 연금도 인상했고, 식량 공급은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병사들의 급여는 여러 차례 인상했고, 해외에서 자유롭게 쇼핑하고 물건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전선에 나간 병사들이 가족에게 보낸 소포는 수천만 건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버터와 커피, 초콜릿, 통조림 같은 식료품부터 향수와 비누, 실크 직물, 모피, 시계, 카메라, 의류, 은식기, 가구까지 온갖 물건이 들어 있었다. 전후 독일의 대표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렇게 회상했다. “파리에서는 향기로운 비누가, 폴란드에서는 통조림이, 노르웨이에서는 순록 햄이, 그리스에서는 건포도가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던 가운데, 독일인은 어떻게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
“홀로코스트는 약탈과 학살의 결합이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어떻게 독일인의 복지가 되었는가?
이 책은 충격적이게도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대인 학살은 단순히 인종주의적 광기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박해는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전쟁 재정이 맞물려 움직인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유대인의 재산은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몰수되었다. 은행 예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계좌로 이전되었고, 기업과 주택, 토지, 귀금속과 보석은 차례로 처분되었다. 가구와 식기, 침대와 옷가지 같은 생활용품까지도 경매에 부쳐져 독일인과 점령지 주민들에게 헐값에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