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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신앙생활
나야말로 산 정상에 오른 듯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날은 골짜기 밑으로 떨어진 듯 변덕스런 경험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하나님 앞에 시인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있는 나약한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지요. 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영적인 '요요' 현상을 정상적인 경험이라고까지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여정에 들어서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갈보리에서 선물로 주신 것을 인하여 찬양을 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의 생각을 명확히 정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핵심입니다. 성소 봉사의 모든 것들이 성전 뜰제단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성소에서 일어났던 다른 모든 일들의 기초입니다.
한번은 호주에서 내가 이와 동일한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한 남성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마이크를 한 집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내게 화를 냈습니다. 사실 나는 30년 넘게 그와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같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쎄. 그러면..." 머뭇거렸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나님, 교회를 둘러보니 생각나는군요. 내가 헌금한 돈으로 이 교회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그가 두 번째 한 말이었습니다. 나는 더욱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네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무런 믿음의 고백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지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제야 진정한 고백을 한 것 같군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리라고 예상하던 터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나서 항의했습니다. "목사님.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다니요!"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 보세요.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솔직한 심정은 장로님이 좀 더 무안을 당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자신을 과시하면 되겠습니까? 교인들 앞에 벌떡 일어나 장로님이 예수님을 통해 가진 것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진실한 믿음의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나를 시험하려 듭니다. 나를 이겨보려고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을 인하여 찬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축복을 빼앗기고 맙니다. 결국 우리는 잘 교육받은 작은 마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십 년 동안이나 문제를 키워왔던 한 사람의 기도를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하나님을 위해 이것을 꼭 하고 싶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미 이루었단다. 눈을 열어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지를 보아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초인간이 되려는 헛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예수님처럼 되어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완전하게 되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순전하고 의로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습니다.
나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슈퍼맨처럼 만들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흠 없이 완전한 사람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무한하신 자비로 하나님께서는 그 한 분을 나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이 진리를 깨달은 후 마침내 나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20년간이나 광야에서 스스로 강하게 되려고 노력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래. 선한 의도로 그렇게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그렇지 않느냐?"
“네, 정말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늪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빛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루터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루터의 경험을 반복해야만 했을까요? 나는 지속적으로 루터가 발견한 것을 읽고 믿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슈퍼맨이 되게 해달라는 간청이나 슈퍼맨이 되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그냥 품고 있어야 할 때, 조금 강하게 말해야 할 때, 도움을 주어야 할 바로 때가 언제인지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때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기 원하십니다.
이 성경을 기억하십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4장 15절).
성경적인 고백, 곧 믿음의 표현을 하였다면 성령의 인침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억납니까? 성령을 받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결과로 여러분의 생활양식이나 대인 관계. 여러분과 관계된 모든 것에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표현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에 기인합니다. 그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10에 나타난 백부장의 하인 이야기는 우리의 간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했으면 믿음 안에 들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 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누가복음 7장 1~10절).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담대히 붙들고 여러분의 것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거만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것을 믿고 그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거만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본성적인 인간의 마음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합니다. 타고난 인간의 마음은 이를 성취하기 위해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행복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겸손과 굴복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무용지물이며 죄가 많고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나에게 주신 것과 지금 나에게 주시려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최대한 담대해야 합니다.
성경 인물 중에 하나님을 만난 후 "오, 감사합니다. 저는 벌레같은 존재가 아니로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여기 다시 이사야가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이사야 6장 5절). 이사야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지 깨달은 후에 그는 하나님과 비교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가치하게 여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점에 있어서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통속적인 심리학과는 정반대입니다. 기독교는 이 점을 우선 시인해야 합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 협회에서 "나는 알코올 중독입니라."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을 '죄 중독자 협회'라고 불러 봅시다. 여러분은 시작부터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입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전혀 가망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죄로 인해 어떤 일을 하였는지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의 확증을 얻는 첫 번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이미 확립된 사실이자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이라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이미 확립된 사실에는 우리가 완전히 죄인이라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당시의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었습니까? 그분의 심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장 5절).
모든 계획이 악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장 37~39절).
사람의 모든 생각이 전부 악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번 경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베드로전서 3장 20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브리서 11장 7절).
이것이 죄가 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 아름다움은 우리가 비록 완전히 무력하고 온통 죄뿐임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당하신 그분의 아들과 동일한 가치로 우리 안에 있는 가치를 바라보십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해도 전혀 불쾌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담대히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표현 몇 가지를 따라해 봅시다. "감사합니다.""하나님을 찬양합니다.""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유익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로마서 5장 9절).
▶나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장 10절).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로마서 5장 8절: 요한일서 3장 16절).
▶“하나님께서는 화평을 이루셨고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그분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골로새서 1장 20절).
“나는 그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에베소서 1장 7절: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 요한계시록 5장 9절).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습니다"(로마서 6장 5~7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분께서 나를 대신하여 죄가 되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고린도후서 5장 14, 21절: 이사야 53장 4~7절).
▶“나는 나의 죄로부터 벗어났습니다"(히브리서 9장 26절: 요한복음 1장 29절).
▶"나는 나의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요한계시록 1장 5절).
▶“나 자신은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로마서 6장 11절).
▶ “내 앞날에 둘째 사망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2장 9절: 요한 계시록 20장 6절: 요한복음 11장 11~15절).
참고로 둘째 사망은 영원한 죽음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잠이라고 표현하신 육체적인 죽음, 무덤에 장사 지내는 그런 죽음과 대조적입니다.
▶"나는 원수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귀는 패했고, 내게 대하여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히브리서 2장 14절).
▶"나는 죄와 마귀의 종에서 벗어나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히브리서 2장 15절).
"나는 영원히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화시키시는 과정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히브리서 10장 14절).
▶"나는 나음을 받았습니다"(베드로전서 2장 24절).
▶"나는 더 이상 정죄 받지 않습니다"(로마서 8장 1절).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나에 대한 정죄가 그분께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장 1~3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
내가 비록 연약하고 죄가 많고 사악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이 모든 축복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근거로 이 모든 축복이 내게 주어졌고, 이것들은 내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이미 확립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의 앞날에 둘째 사망도, 지옥불도 없습니다. 오늘 이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제가 죽어야 할 둘째 사망을 이미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표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죄에 얽매여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느끼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죄함이 없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받을 정죄를 예수님이 지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정죄를 받았다는 말은 심판을 받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나의 심판은 예수님께서 떠 안으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심판을 경험하셨기 때문에 진정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장 24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 채 이 하루를 보내지 않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 하루를 지내지 않게 하셨습니다. 아들을 보내시고 저를 대신하여 희생을 당하게 하심으로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입증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 안에서 이 하루를 즐겁게 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표현입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믿음의 고백은 항상 칭의로 부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저의 인간적 한계와 죄 됨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실 때 완벽하게 의로우신 예수님으로 보신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는데 저를 대신하여 기꺼이 죄가 되셨고, 제가 당연히 치러야할 사망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참고, 고린도후서 5장 2절: 히브리서 2장 9절). 이것이 신앙 고백입니다.
이런 말을 표현하는 순간, 이런 고백을 하는 순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여러분 속에 넣어 주십니다. 위의 신앙 고백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죄의 대가입니다. 의의 대가가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장 23절).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죄를 지은 일이 전혀 없었지만 죄가 되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 아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바로 나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장 6절, 강조 첨가).
예수님을 완전히 내가 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놀라운 순간일 것입니다. 언젠가 나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 아니 나 자신을 짊어지고 돌아가셨음을 실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남김없이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가장 연약한 면, 가장 어두운 부분, 추잡한 생각과 행동과 태도까지 다 가져가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주님 편에서 믿음으로 내딛었던 발걸음이었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우리 편에서 내딛어야 할 믿음의 발걸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대가가 예수님의 생명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의인은 그런 죽음, 곧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둘째 사망. 곧 죄를 범하여 버림받은 죄인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그분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만 하셨습니다.
엘렌 화잇이 저술한 <시대의 소망> 25페이지의 아름다운 인용문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께서 받으셔야 할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분의 의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해야 할 사망으로 고통 받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신앙 고백을 기록해 보기를 권합니다. 믿음의 표현은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삶의 투쟁이 어떠한지 또는 여러분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등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의 초점을 예수님의 죽으심에 맞추어야 합니다.
믿음을 표현할 때 예수님의 죽으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하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혜로우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의 표현 한 가지를 더 예로 들겠습니다.
"이 아침,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 또한 온전한 순종을 했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제가 제 자신을 바라볼 때 저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인정해 주시고 예수님 안에 굳게 붙어 있으라고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곧 시간을 내어 오른 쪽 여백에 여러분 자신의 믿음을 글로 표현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무언가 놀라운 일이 여러분 안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친구나 가족 중에 여러분의 신앙 고백을 들어 줄 사람을 찾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9, 10절).
*나의 신앙 고백
내용 복습
1.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이 되려는 것은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2. 어떻게 의인이 살게 됩니까? 또 어떻게 하면 의인이 살지 못합니까?
3. 여러분이 믿음의 표현(성경적 고백)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4. 누가복음 7장에 나타난 백부장의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어떤 측면을 보여 주었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이 보여준 이러한 믿음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습니까?
5. 여러분이 겸손의 은사를 받을 때 무엇을 인정하게 됩니까?
6. 이 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유익들을 복습하고 명상해 보십시오
7.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는 심판(정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까?
8.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예수님으로부터 그분의 얼굴을 돌리셨습니까?
※ 묵상을 위한 질문
중요하지 않은 일에 자신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것들을 인하여 찬양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까?
* 적용
적어도 믿음의 표현 한 가지만이라도 꼭 써 보십시오. 다른 이들과 그것을 나누며 여러분의 "입으로 시인"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