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30분인데 3층 대강당 앞 대기줄은 이미 엘리베이터 앞까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부산에서 새벽 기차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잠도 설쳤는데, 올해는 참석 인원이 작년 가을 펜쇼보다 많을 것 같아서 긴장이 됩니다. 두번째 펜쇼 참석이라 모르는게 더 많지만 작년보다 20대가 많이 보였습니다. 만년필 사랑의 열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는게 확실합니다.
지하철 역에서 오는 길에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작년의 2.5배. 속으로 다짐은 했습니다. '다 쓰진 않을거야.'
펜쇼에 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펜쇼에서 본 물건 중에 맘에 안들고, 좋지 않은게 별로 없습니다. 가격이 문제입니다.
'23 가을펜쇼는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눈치보며 우왕좌왕. 줄이 길게 늘어선 걸 보며 '저건 꼭 봐야되는 거구나' 하며 막연히 따라 줄을 섰습니다. 이런 판단으로 두 번을 길게 줄을 섰더니 수많은 좋은 아이템은 다 없어지고 눈팅할 기회조차 잃게 됩니다. 계획에 없는 줄은 서지 말자! 이게 첫 펜쇼로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펜후드에 공지된 데스크 아이템을 어떤 순서로 공략할 것인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꼭 살 것과 구경하며 결정할 것을 구분하는 것 입니다. 올해 목표는 노트를 사서 가족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만년필에 빠진 건 2021년 입니다. 가족에게 솔직히 미안할 정도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내도 큰 딸도 아빠의 취미를 지금은 좋게 보아줍니다. 이베이에서 만년필이 올 때마다 걱정 반 핀잔 반 이었지만 지금은 별 말이 없이 넘어갑니다. 그런 마음이 고마워서 노트를 선물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무명노트 데스크를 배치도에서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에요님의 데스크인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배치도를 훑었습니다. 세 권의 노트를 샀습니다.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 커버는 아내에게, 고양이 그림 커버는 동물을 좋아하는 딸에게, 우주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달과 별 그림 커버 노트를 제일 먼저 달려가 샀습니다.
리리티헤난님의 1구 파우치는 참 예쁘고 정성이 가득합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세 개를 구매했습니다. 자카드 천으로 만든 걸 데스크 컨펌에서 봤는데요, 저건 꼭 사야겠다고 결심을 했었죠. 자카드 소재는 같은 천으로 된건 1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해서 아쉽긴 했지만 말입니다. 고양이와 강아지 그림 파우치는 원래 제 취향은 아니었는데, 요즘 만년필에 대한 애정이 애완동물 키우는 것에 버금가는 상황인지라 이상하게도 동물 그림이 좋아졌습니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만족도 높고 가성비 좋은 선택입니다. 리리티헤난님 컨디션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아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완판하셨겠지만 준비하느라 고생하신게 역력해 보였습니다. 가을 펜쇼에서도 다시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 구경, 불 구경은 옛부터 재미난 구경인데요, 경매도 버금가는 재미를 줍니다. 우연히 작년에 단상 앞에서 경매를 접했는데,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올해도 단상 앞에서 다른 데스크 구경하며 대기했습니다. 출품된 물품 목록을 봤는데 사려고 결심한 건 없었습니다. 모나미153 메탈은 사전에 봤을 때 눈여겨 보지 않아서 일반 볼펜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메탈 소재라서 경매하는 중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쓰기님의 설명에 정신줄을 살짝 놔 버렸습니다. 지금도 몰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가격을 기억하고 있진 않았기에 어느 정도에 손을 들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쓰기님이 '아직도 두개 가격에 못 미칩니다' 라고 해서 마지막 순간에 질렀습니다. 계획에 없던 낙찰을 받고 기뻤습니다. 볼펜은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25,000원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인 줄은 쿠팡 앱 열어보고 알았습니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펜쇼 한정판 잉크 줄로 향했습니다. 박종진 소장님은 연신 '나도 사야되는데'를 말씀하시네요. 욕심을 안내려다 카드결제가 가능해서 2X2 로 질렀습니다.
Sunset Blooming(서울의 흐드러지게 핀 석양)~ 이름이 멋지지 않습니까. 못난 글씨지만 써보니 발색이 환상적입니다. 쓸때는 너무 연한 색이 아닌가 했는데, 마르고 나니 따듯하고 포근한 여친 같습니다.
이제 필수 구매 목록은 다 채웠습니다. 둘째 아들은 고2 인데 선물을 사줘야 합니다. 아빠와 아들 사이는 많이 힘든 사이 입니다.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하기 싫어 하거든요 ^^ 좋은 펜을 사주고 싶은데 슈나이더 부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기한 펜 세 자루를 샀습니다. 그립이 좋고 아주 가벼워서 오래 써도 손이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월말 방송에서 박종진 소장님이 슈나이더 볼펜이 좋다고 하신 적이 있어서 사서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바퀴를 돕니다. 이 때 느낌은 뷔페에 갔을 때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색다른 맛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색있는 코너도 있구요. 무작정 갈비 구워주는데서만 줄을 서거나, 수저 챙기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음식을 담기 시작하면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맛난 음식을 접시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한바퀴 빠르게 돌아봐야 합니다. 작년에 이베이에서 산 파커45 흐름이 안 좋아서 수리데스크에서 줄서다가 좋은 아이템을 많이 놓쳤습니다. 올해도 수리데스크 줄이 장난이 아닙니다. 만년필 동호인이 많아지다 보니 중고품 구매가 많아진게 그 이유인 것 같네요. 저도 이베이에서 사는 거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요즘은..
데스크 컨펌 자료에서 보지 못한 데스크를 봤습니다. 아마도 지름길 님의 데스크인 걸로 기억합니다. 몽블랑 149, 145가 즐비했고, 얇고 긴 몽블랑 빈티지도 있었습니다. 모델명을 잘 모르는데, 제가 예전 부터 봐왔던 22와 유사했습니다. 320 이라고 씌여져 있었는데, 시필해보니 가볍고 가는 필체가 맘에 들었습니다. 거의 새것 같았습니다. 질렀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한 다짐은 벌써 잊었습니다. ㅎㅎ 지금 타이핑하는 이 글도 320으로 연습삼아 쓴 글을 바탕으로 작성 중입니다. 몽블랑 잉크를 넣고 써보니 시필했을 때 보다 더 쓰기 편하고 부드럽습니다. 어정쩡하게 서서 시필하는 것과 앉아서 컨버터에 잉크 넣고 쓰는 글씨는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대만족입니다. 요즘 직장에서 쓰는 데일리 펜은 파커51과 75, 라미2000 마크롤론 인데, 이 펜도 데일리 펜이 될 것 같습니다. 149를 데일리 펜으로 쓰긴 부담스러워서 가끔 필사할 때만 쓰는데, 320이 갈증을 달래 줄것 같네요.
외국인의 데스크는 언어소통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작년에도 일본분 데스크에 좋은 펜이 많았는데, 현금을 작게 가지고 갔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Andre Mora씨의 데스크에는 거의 새것 같은 몽블랑 149와 펠린컨 m600이 몇 자루 있었습니다. 4~500만원 대 몽블랑은 가격이 적혀 있는데, 아 휴 하는 한숨이 나옵니다. 제 펜들은 검정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색상 펜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는데, m605 화이트를 보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격도 괜찮은 것 같아서 저질렀습니다. 이베이에서 본적은 있었는데, 얼마였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났지만 많이 저렴한 것 같아서 두번째 지름신이 내려오셨습니다. 나중에 펜 사이트 검색해 보니 제가 40% 이상 싸게 산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였습니다. 소장님과 대화하고 싶어서 단상에 검수받으러 갔습니다. 소장님 왈, '새거네요, 얼마 줬어요?' 가격을 말씀드리니 어디서 샀냐며 싸게 잘 샀다고 하시네요.
두번째 펜쇼 인데, 인생의 이벤트를 만났습니다. 평생 함께할 이벤트가 될 것 같습니다. 가을 펜쇼 기다려 집니다. 저녁 먹는 자리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공연을 예약하고 와서 참석을 못했습니다. 가을 펜쇼에서도 저녁식사 자리 있었으면 합니다. 꼭 참석 하렵니다.
스텝분들 수고 많으셨고, 건강하게 담에 보고 싶습니다.
첫댓글 득템하셨네요~축하드립니다..
박종진소장님께서도 인정하셨다니 믿음이 더 가네요~~
소장님 확인 받으면 확신이 생기니 좋습니다 ㅎㅎ
득템 축하드립니다!!
저도 데스크컨펌보고 갈곳을 정하고 비상금까지 챙겨 갔지만 다쓰고 왔습니다.
비상금이후로 더뽑지 말아야지 아니였으면 뭘 더 데려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돈 다 썼구요. 뽑으면 뽑는대로 남지 않게 되네요. 그래도 득템해서 행복합니다. 가을 펜쇼에도 외국분들이 많이 오시면 좋겠습니다.
파우치 세 개나 사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방에서 첫 차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전에는 자카드 원단은 수량제한을 했었는데 다음엔 자카드 원단 많이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ㅎㅎㅎ
가족분들께도 간접적으로 즐거운 펜쇼가 되셨길 바랍니다.^^
리리티헤난님의 파우치는 참 맘에 듭니다. 건강한 얼굴로 가을펜쇼에서 봴게요^^
긴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어서 펜쇼에 가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