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끝났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 소식을 대통령실에선 기뻐했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웃을 수 없었습니다.
물컵의 반을 채우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이 채운 물도 쏟아버린 일본인데, 아무런 유감이나 사과 표명 없이 자신의 외교 치적만 과시하진 않을지, 걱정이 컸습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한미일 간 사실상 군사동맹 체결 등 국민의 반대에도 일본에 무리하게 퍼주기만 한 한국이,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맞진 않을까 우려도 됐습니다.
일본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회담 시간 대부분을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본인 치적을 자랑하는 데 썼습니다.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사실 누락·라인야후 사태·일본 군함의 독도 훈련을 비롯해 "독도 방어훈련 일절 하지 말라” 한 일본 방위성 대신의 망언에 대해선 일말의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도광산 전시물에 일본이 기재한 ‘한국 특유의 불결한 악습', ‘본성이 둔하고 기능적 재능이 낮다'라는 조선인 비하 내용에 대해서 역시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 자신은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게 가슴 아프다”라는 과거 발언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식의 말로 대체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것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21년 10월 취임한 이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직접 사과를 피해 왔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도, 이변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궈온 성과가 취임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며 자화자찬했고,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사도광산 등재는 7월에 일단락되어 정상 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입니까?
유네스코 등재에 성공한 일본에게는 이미 일단락된 일일 수 있으나, 한국에는 아닙니다.
강제동원 명시·명부 제공·전시장소 변경 등의 핵심 사항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에 사도광산은 현재진행형인 사안입니다. 우리 정부의 참모가 일본 정부에 빙의해 “일단락되었다” 말하는 것이 정말 통탄스럽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묻겠습니다.
이것이 물컵을 넘치게 채워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응답입니까?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주장해 온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입니까?
자국에서 최악의 지지율로 물러나는 기시다 총리가,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을 택했다는 것을 정말 모릅니까?
윤 대통령이 얻은 건 영혼의 동반자인 일본 총리와의 사진 한 장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잃었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자신의 외교적 유산으로 생각하는 기시다 총리는, 아마도 활짝 웃으며 일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기시다 총리의 기쁜 귀국길 끝에 남을 것은 우리 국민의 허탈한 마음과, 사진을 보며 뿌듯해할 윤석열 대통령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권고합니다.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은 이후로 다시는 국민께 보이지 말고, 두 사람 퇴임 후에 나눠 간직하길 바랍니다.
2024년 9월 6일
조국혁신당 외교안보특별위원장 김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