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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끊어짐을 잇게 하고 (4)
여덟 살의 어린 노민공은 임금의 자리에 오르긴 하였으나, 정권을 한 손에 쥐고 나라 일을 좌지우지하는 큰아버지 경보(慶父)의 강한 눈빛이 무서웠다.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이때 노민공의 태부(太傅, 세자의 스승)로 신불해(愼不害)라는 사람이 있었다. 신불해는 노민공이 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애처롭게 여겨 몰래 한 가지 계책을 알려주었다.
"어찌 외숙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십니까?"
노민공의 어머니는 숙강(叔姜)이다. 숙강은 제환공의 여동생. 따라서 제환공은 노민공에게 외숙이 된다. 패공으로서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제환공의 힘을 빌려 경보의 세력을 견제하라는 신불해(愼不害)의 조언이었다.
"큰 아버님께서 나를 제(齊)나라로 보내줄 리가 없질 않소?"
"주공께는 새로이 군위에 올랐습니다. 제환공에게 즉위 인사를 한다는 핑계를 대면 경보 공자도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마침내 노민공은 제나라 고락이라는 땅에서 제환공과 회담을 가졌다.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년 노민공과 이미 60줄에 접어든 천하 패공 제환공 - 회담이라기보다는 알현이었다.
노민공은 제환공의 옷소매를 부여안고 흐느껴 울었다. 제환공(齊桓公)은 측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조카는 무슨 일인가?"
"공자 경보(慶父)의 세력이 워낙 세서 늘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외숙께서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노나라에도 인물이 있을 터. 지금 노나라 대부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공자 계우(季友)가 현명하기는 하지만 진(陳)나라에 망명중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를 불러들이지 않는가?"
"경보가 그를 해치려 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카는 안심하라. 내가 계우 공자의 안전을보장할 터이니, 지금 즉시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오도록하라. 만일 경보가 허튼 수작을 하면 내 패공의 이름을 걸고 그자를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러고는 사람을 진나라로 보내 친히 계우(季友)의 귀국을 명령했다.
그제야 노민공은 제환공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본국을 향해 떠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혼자서 돌아가기가 무서웠다.
"작은 아버지와 함께 귀국하겠다."
노민공은 낭(郎)이라는 땅에서 공자 계우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한편 제환공의 명을 전해받은 계우(季友)는 즉각 진나라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밤을 도와 수레를 달리는 중 낭(郎)땅에서 노민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욱 말에 채찍을 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함께 노나라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계우(季友)의 귀국에 가장 놀란 것은 경보였다.
'어린 놈이 나를 속였구나!'
그러나 이미 제환공으로부터 계우를 재상으로 삼으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감히 노민공과 계우를 해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좀더 기회를 두고 보리라.'
노민공 원년, 제환공 25년의 일이었다.
그해 겨울, 제환공(齊桓公)은 노민공의 뒷일이 걱정이 되어 대부 중손추를 불러 명했다.
"노나라에 다녀오되, 그 곳 실정을 자세히 알아오라."
중손추는 노나라 도성 곡부로 갔다. 그는 먼저 노민공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노민공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눈물만 찍어땔 뿐 말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군주 재목(材木)이 아니다.'
다음으로 형인 공자 신(申)을 만나보았다. 신은 공실 안의 실정은 물론 나라 일까지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말하는 데도 신중하고 조리가 있었다.
'이 아이야말로 군주 재목이 아닌가.'
중손추는 재상인 계우를 만난 자리에서 은밀히 속삭였다.
"신 공자의 앞날이 매우 유망합디다. 그대가 잘 보호해야 할 것이오."
"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경보(慶父)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오?"
계우(季友)는 대답 대신 오른쪽 손바닥을 허공에 흔들어 보였다.
"....................!"
중손추는 이내 계우의 뜻을 알았다.
- 어찌 한쪽 손바닥만으로 소리가 날 수 있겠소? 시일을 기다리다 보면 경보(慶父)도 꼬투리를 잡힐 것이오.
그 뒤 중손추는 제나라로 돌아가 제환공에게 노나라 실정을 보고했다.
"노나라는 여전히 공자 경보(慶父)가 세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를 없애지 않는 한 노나라는 안정되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과인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가 경보를 쳐부수면 어떨까?"
"그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관중(管仲)이 끼여들었다.
"그것은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경보가 노나라 일을 전횡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흉악한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를 토벌할 명분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계우(季友)가 암시한 대로 경보가 스스로 죄를 짓기를 기다렸다가 없애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경보(慶父)가 꼬투리를 드러내지 않으면 어쩐단 말이오?"
"신이 보기에 경보는 남의 밑에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자는 반드시 변을 일으킬 것입니다."
관중(管仲)의 말에 중손추도 고개를 끄덕였다.
"중보의 말씀이 맞는 듯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제환공(齊桓公)도 찬성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